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겨울영화] <베오울프> <아임 낫 데어>
2007-10-30
글 : 씨네21 취재팀

고전서사 베오울프, 21세기 갑옷을 입다

<베오울프> Beowulf
감독 로버트 저메키스 목소리 출연 레이 윈스턴, 안젤리나 졸리, 앤서니 홉킨스, 크리스핀 글로버 수입·배급 워너 국내개봉 11월15일

한겹, 금빛의 액체만을 두른 채 고혹적인 나신으로 나타난 안젤리나 졸리. 트레일러를 보고 숨죽였던 이라면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베오울프>는 100%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들어진, 1분30여초의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는 실사와의 차이를 판별하기 힘든 정교한 3D애니메이션이다. 소름끼치도록 사실적인 비주얼을 선보였던 <폴라 익스프레스>를 기억한다면, 다시 한번 로버트 저메키스가 메가폰을 잡았다는 사실에 쉽게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지나치게 섬세한 디테일에 반해 인물들의 눈에서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던 <폴라 익스프레스>의 치명적인 약점은 눈꺼풀 움직임까지 센서로 포착하는 EOG(Electrooculography)기술을 통해 보완됐고, LA 스튜디오에 모여 모션캡처 슈트를 입고 허공을 향해 소리쳤던 <베어울프>의 배우들은 광대한 대지와 요동치는 바다, 불을 뿜는 계곡 위에 서게 됐다.

고대 영국의 서사시를 원작으로 하는 <베오울프>는 무사 베어울프(레이 윈스턴)가 괴물 그란델(크리스핀 글로버)을 처단하기 위해 이웃 나라를 찾으면서 시작된다. 호기롭던 그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그란델의 어머니(안젤리나 졸리). 그녀는 베어울프에게 왕관을 약속하는 대신, 새로운 후계자를 잉태하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베오울프>의 각본을 맡은 것은 <저수지의 개들> <펄프 픽션>의 각본가 로저 애버리와 <스타더스트>의 작가 닐 게이먼이다. “고등학생들이 단체관람해도 좋을” 만큼 원작에 충실하지만 “단순한 참고서는 결코 아니다”라는 것이 두 사람의 말. 특히 그란델의 살육 뒤에 감춰진 동기, 베오울프와 그란델의 어머니의 비밀스러운 계약 등은 전적으로 작가들의 상상력에서 탄생됐다. “초현실적이고 강력한 영상”이라는 게이먼의 호언장담과는 별개로, 1000년 이상 묵은 고대의 전설에 3D애니메이션이라는 옷이 적합한 선택이었는지는 머지않아 스크린을 통해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Tip. 고전 서사시 <베오울프>

8세기 무렵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베오울프>는 총 3182행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서사시로, 전세계 영문학도들을 괴롭혀온 고전 중의 고전이다. <애니홀>에는 우디 앨런이 다이앤 키튼에게 “그냥 <베어울프>를 읽어야 하는 수업만 듣지 마”라고 충고(?)를 던지는 장면이 나오기도.


밥 딜런의 재구성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감독 토드 헤인즈 출연 마커스 칼 프랭클린, 벤 휘쇼, 히스 레저, 크리스천 베일, 리처드 기어, 케이트 블란쳇 수입·배급 스폰지 개봉예정 2008년 2월

<아임 낫 데어>는 제작에 들어가기까지 7년이 걸렸다. 할리우드 관계자들은 헤인즈의 시나리오를 읽고 머리만 긁적였고, 헤인즈는 “13살짜리 흑인 소년이 밥 딜런을 연기하고, 크리스천 베일도 밥 딜런을 연기하고 그 딜런은 포크 음악으로 저항하다 목사가 되지 않았을까 싶은 밥 딜런이고…” 하는 식으로 작품 설명만 늘어놓다 투자자들과의 미팅 시간을 보냈다.

6명의 밥 딜런이 모인 밥 딜런의 영화. 토드 헤인즈는 리처드 기어, 크리스천 베일, 히스 레저, 벤 휘쇼, 마커스 칼 프랭클린 그리고 여배우 케이트 블란쳇까지 6명의 배우에게 서로 다른 밥 딜런의 흔적과 페르소나를 부여해 밥 딜런을 재구성한다. 이 배우들은 포크송 가수 아서 거스리, 시인 아르투르 랭보, 범죄자 빌리 더 키드 등을 각각 닮았으면서 동시에 이들을 선망했던 밥 딜런의 페르소나들이다. 저항정신의 포크 뮤지션 밥 딜런, 통키타를 버리고 파워풀한 사운드의 일렉 기타를 집어든 포크록 스타 딜런, 이 시간대의 앞뒤로 더 나아간 딜런의 이야기들이 펼쳐지는데 여기에는 실제 사건과 토드 헤인즈의 머릿속에서 창작된 이야기들이 씨실과 날실처럼 엮여 있다. <아임 낫 데어>는 밥 딜런에 관한 영화이지만 밥 딜런을 1인으로서 이야기하는 단선구조의 전기영화가 아니다. <필름 코멘트>는 토드 헤인즈가 “딜런을 사람으로서 다루는 게 아니라 텍스트로서 다루고 있다”고 썼다. <벨벳 골드마인>에 이어 토드 헤인즈의 인물들은 통일된 인격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번 배반한다.

이 영화는 어쨌든 진짜 딜런에 관한 영화다. <뉴욕타임스>의 기자는 토드 헤인즈의 말을 빌려 경고했다. “딜런주의자 정도의 마니아가 아니면 봤다가 화만 날 영화일지도 모른다.” 밥 딜런을 모르면 반도 즐기지 못할 거란 얘기다. 이 영화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및 여우주연상(케이트 블란쳇)을 수상했고, 밥 딜런의 연인이자 음악적 동지였던 조앤 바에즈 역에 줄리언 무어가, 샬롯 갱스부르와 미셸 윌리엄스도 각각 다른 시기 딜런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이 흥미진진한 영화는 대사와 누드신 등 성적 표현 수위 문제로 R등급을 받고 11월21일 미국에서 제한 개봉한다.

Tip. 밥 딜런의 노래 <I’m Not There>

<I’m Not There>는 공식적으로 밥 딜런의 미발표곡이다. 딜런은 이 곡을 <The Basement Tapes>(1975) 녹음 당시 같이 녹음했는데 앨범에 최종적으로 넣지 않았다. 이 곡은 이후에 부클릿에만 실렸고 이 부클릿은 다시 2001년 리마스터링되어 <A Tree With Roots>란 제목으로 재발매되었다. 공식 릴리즈된 적은 없으나 밥 딜런의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곡 중 하나인 <I’m Not There>는 이번 영화의 O.S.T에 밥 딜런의 목소리와 소닉 유스의 버전으로 두곡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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