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세명의 대통령 이야기다. 시국이 하 수상하니, 이게 대체 뭔가 하고 가자미눈을 뜰 수도 있다. 하지만 장진 감독한테 그런 식의 질문을 던져봤자 소용없다. 그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던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많으며, 그것이 가시화되는 시점은 외부 상황과 별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신작 <굿모닝 프레지던트> 줄거리를 듣다보니 괜히 걱정스러워진다. “보는 사람이 ‘특정한 그들’을 떠올린다면 그건 그 보는 사람의 자유에 맡길 일이다.”
먼저 나이든 대통령 A가 있다. 어느 파티장에서 다 같이 복권을 구입하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A의 복권이 당첨된 것이다. 그것도 몇백억짜리! 이제 대통령의 진퇴양난이 시작된다.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다음 받을 연금이라봤자 1억∼2억원 정도인데, 굴러들어온 호박을 체통 때문에 차버릴 것인가 말 것인가? 다음으로 야당 총수였던 B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젊고 잘생기고 야망과 카리스마가 넘치는, 말하자면 존 F. 케네디와 버락 오바마를 합친 듯한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죽자사자 덤벼드는 소시민이 있었으니, 소시민의 사연인즉슨 특수체질인 아버지가 수술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데 마침 B가 그 특이체질과 똑같은 체질인 것이다. 죽어가는 아버지를 위해 그의 신체 일부를 기증해달라고 애걸한다. B는 고민에 빠진다. 하나의 생명도 구하지 못한다면, 과연 몇 백만명의 생명을 지키는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C가 등장한다. 그는 법무부 장관 출신이자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C의 남편은 평생 가축학 교수로 살아왔고 자신의 조용한 삶에 만족해왔다. 하지만 C가 덜컥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바람에 ‘영부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해외 순방을 나가기라도 하면 다른 영부인들과 어울려 웃으며 차를 마시고 외교적 수다를 떨어야 한다. C와 C의 남편이 지닌 고뇌는 그토록 사소하지만 평생 지켜온 퍼스낼러티를 위협할 만한 수준이다.
“태클이 들어온다면 정말 땡큐지”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시대적 배경이 절실하게 필요한 영화가 아니다. “굳이 시간대를 따지지 않더라도 한국의 몇 가지 고질적인 문제점들 있지 않나. 대북관계, 미국과 일본과의 외교문제, 부동산 문제, 교육문제.” 지금껏 거의 다뤄지지 않은 대통령의 사소한 일상과 ‘찌질한’ 실존적 고뇌가, 한국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정면으로 들이대는 블랙코미디와 함께 장진 영화 초기의 왁자지껄 웃음 위에 실려나온다. “<킬러들의 수다>나 <간첩 리철진>보다 훨씬 더 웃길 거다.” 굳이 ‘모 대통령’, ‘모 장관’을 연상하지 않더라도 한국의 현대사를 돌이켜볼 수 있게 하는, 굳이 말하자면 대통령보다는 한국사회를 향해 건네는 ‘굿모닝’ 인사가 될 것이다.
“정치적 부담은 사실 전혀 없다. 만에 하나, 정말로 만약에 정치적 수위를 놓고 태클이 들어온다면 정말 땡큐지. (웃음) 마케팅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테니까.” ‘딱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불만과 답답함의 수위’를 프리즘 삼게 될 <굿모닝 프레지던트>는 정치코미디와 지극히 사적인 코미디가 크로스오버되는 전대미문의 소동극이 될지도 모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장진 감독이 <굿모닝 프레지던트> 한편만을 붙들고 있었을 리가 없다. 그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초고를 이미 완성했고, 지금은 ‘UFO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 <에일리안첨지> 시나리오의 마무리 단계다. 조선시대 에일리라는 지역에 사는 안 첨지가 UFO와 마주치면서 겪는 가상역사 SF극인 <에일리안첨지>는, <바르게 살자>의 라희찬 감독이 찍게 될 두 번째 UFO 작품(제목 미정)과 더불어 “장진이 SF를 만든다면 대체 어떤 게 나올까”라는 질문에 대한 보기 좋은 답이 될 것이다.
더불어 그가 새로 대표로 취임한 ‘소란플레이먼트’도 빼놓을 수 없다. 공연과 교육 전문 집단이자 제작 전반 상황을 이끌게 될 이 회사(참고로 기존에 그가 이끌던 ‘필름있수다’는 전문적인 기획집단으로 역할이 나뉜다)에서, 장진 감독은 위의 신작들과 함께 이서군 감독의 신작 <된장>, 라희찬 감독의 UFO영화에 이르기까지 많게는 최대 5편의 신작을 2009년에 한꺼번에 진두지휘하게 된다. “1년 동안 준비해왔으니 내년에 그 결과물을 다 보여줘야 한다. 상황이 어렵다고 뒤로 물러서 있는 건 싫다. 거대자본의 도움 없이도 우린 지난 10년 동안 우리 색깔을 지켜온 집단이다. 잠깐 상황이 어려워졌다고 몸 사릴 필요가 없다.” 생각해보니 장진 감독의 연출작이 없었던 2008년은 좀 허전했더랬다. 2009년은 꽤 소란스러워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