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무대에서 싹을 틔운 망울, 이승비
2007-02-06
글 : 박혜명
사진 : 이혜정

“기본적으로 몸을 잘 쓰는 배우 같다. 유연성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손이나 얼굴 등의 움직임을 이용해서 정확하게 자기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란 생각이 든다. 몸짓이 아주 훌륭한 배우다. <마법사들> 작업하면서 느낀 건데 하는 연기마다 대본이 원하는 것 이상을 주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상상한 이상의 것들을 연기로 묘사해줬다. 영화쪽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남자배우들 중엔 연극계에서 옮겨온 사람들이 많은데 여배우쪽은 드물다. 이승비는 <갈매기>나 <이발사 박봉구>, 최근에 공연했던 <마리화나>도 그렇고, 연극쪽에서 강한 역들을 많이 해왔다. 탄탄한 기본기와 열정을 다진 사람이다. 그런 것이 영화쪽으로 옮겨져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송일곤 감독)


유독 뒤늦은 수배다. 송일곤 감독의 <마법사들>(2005) 여주인공으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을 때 이미 그는 연극계에서 신인상 두개를 탄 뒤였다. 2002년 최우진 연출의 <이발사 박봉구>에서 창녀 은영 역으로 서울공연예술제 신인상을, 2004년 러시아 연출가 G. 지차트코프스키가 초빙돼 연출한 안톤 체호프 서거 100주년 기념 공연 <갈매기>에서 마샤 역으로 동아연극상 신인상을 받았다. 몇몇 기사가 소개했듯 그는 뉴욕 파슨스대 유화 전공생. 우연히 길거리 퍼포먼스에 빠져 중앙대 연극과에 편입했다. 디자이너인 모친의 극심한 반대, 편입생에 대한 텃새를 겪으며 “간, 쓸개 다 빼놓고 여기저기 워크숍마다 시켜달라고 얼굴 내밀고 다녔다”고 한다. <맥베스>와 <돈키호테>, 무려 두 작품의 여주인공으로 졸업공연을 마쳤고, 데뷔 무대 <Getting Out>에서는 전직 창녀에 택시기사이자 알코올 중독에 아이 넷 딸린 50대 여성을 했다. 대학 때 친구들을 괴롭혀가며 연기 연습을 했던 기억도, 데뷔 무대에서 어떻게 연기했는지의 기억도 없을 만큼 그는 매 순간 혼을 놓고 연기했다고 한다. 중앙대 시절부터 그를 아꼈던 극단 대표이자 교수 유인촌이 그의 데뷔 무대를 보고 촌평했다. “너는 끝까지 연극배우 해라. 다른 거 할 생각 절대하지 마라.”

조금 솔직한 말로, 이승비는 영화 촬영이 연극보다 쉬웠다고 했다. “카메라와 그 공간만 책임지면 되잖아요. 무대는 3천석이든 5천석이든 배우가 다 책임져야 돼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게 사람 대하고 사람 마음 얻는 건데, 내가 흔들린다 싶으면 그 많은 관객의 숨소리가 다 들려와요.” <장화, 홍련>에서는 밥상 앞에서 귀신 보고 거품 문 모습이 전부였지만 <마법사들>을 통해 그는 “극중 자은이처럼 다친 마음, 상처를 가진 여자 관객으로부터 공감의 메시지들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타인을 치유케 하는 연기를 하고 싶어요. 영화건 연극이건 상관은 없는데, 죽어도 무대에는 다시 올 거고요.” 금전과 명예에 대한 조급함도 놓았다. “세상을 안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말 좋아하는 시예요”라며 그가 읊는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고은, <순간의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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