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정기를 이야기하는 주방장역, 이성민
신애의 뒤만 졸졸 쫓아다니는 종찬에게 던지는 허풍이 가득 찬 충고. 개량한복을 입은 채 지리산의 정기를 이야기하는 남자. 종찬의 또 한명의 친구를 연기한 배우는 이성민씨다. 군대 가기 전 대구에서 처음으로 연극을 시작한 그는 2002년부터는 서울에서 무대에 서고 있다. 현재는 극단 차이무의 멤버. 이창동 감독과는 가족끼리 잘 아는 사이라, 결혼식의 주례는 이창동 감독의 큰형이 보았다고 한다. <밀양> 출연도 극단 차이무와 이창동 감독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물론 캐스팅의 시작은 이성민씨의 연극 무대를 본 제작진의 결정이겠지만, 당시 <작은 연못>에 출연 중인 그를 <밀양>의 품으로 불러들인 건 이창동 감독과 <작은 연못>의 연출을 맡은 이상우 감독 사이에서 진행된 은밀한 거래다. “원래 <작은 연못>에선 땅굴까지 가서 사는 역할이었다. 그런데 이창동 감독님이 그 인물을 빨리 죽이라고 했다더라. (웃음) <밀양> 촬영해야 한다고. 그렇게까지 해서 가봤더니 역할은 별거 아니더만. (웃음)”
최근 KBS2 드라마 <마왕>의 촬영을 마친 그는 <밀양>을 찍으면서도 연극 무대에 서고 있었다. 그가 종찬의 ‘친구 중 한명’에서 주방장이란 직업을 갖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그의 스케줄 탓이다. “카센터에 앉아서 잡담하는 장면의 촬영이 일요일이었는데, 그때 들어간 공연의 일정이 겹쳐서 그 장면에서 빠지게 됐다. 그리고 나서 주방장 역할을 하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는 혼자 집에서 “칼질 연습을 했고”, 그러다 손을 베이기도 했다. “편안한 역할”이었고, “부담없이 즐겼다”며 이를 모두 이창동 감독의 공으로 돌린다. 하지만 그는 자칫하면 이상한 코미디가 돼버릴 대사를 묘한 균형감각으로 전달했다. “지리산의 정기를 받는다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 사실 욕심을 내면 더 웃길 수 있는 거였다. 찌찌가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더 오버할 수도 있고. 하지만 감독님이 웃기지만 뭔가 찐한 맛이 있는 걸 원하셨다. 그래서 그 경계를 지켜야 했고.”
<Mr. 로빈 꼬시기>의 양 상무, <비단구두>의 성철, 그리고 사람이 하도 많이 등장해 자신은 점처럼 나온다는 <작은 연못>. 연극으로 시작했고, 아직도 연극에 애착이 더 크다는 그는 가끔씩 영화와의 산책도 즐겼다. 이창동 감독의 작품을 보면서는 이 감독만의 정서가 읽혀서 좋았다고 평한다. 연극적인 연기와 영화적인 연기 사이의 고민도 “감독과의 커뮤니케이션”과 “작은 배역이지만 정체성을 찾을 수 있는 현장의 분위기”로 잘 풀어나간 듯하다. 현재 주거지는 서울이지만, 대구에서 연기를 시작한 이성민씨. 그의 마음만은 와이프가 지키고 있는 대구, 혹은 마음의 밀양을 향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