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머시기가 거시기될 때까지, 김광식
2007-02-06
글 : 김민경
사진 : 이혜정

“그 사람이 연기를 하면 아무도 그게 연기인 줄 모른다. 백제 병사든 중국집 배달부든 그냥 그 사람이 되어버린다. 시나리오를 철저히 읽고 디테일을 끌어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농협 여직원에게 꽃을 전해주다 뒤에 오는 사람과 부딪치는 작은 장면에서조차 눈빛과 몸동작을 정말 맛깔나게 무쳐내더라. 친화력도 좋아서 같이 일하는 스탭들을 편안하게 해준다. 현장에서 매우 사랑받는 배우다.”(이준익 감독)


영월로 ‘좌천’된 최곤(박중훈)과 박민수(안성기)의 주위엔 항상 그가 있다. 퉁명스레 자장면을 갖다 주던 배달부 총각은 어느샌가 그릇 수거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슬금슬금 엉덩이를 비비고 들어와 조정실의 한 식구가 된다. <라디오 스타>는 다양한 조연의 소박한 사연들로 완성되는 영화다. 김광식은 배달부 장씨를 순박한 영월시민1, 2, 3 중 하나로 생각하지 않았다. 배우의 연기력이란 곧 상상력이라고 믿는 그는 “영월의 시선”이란 구체적인 주석을 장씨에게 달았다. “최곤을 모두가 반기진 않았을 거라 생각했어요. 내 영역에 턱 들어온 유명인을 경계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사실 좋으면서 자기는 관심없는 척하죠. 자장면만 갖다주러온 척 주위를 어슬렁거리지만 신경은 다 그쪽에 쏠려 있어요. 그런 ‘시선’인 거죠.” 김광식은 <황산벌>에서 이문식과 함께 백제 병사 ‘거시기’, ‘머시기’로 출연해 이준익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순토종 같은 보통 백성이 되어버리는 자연스러운 연기와 그 뒤에 숨은 성실함이 감독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개인적 친분이 이어졌고, <라디오 스타>의 장씨 역은 처음부터 김광식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필모그래피는 짧지만 그는 뮤지컬과 연극으로 뼈가 굵은 경력 13년차 배우다. 별 꿈없이 형처럼 경영학과나 갈까 하던 중 형의 친구가 보여준 뮤지컬 <캣츠>가 그에게 외길의 진로를 던졌다. 명지대 연극영화과를 거쳐 극단 신씨에 들어가 뮤지컬 배우가 되었지만, 코러스 역할만 반복하다보니 연기에 허기가 졌다. 결국 대학로 정극으로 무대를 옮겼고, 이문식, 이종혁, 안내상과 함께한 연극 <라이어>는 지금도 그의 연기 인생에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그를 매우 아끼는 이준익 감독이지만, 사실 김광식은 그 때문에 연기를 포기할 뻔도 했다. 즉석에서 주문한 립싱크를 제대로 못해냈다는 어찌 보면 사소한 호통이었지만, 그는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운전대를 잡고 눈물을 훔쳤다. “연기로는 어디 가서도 욕먹어선 안 된다는 최소한의 자존심 때문”이었다. 별다른 야심이나 계기없이 시작한 연기지만 오히려 그래서 꾸준히 계속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연기하진 않는다. 찌릿찌릿한 카타르시스의 순간도 자칫 마스터베이션이 될 수 있기에 경계한다.” 그가 좇는 것은 “치열하게 진심을 파고드는 야생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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