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이창동 감독의 <시>
2009-01-0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란 무엇인지 질문하련다

‘이창동 프로젝트’ 혹은 <시>라고도 했다. 잘 이해되지 않는 한줄짜리 시놉시스가 인터넷을 떠돌기도 한다. 2007년 그해에 가장 가혹하면서도 끝내 잊혀지지 않았던 영화 <밀양>을 만든 그의 다음 행보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는 지금 삶의 어느 곳을 들여다보며 그 메마름을 염려하는 것일까.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아는 이가 많지 않았다. 그 비밀에 관해 이창동 감독이 본격적으로 운을 뗐다.

-‘시’라는 제목은 가제인가.
=처음부터 제목은 시였다. 그 밖에 다른 걸 생각해봤는데 딱히 떠오르질 않았다. 어디에는 ‘포에트리’라고도 나와 있던데 그건 실은 영문 제목이다. 포엠(한편의 구체적인 시)이 아니라 포에트리(문학 형식으로서의 시)인 거다.

-인터넷에는 <시>의 내용이 “15살 손자를 구하기 위해(혹은 비행청소년인 손자를 구하기 위해) 할머니가 시를 쓴다”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 한줄 설명이 떠돈다.
=누가 그런 소설을 썼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이야기하지 뭐. 밀양처럼 특정한 도시가 필요한 건 아니고 경기도 지방도시, 예를 들면 가평 정도일 것이다. 60대 중반의 여성이 있다. 할머니라고 부르지는 말자. 그녀가 외손자와 같이 살고 있다. 딸이 맡겨놓은 외손자를 키우는 거다. 딸은 이혼을 했고 몇년째 다른 곳에서 돈을 벌고 있다. 생활보호대상자이고 생활이 어려우니까 파출부도 나가고 하는 이 60대 중반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지방에는 왜 구내회관 같은 데가 있지 않나. 지방에 그런 거 많다. 거기에서 강좌들도 많이 한다. 이 여성이 그중 문학 강좌를 듣는다. 무슨 계기냐 묻는다면, 사실 별 계기도 없다. 그런데 지방의 무명시인쯤 될 그 문학 강좌의 강사가 한달 과정이 끝나면 시를 한편 써야 한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그래서 이 60대 여성이 생전 처음으로 시라는 것을 쓰게 되는 이야기다. 그 시가 잘 안 써져서 끙끙거리게 되는 걸 옆에서 지켜보는 거다.

시는 도대체 뭐냐,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드냐

-<밀양>을 끝내고 나서 변해가는 관객의 감각에 어떻게 맞춰 나갈지 고민이라는 생각을 들려준 바 있다. 그 고민과 연결되는 면모가 있나.
=사실 이번에는 관객과 좀더 만나야 하고, 어떻게 만나야 할지 등에 관한 그런 고민의 소산이라기보다는 이왕 잘 안 만나지는데 좀더 한번 가보자, 하는 거다. 못 만나는 쪽으로 더 간다고 할까? 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뭐. (웃음)

-가장 많은 관객을 만났던 작품이 최근 영화 <밀양>이었는데도 말인가.
=관객이 제일 많이 들었지만 그건 전도연의 칸 여우주연상 수상 덕을 본 거다. 예전 작품은 불편했다는 사람이 많아도 그만큼 소수의 적극적인 지지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밀양>은 전반적으로 우호적이기는 한데 적극적인 지지자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사실은 위기감을 좀 느꼈다. 위기감이란 다른 뜻이 아니고 영화매체가 과연 소통하는 매체인가 하는 점에서의 위기감이다. 점점 그런 기능이 약해지는 것 같다. 그런 것에 관객도 관심이 없어지는 것 같다. <시>는 이런 상황에 대해, 이런 나에 대해, 질문을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고 영화를 만드는 나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시란 도대체 뭐야, 나는 사실 이런 질문을 많이 했던 사람이기도 했고. 시란 무엇이냐는 질문은 모든 예술은 무엇이냐 하는 질문하고도 같다. 영화가 뭘 할 수 있는지, 우리는 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 것인지 묻는 질문과도 같다. 영화에는 시를 쓰는 사람이 나오지만 나에게는 영화를 만드는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인 거다. 관객에게 갈 수 있든지 못 가든지 그전에 일단 이런 질문을 해보자는 것이다.

-영화매체에 대한 질문이라고 했는데 영화를 택하지 않고 시에 대한 이야기를 택했다.
=<밀양>을 생각할 때 일부 가졌던 영화에 대한 질문이 이어져 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여자에게 있는 건 일상밖에 없다. 일상이라 함은 내세울 것 아무것도 없는 고만고만한 삶의 항목과 반복적인 디테일들이지 않나. 그런데 영화감독의 이야기를 일상이라고 주장하는 건 좀 그렇다. 일상에서, 삶에서 시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이 영화감독을 통한 영화에 대한 질문보다 더 가까울 것이라고 보았다. 이 영화가 영화를 이해하는 사람들끼리의 암호 같은 질문이 아니며 보통 사람들에게도 흥미있는 질문일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한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시가 영화보다 더 보편적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삶에 있어서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의미란 무엇인가 물을 때 이런 걸 다 뭉뚱그려서 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시를 택한 거다. 삶에 있어서의 한 시각. 현실적이거나 세속적이지 않은 어떤 것. 그걸 잘 모르니까 우리는 시라고 하자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건 우리 일상의 도덕성과도 관계가 있다. ‘시는 도덕과 무슨 관계가 있지?’ ‘시는 도덕에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지?’ 하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비행청소년이라고 알려져 있는 손자를 구하는 것과 60대 여성의 시 짓기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는 말인가.
=그 상상의 갭을 메울 수만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질문을 하는 영화인데 시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이미 질문 자체가 안되지. 아, 시로 뭘 할 수 있는 거구나, 이렇게 되니까 말이다.

-원래는 좀더 일찍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2008년 가을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지금은 2009년 8월경이 될 것 같다. 계절에 큰 상관은 없지만 너무 추우면 안되는 장면들이 있어서 영화 전체를 겨울에 찍을 수는 없다. 그래서 가을을 생각했는데 잘 안된 거다. 그러면 남은 건 봄인데, 이왕 넘기는 거 여름에서 가을쯤 하면 좋겠다, 이렇게 된 거다. 한 가지 덧붙이면, 흥행적으로 약할 거란 생각이 좀 있어서 난생처음으로 국제영화제 출품 스케줄도 고려했다.

-배우는 거의 결정이 된 것인가.
=계약을 한 상태는 아니고 아직 확정짓지 않았다. 그리고 60대 중반 배우가 많지 않다. 정말 소수다. 한국에서 엄마 역 찾기가 정말 어렵지 않나. 주인공 자체가 세련되고 개성있는 인물은 아니다. 아까 말 한대로 생활보호대상자고, 파출부 나가고, 손자 기르고, 하는 그 정도의 객관적인 면모만 생각해볼 수 있는 인물이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이창동 영화의 어느 주인공도 평탄한 삶을 산 사람은 없다. 그들은 늘 고통의 전이라고 부를 만한 경험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이번 주인공의 경우는 어떠한가.
=고통과 결부되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은 있겠지만 전작들처럼 드라마로 표현되는 두드러진 사건으로서 고통이 드러난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이 영화 속의 고통의 강도를 구분해서 말하기란 어렵다. 어떤 면에서는 여전히 고통에 대한 질문이지만 서사적인 의미에서 강도의 문제는 아니다.

주인공은 삶을 질문할 나이인 60대 중반 여성

-<밀양>은 전작들보다 카메라의 자의식이 더 돋보였던 작품이다. <시>에 대해서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아름다움이라는 것과 결부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아름다움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그런데 그게 최소한 영상 포엠으로서의 아름다움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어느 접점에서 보여줄 것인지 하는 점이다. 일상에서 아름다움은 어디 있는가 하는 이 질문이 우리 삶의 질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같을 텐데, 관습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그걸 말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그게 어려운 것 같다.

-그림이 아니라 시라는 데에 차이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주인공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면 내가 말한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없다. 화가는 시각적인 아름다움,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 비주얼을 다룬다. 그런데 시는 비주얼이 아니다. 아니 비주얼만은 아니다. 아름다움의 의미 같은 것이다. 거기에 차이가 좀 있을 것이다.

-30대 여성이 아니라 60대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나.
=60대 여성이야말로 질문할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했다. 30대 여성이 시를 쓰는 건 질문이 아니다. 쓰면 되니까. 그런데 60대 여성이 시를 쓴다고 하면 그건 본인이 질문을 안 해도 옆에서 질문을 하게 되어 있다. “그 나이에 시는 뭐하러 써?” 이렇게 말이다. 시로 뭔가를 새로 시작할 나이가 아니다. 하나하나 잊어가는 시기다. 하지만 우리 삶에 대해서 질문할 나이라는 거다. 자기는 곧 삶에서 물러날 테고 자기가 있는 이곳이 자기 것은 아니지만 손자의 것은 될 수 있으니까. 그건 우리에게 하는 질문이다. 음… 사실은 이런 논리적인 걸 생각했던 건 아닌데…. (웃음)

-<시>에서 새롭게 해보고 싶은 게 있나.
=기본적으로는 내가 해왔던 것들, 반서사적이라고 말하기도 힘들고 남들이 말하는 서사에 갇혀 있지도 않은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작품을 할 때마다 달라지려고 한다. 보는 사람에게는 큰 변화가 아니겠지만 나에게는 항상 대대적인 변화다. 이번 작품은 어떤 영화가 될 것인지 스스로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 <밀양>도 그러했지만 나한테는 또 한번의 시련이다. 나도 잘 모르는 그 무언가에 대해서 질문하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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