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전도하는 약사 역, 김미향
“원장님처럼 불행한 분은 하나님 사랑이 꼭 필요해요.” 절망의 심연을 헤매는 신애에게 신앙을 유일의 빛으로 제시하는 여자, 차분하고 사근사근한 말투로 ‘하나님 말씀’을 속삭이는 그는 바로 약사이자 집사 역을 맡은 김미향씨다. 무대에서 20년 이상 호흡해온 연극배우이자 대구의 극단 원각사의 대표이기도 한 그는 이창동 감독과의 오랜 인연이 계기가 되어 <밀양>에 합류하게 됐다. 그의 나이 스무살, 단원 모집 포스터를 보고 무작정 찾아간 원각사는 새파란 신참에게는 낯설고 힘든 곳이었고, 당시 극단에서 활동하고 있던 복학생 이창동 감독은 그에게 든든한 상담자가 되어줬다. “뒤늦게라도 연극영화과를 가야 할지, 진로에 대한 고민 같은 것들을 들어주셨다. 그때 감독님이 내 분장을 해준 적도 있다. (웃음)” 지난해 감독과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김미향씨는 농담 반으로 저도 오디션 볼래요, 하는 말을 던졌고, 얼마 뒤 감독한테서 서울에 한번 올라와보라는 전화가 왔다. 10차례가 넘게 반복된 진땀나는 카메라 테스트. 결국 합격 판정을 받았을 때는 뛸듯이 기뻤지만, 막상 현장에 서니 떨림과 부담감이 앞섰다. “연극 연기에만 익숙해져 있다보니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더라. 집에서 남편이랑 딸을 앞에 놓고 연습도 많이 했다. 내가 너무 긴장하니까 한번은 감독님이 내 손을 딱 잡고, 너는 쟤가 원장이 아니라 전도연이처럼 보이나, 하시더라. (웃음)”
유랑극단 배우를 어머니로 둔 김미향씨는 어렸을 때부터 “엄마 화장품을 훔쳐서 분장하고 연기하는 것”을 좋아하던 소녀였다. 어머니 손을 잡고 극장을 제집 드나들듯 들락거리던 그가 본격적으로 배우가 되겠노라 결심하게 된 것은 고3 때 국립극단의 <파우스트> 공연을 접하면서부터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나도 저렇게 무대에 서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었다.” 21살 때 <연인과 타인>으로 첫 무대에 올랐고, 이후 20년 넘는 연기 인생이 이어졌다. 출산한 뒤 잠시 공백이 있었지만, 아이가 4살이 되던 해부터는 아예 딸을 “달고 다니면서” 연기를 계속했다. “새로운 내가 탄생하고 소멸되었다가, 다시 탄생하는 그 과정이 좋다. 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힘을 얻는 것 같다.” 연극과는 달리 자신의 연기를 하나하나 다시 뜯어봐야 하는 영화가 너무나 “잔인하면서도 매력적”이라는 김미향씨가 꿈꾸는 것은 무엇보다 스스로 모자람없는 연기를 하는 것이다. “어떤 작품을 하건 항상 미진함을 느낀다. 죽기 전에 정말 딱 한편이라도, 내가 최고라고 말할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것, 그게 내 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