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겨울영화] <엘라의 계곡에서> <파라노이드 파크>
2007-10-30
글 : 씨네21 취재팀

애타게 이라크로 떠난 아들을 찾아서

<엘라의 계곡에서> In the Valley of Elah
감독 폴 해기스 출연 토미 리 존스, 샤를리즈 테론, 제임스 프랭코, 조시 브롤린 수입·배급 인터비스 개봉예정 2008년 2월

폴 해기스가 돌아온다. 주목받는 작가에서 <크래쉬>(2004)로 일약 오스카상 시상식의 영화감독으로 부상한 폴 해기스는 <엘라의 계곡에서>를 통해서는 베니스국제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다. <엘라의 계곡에서>는 현재의 이라크 전쟁을 향한 준엄한 충고다. 헌병 출신인 행크 디어필드(토미 리 존스)는 자신의 뒤를 이어 군에 지원해 이라크에 파병됐던 막내아들 마이크(조너선 터커)가 귀국 도중 행방불명됐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에 행크는 이라크의 미군 기지로 달려가 아들의 행적을 수소문한다.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현지 수사관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다. 곧 팔다리가 잘려나간 아들 마이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 실종사건은 살해사건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여자 수사관 샌더스(샤를리즈 테론)가 사건 해결에 투입된다.

폴 해기스가 <크래쉬>와는 꽤 다른 ‘전쟁’이라는 소재를 택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가 영화감독 데뷔 이후에도 <아버지의 깃발>(2006)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2007)의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크래쉬>가 보여줬던 꽉 막힌 현실에 대한 답답함도 오히려 전장에서는 더 극대화된다. 미군 당국이 별로 협력을 해주지 않아 행크가 직접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한 코스타 가브라스의 <의문의 실종>(1982)이라고나 할까. 그 과정 속에서 언제나 긍지 높은 군인임을 뿌듯해하던 행크의 자부심이 무너지게 된다. 자신의 혈육을 찾는 것과 자신의 경력은 별다른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결국 폴 해기스는 맹목적인 애국심이 와해돼가는, 그러니까 현대 미국의 조작된 신화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더구나 할리우드의 살아 있는 양심으로 인정받는 ‘운동가’ 수잔 서랜던이 마이크의 어머니로 출연한다는 점에서 그 무게감은 더하다. 더불어 <엘라의 계곡에서>는 이미 내년 오스카상의 주요 부문 수상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엘라’(Elah)는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다윗이 블레셋 군대의 골리앗을 물리친 곳이다.

Tip. <엘라의 계곡에서>가 실화?

영화는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돌아와 살해된 참전병사 리처드 데이비드의 실제 이야기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실제 그의 아버지 역시도 전직 군인 출신이다. 이 이야기는 이듬해 원작자인 마크 볼에 의해 <죽음과 불명예>라는 기사로 소개됐다. 폴 해기스는 실제 참전 군인들을 배우로 대거 기용하기도 했다.


‘죽음 삼부작’을 지나 다시 <엘리펀트>의 세계로

<파라노이드 파크> Paranoid Park
감독 구스 반 산트 출연 게이브 네빈스, 다니엘 루, 테일러 몸슨 수입·배급 스폰지 개봉예정 11월15일

구스 반 산트는 2000년대 들어 극적으로 기사회생한 감독 가운데 하나다. <싸이코>(1998)와 <파인딩 포레스터>(2000)로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져가던 그는, <엘리펀트>(2003)와 <라스트 데이즈>(2005)로 세계에서 오직 지금 그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영화가 있음을 증명했다. <파라노이드 파크> 역시 <엘리펀트>의 연장선에서 다시 그가 10대 시절의 정서로 돌아간 영화다. 그와 같은 포틀랜드 출신의 작가 블레이크 넬슨이 쓴 청년들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스케이트 보더 소년 알렉스(게이브 네빈스)는 성인 보더들의 놀이터 ‘파라노이드 파크’로 향한다. 파크에서 만난 성인 보더 무리는 알렉스에게 기차를 몰래 얻어 타는 모험을 해보지 않겠느냐 제안하고, 기차에 올라탄 알렉스는 쫓아오는 경비원을 우발적으로 살해하게 된다. 그 사고 이후 그의 세계는 갑자기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진다. 절친한 친구나 여자친구로부터도 거리감을 느끼고 부모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알렉스는 시련 속에 철저히 혼자가 된다.

<게리>(2002)를 시작으로 <엘리펀트>와 <라스트 데이즈>가 구스 반 산트의 ‘죽음 삼부작’이라면 이후 첫 번째 영화인 <파라노이드 파크> 역시 죽음을 다룬다. 그런데 더 절망적이다. 피범벅이 된 채 기찻길 위에서 죽는 경비원의 모습은 앞서 그 영화들의 수많은 죽음과 비교해도 가장 끔찍하다. 이번에도 역시 비직업 배우들을 기용했는데, 그 끔찍함만큼이나 알렉스가 홀로 스크린 위에 서 있는 풍경은 무척이나 위태롭다. 슈퍼 8mm로 찍은 스케이트 보드 시점에서의 아찔한 슬로 모션은 그 자체로 소년을 둘러싼 세상의 풍경이다. 그렇게 구스 반 산트는 그 소년이 안고 살아가야 할 트라우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것을 여러 인상적인 이미지와 사운드의 실험을 통해 보여주는 구스 반 산트식의 솜씨는 물론 빼어나다. 심지어 엘리엇 스미스부터 니노 로타까지 끌어들인 이번 사운드트랙의 실험은 마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구스 반 산트의 의지처럼 보인다.

Tip. 크리스토퍼 도일의 촬영

<파라노이드 파크>의 촬영감독은 크리스토퍼 도일이다. 구스 반 산트와 그는 <싸이코> 이후 거의 10년 만에 다시 만났다. 구스 반 산트는 그에 대해 “현존하는 촬영감독 중에서 가장 모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라며 “잭슨 폴록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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