[스페셜1]
식민지 군인들의 잊혀진 역사를 말한다, <영광의 날들>
2006-12-21
글 : 최현정 (파리 통신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 수많은 전쟁영화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그동안 제작된 영화들은 주로 노르망디상륙작전과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영웅들, 독일의 나치 협력자들을 다루는 데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60년 가까이 지난 올해, 프랑스를 위해 싸웠던 식민지 군인들에 관한 영화가 제작, 개봉되어 정치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 <영광의 날들>은 1945년 독일군에 점령당했던 프랑스를 위해 싸운, 당시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군인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토착민 군인들은 프랑스 군대와 함께 전투에 참여했음에도 종전 뒤 프랑스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부로부터 아무런 인권 보호를 받지 못했다. <영광의 날들>은 개봉 뒤 한달 동안 프랑스 전역 500개 극장에서 개봉했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11월28일 통계 기준). 사이드 역을 맡았던 모로코 출신의 배우 자멜 드부즈를 비롯한 주연들도 칸영화제에서 나란히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한번도 다뤄지지 않았던 프랑스 역사에 접근한 새로운 주제와는 달리 <영광의 날들>은 1600만달러의 제작비,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떠올리게 하는 전투장면, 전형적인 사건 전개 방식으로 할리우드의 대중적인 전쟁영화의 선을 뛰어넘지 못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출신 프랑스인인 라시드 부샤렙 감독은 잊혀진 역사의 한 부분을 되도록이면 많은 관객에게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이런 형식은 영화의 ‘성공’을 위해 이루어진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그 속에 존재했던 식민지 군인들에 대한 경의(hommage)를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감독의 바람은 영화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 결실을 얻었다. 먼저 영화적으로는 전쟁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된 듯한 주인공들이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이를 넘어, 관객으로 하여금 전쟁을 치르고 있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이성, 분노, 사랑, 욕망을 가진 인간으로 받아들여지게 한다. <영광의 날들>을 본 프랑스의 한 관객은 “2차 세계대전을 얘기할 때면, 프랑스를 위해 싸운 레지스탕스 영웅만을 떠올렸었다. 하지만 이제는 영웅에 대한 상상을 하기보다는 그 속에 실재했던 사람들에게 경의를 보내고 싶다”며 토착민의 인물 묘사에 감탄했다. 또한 현실적인 성과도 있었다. 2006년 9월, 첫 시사회에 참여한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그간 무시되었던 식민지 군인들의 인권을 보상할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9월27일 프랑스 정부는 당시 전투에 참가했던 8만명의 토착민 군인들이 당시 프랑스 군인들과 같은 사회적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는 법안을 발표했다. <영광의 날들>의 이러한 사회적 반향은 그간 프랑스가 식민지를 다룬 영화를 검열해왔던 사실과 크게 비교된다.

프랑스는 그동안 1952년과 1959년 사이 식민지 점령기를 다룬 영화 105편을 상영 금지했다. 이러한 식민지영화에 대한 제재는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해방되기까지의 투쟁을 그린 <알제리 전투>(1965)가 베니스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자 프랑스 대표단들이 단체로 자리를 뜨는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알제리 전투>는 2004년에야 프랑스 개봉에 성공했다. 이에 반해 프랑스, 모로코, 알제리, 벨기에 공동 제작인 <영광의 날들>은 영화 제작과정에서부터 프랑스 정부의 대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제작되었다. 이 영화는 앞으로 계속될 식민지인들의 인권을 다룰 3부작의 첫 번째 파트가 될 예정이어서 앞으로 이 시리즈가 일으킬 사회적 반향이 영화인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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