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나에게 정의란 결국 복수인 것 같다”
2007-10-09
글 : 황수진 (LA 통신원)
<브레이브 원>의 닐 조던 감독 현지 인터뷰

8월1일, 베벌리힐스의 스크리닝 룸에서 칵테일 파티와 함께한 <브레이브 원>의 기자시사회. 시사가 시작되기 전 감독인 닐 조던과 프로듀서 조엘 실버가 들어섰다. 가죽 재킷을 입고 굳게 입을 다문 닐 조던과 캐주얼 남방셔츠를 걸쳐 입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는 조엘 실버. 묘한 조화를 이루는 두 사람이었다. 먼저 무대에 오른 조엘 실버는 디지털 후반작업이 프로덕션보다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들과 달리 <브레이브 원>은 카메라가 보는 그대로 잡아낸 작품이지만 그 화면은 어떤 작품보다도 시적인 것 같아 무척 만족한다며 웃음 짓고는 감독을 소개했다. 무언가 생각이 많은 표정의 닐 조던은 이 시나리오를 선택한 것은 주인공이 처음 살인을 한 날, 집으로 돌아와 자신 안에 존재하는 또 다른 모습과 대면하는 장면 때문이었다며 간단하게 인사를 마쳤다. 조디 포스터와 테렌스 하워드가 호흡을 맞춘 <브레이브 원>은 결혼을 앞두고 단꿈에 젖어 있던 라디오 진행자 에리카(조디 포스터)가 거리의 무법자들에게 약혼자를 잃고 난 뒤, 도시를 배회하며 범죄자들을 처단한다는 이야기다. 다음날 10여분 동안 이루어진 감독과의 일대일 인터뷰에서 느낀 닐 조던은 인터뷰 내내 자주 쓰던 ‘specific’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잘 어울리는, 분명하고 명쾌하게 의사 표현을 하는 감독이었다.

-이번 작품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달라.
=<브레이브 원>은 복수에 대한 이야기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도 있고, 단순한 스토리 라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살인을 하고 집에 돌아온 주인공이 이제까지 한번도 볼 수 없었던 자기 안의 낯선 누군가를 느끼게 되는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런 낯선 자신을 더이상 스스로 제지할 수 없는 데서 오는 무력감과 두려움 그러나 동시에 그 새로운 자신에 깊게 빠져들어가는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캐릭터에 이끌렸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 그녀는 높은 교육 수준에, 교양있고 진보적인 사고를 가졌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폭력을 당한 뒤 겪는 여정을 옆에서 관찰하고 싶었다.

-그러나 당신이 그냥 관찰만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그녀를 둘러싼 모든 인물들이 그녀의 행동을 지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그녀를 바라보는 눈은 확실히 따뜻하다.
=글쎄, 일단 우리 모두는 그녀가 어떤 일을 당했는지를 먼저 보았으니까. 그녀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영화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던 것은 이 영화가 끝에 가서 던져주는 질문, 복수란 무엇인가, 징벌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영화 초반에서 테렌스 하워드와 조디 포스터가 나누는 대화를 떠올려보라. 테렌스가 “안 돼. 내게는 경찰 배지가 있어. 이게(내가) 법이라고. 합법적인 절차라는 게 있다고”라고 하면, 조디가 “알아. 하지만 내게 끔찍한 일이 일어났어. 이제 난 내 식대로 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이 둘은 복수란 무엇인가, 더 나아가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나름의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영화의 끝장면에서 테렌스 하워드의 행동은 어떠한가. 과연 테렌스 하워드에게 그럴 권리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정의란 무엇인가.
=나에게 정의란 결국 복수인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제도화된 복수라고나 할까. 우리가 법이라고 불리는 것들, 결국 동의에 의해 합법화된 것들이니까. 누가 무엇이 옳고 그르다라고 규정지을 수 있나. 사형제도의 유일한 논리가 따지고 보면, 순수한 복수의 개념 아닌가. 문명사회에서 법이란 인간이 서로가 서로를 덜 죽이도록 유지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까.

-영화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주인공이 처음 살인을 한 날이라고 말했는데, 막상 그 장면에서 당신은 그녀의 뒷모습만 보여준다. 그래서 엄청난 일을 겪고 있을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볼 수가 없다.
=그녀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낯선 또 하나의 자신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은유라고 할까. 소파에 앉아 있을 때, 그녀가 발견하는 것은 그녀 내면에서 오랫동안 금지되어 있던 무엇이다.

-오프닝 이미지에서 보이는 도시의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정확히는, 유리 빌딩 위로 투영된 도시의 풍경이다. 예전에 맨해튼을 혼자서 돌아다니면서 높은 빌딩들의 유리 표면들을 올려다볼 때마다 특히 스카이라인과 함께 어우러진 그 모습이 오래오래 뇌리에 남았다. 현실을 비추지만, 실체는 아닌 것. 언제나 어느 정도의 왜곡을 담고 있는 것. 유리창에 비친 도시에 대한 짧은 에세이라고나 할까. 수직으로 이루어진 맨해튼이라는 공간을 아나모픽 화면에서 잡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

<브레이브 원>

-배우들과는 어떻게 작업하는 스타일인가.
=일단 배우란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사인을 한 순간 캐릭터가 겪는 일종의 여정을 함께하기로 동의한 것 아닌가. 감독도 마찬가지고. 모르겠다. 나는 나를 관찰할 수 없으니까. 굳이 생각해보자면, 현장에서 새로운 것을 즉흥적으로 시도해본다거나 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어떤 감독들은 현장에서 배우들과 새로운 것을 이것저것 시도해보면서 함께 찾아간다고들 하는데, 나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정확하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면 할수록 그 선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동시에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하면 이해가 될는지.

-사람들 속에서 헤드폰을 쓰고 도시의 소리를 녹음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독백이 인상적이었다. 그런 설정은 하게 된 배경은.
=소리를 듣고 녹음하는 사람은 내성적인 사람이다. 그녀가 소리를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설정한 것은 결국 그녀가 도시의 소리와 함께 자신의 소리를 모으고 또 남기는 인물이라는 데 있었다. 그녀가 살인을 저지르는 지하철에서도 그녀는 그 살인의 순간을 기록한다. 그녀의 비밀스러운 일기장인 셈이다.

-끔찍한 폭력을 겪고 나서 어떻게 극복했냐라는 질문에, 그녀는 “극복하지 못했어. 그냥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라고 답한다. 결국 그녀는 극복하지 못하는 것인가.
=극복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폭력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파괴할 만큼 끔찍한 것이니까. 그렇지만 글쎄… 나 스스로 그런 일을 겪어본 적이 없으니까 뭐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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