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밀양>의 조연배우 ② 이윤희
2007-06-05
글 : 최하나
사진 : 서지형 (스틸기사)
또다시, 연기자의 자리에 선 ‘아빠’

유혹의 손짓에 갈등하는 장로역, 이윤희

신을 향한 원망과 배신감으로 장로를 유혹하는 신애, “드라이브 좀 시켜달라”는 그녀의 노골적인 손짓에 엉거주춤 공터를 향하는 장로는 “아이구, 참”을 연발하다가도 결국 “하나님이 보고 계신 것 같다”며 그녀의 몸부림을 뿌리친다. 달뜬 욕망과 죄책감이 뒤얽힌 얼굴을 만들어낸 것은 이윤희씨. 연극 배우 활동을 잠시 접고 울산에서 문방구를 운영하던 그는 한번 오디션을 받아보지 않겠냐는 조감독의 전화 한통을 매개로 다시 연기자의 자리에 서게 됐다. “그동안 잊고 살려고 했는데, <밀양>이 사람 피를 덥혀놓은 셈이다. (웃음) 집사람이 걱정이었는데, 이야기를 듣더니 언젠가 당신이 다시 연기할 거 알고 있었다고 그러더라. 그래도 출연하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을 땐 정신이 멍했다.” 마음 한쪽에 잠재워놓았던 욕망이 비로소 빛을 보게 된 셈이지만, 전도연과의 ‘공터 신’은 그에게 기쁨이라기보다는 고통에 가까웠다. “그런 신이 있다는 걸 대본 리딩하면서 처음 알았다. 사흘 동안 집사람에게 말도 한마디 못했다. (웃음) 촬영 전날 부담감이 얼마나 컸던지 밤새 악몽도 꾸고, 결국 체중이 5kg나 빠졌다.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제대한 뒤 본래 신문방송학과를 지망했다는 이윤희씨는 공연 계통을 알고 싶다는 마음에 극단에 들어갔고, 2년 뒤 <국물 있사옵니다>로 배우로 데뷔했다. 잠시 경험을 쌓고 무대를 떠날 참이었는데, 공연을 마친 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허전함과 갈증이 그를 계속해서 다음 무대로 이끌었다. 연극하며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김해의 한 여고에서 근무하던 중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결혼한 뒤에는 좀더 많은 시간을 연극에 투자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 IMF가 터진 뒤에는, 울산으로 건너와 아동극 기획을 시작했는데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창작극 위주의 공연을 기획했는데 <신데렐라> <피노키오> 같은 기성 작품들에 아무래도 많이 밀렸다.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보일러 기름값도 부족해서 겨울에는 떨면서 잠을 잤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결국 연극을 접었다.” 문방구를 거쳐 현재 막창집을 운영 중인 이윤희씨는 초등학교를 다니는 두 아이의 아빠다. 당장 가정을 꾸려나가야 하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지만, 그래도 그에게 연기는 “종교”와도 같다. “내 일 때문에 처자식을 길바닥에 내몰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가장 큰 소망은 역시, 경제적인 안정을 찾아서 집사람을 덜 고생시키는 거다. 하지만 자식을 뒷바라지할 정도가 되면, 나이 일흔이 되어서라도 연기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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