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팍팍한 일상에서 건진 연기의 맛, 최성진
2007-02-06
글 : 이영진
사진 : 이혜정

“요즘은 맛깔스러운 조연이 아니면 덜 불러주는 터라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성실하고 진지하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원래 악역을 하기로 했던 배우가 갑자기 출연을 못하게 돼서 부탁했다. 부담이 큰 촬영 초반이라 적임자를 찾기도, 누군가에게 선뜻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았다. 나 역시 그에게 제안하면서 주저하기도 했다. 워낙 선한 인상과 성격의 소유자라서. 근데 독특한 양아치를 보여주더라.”(노동석 감독)

인터뷰에 응하기까지 최성진(37)은 꽤 망설였다. “내가 아직 배우를 꿈꾸고 있나”라고 수십번 자문했다고 한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이후 출연작이 없는 게 먼저 마음에 걸렸다. 족발집 배달부터 광고전단 납품까지, 다른 일로 생계를 꾸리느라 그는 ‘1년 넘게’ 오디션조차 보지 못했다. “연기는 엄두조차 나지 않더라.” 배우로서의 삶을 잠시 접어둔 동안 ‘연기의 맛’을 뒤쫓았던 오랜 시간들은 유령처럼 되살아나 괴롭혔을 것이다. “세상을 바꾸겠다”며 군대도 안 가고 5년 동안 운동에 전념하다 “신념을 지키고 살 자신이 없어”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공부 다시 해서 취직할 평범한 운명은 아닌 듯해” 2년 넘게 방황하고, 언젠가 <시네마 천국>을 보면서 “영화를,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을 좇아 한국연극배우협회의 워크숍을 찾고, 장애인의 몸동작을 익히기 위해 거리에서 비틀거리며 걷는 연습도 마다않고, 오디션에서 번번이 떨어지고 나서 “왜 내가 이렇게 연기한 거지” 자책하고, 장진영 같은 스타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주눅들어 휘청하고(<싱글즈>), 주인공이 촬영 중에 바뀌는 바람에 촬영분량이 송두리째 편집되고(<선택>).

하지만 “아르바이트나 취미로라도” 연기를 할 수 없는 상황이 그저 10년을 곱씹게만 한 것일까. 가시오가피를 팔며 동생을 등쳐먹는 형(<마이 제너레이션>)이나 안마시술소에서 비위 맞추며 기생하는 최 부장(<우리에게…>)이 생생한 진짜처럼 다가오는 건 고단한 삶을 충분히 누렸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마이…> 찍을 때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생계를 책임지기 시작할 때다. 가판대에서 만두 팔고 그럴 땐데. 그래선가. 노동석 감독도 평소처럼만 해달라고 하더라. 연기할 때도 내 생활을 떠올리면서 할 수 있었고, 그래서 자연스러워 보인다.” 다만 SOS 받고 사나흘 짬을 내 출연했던 <우리에게…>는 <마이…>와는 많이 달랐다고 덧붙인다. “촬영 전날에 감독도 걱정됐는지 리딩을 하자더라. 나도 난감했다. 잘 못하는 욕도 해야 하고. 그렇다고 다른 영화에서 본 양아치를 흉내내기도 싫고. 곧 헐릴 건물이라서 나중에 재촬영을 할 수도 없으니 걱정이 태산이었다. 결국 평소 불량스럽다는 동료 배우와 합숙하면서 그의 일상을 관찰했고 연기를 만들었는데 아직 보지 못해서 뭐라 말은 못하겠다. 피해는 안 줬으면 한다.” 손짓 하나로 클로즈업 이상을 해내는 설경구를 가장 좋아한다는 그는 “인터뷰를 계기로 앞으론 적극적으로 사람들 만나야겠다. 다 도움이 되겠지” 한다. “과장되고 양식화된 연기는 죽어도 싫다”는 그에겐 사람 공부가 더없는 공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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