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홍상수 감독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09-01-06
글 : 정한석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내 영화 중에 가장 웃기다고?

구경남(김태우)이라는 영화감독이 있다. 그는 두번의 여행을 간다. 한번은 영화제 심사위원 자격으로 제천을 방문하고 12일 뒤에는 특강을 위해 제주도에 간다. 구경남은 제천에서 공연희(엄지원)라는 영화제 프로그래머를 비롯해 몇 사람을 알게 되고 오랫동안 못 만났던 부상용(공형진)이라는 친구를 만나 그의 집까지 초대받아 부상용의 아내(정유미)와 셋이 술도 마신다. 그 자리가 빌미가 되어 나중에는 뭔가 이상해진다. 그 뒤 선배(유준상)의 초빙을 받아 제주도로 특강을 간 구경남은 화백 양천수(문창길)의 아내가 자신이 예전에 좋아했던 고순이(고현정)라는 걸 알게 된다. 이 두번의 여행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알고 무엇을 잘 알지 못하게 되는 걸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얼마 전 완성됐고, 그 아리송한 매력을 마침내 2009년 상반기에 확인할 수 있다. 흥미롭기 그지없는 홍상수식 여행에 관해 홍상수 감독이 지금 말한다.

-촬영 때가 늘 중요하다. 이번에는 어떤 걸 생각하며 찍었나.
=오늘 찍은 것과 어제 찍은 것이 어떻게 흐름이 연결되는지 보고 트리트먼트에 있는 것과 찍은 걸 비교하면서 이 영화의 전체 위치에서 이 장면이 갖는 위치나 비중 같은 걸 생각하려고 했다. 중요한 건 그 날 아침에 생각해내는 것이고 그걸 찍어내는 게 중요하다. 거기서 뭔가 발견되기를 바라는 거고. 전에는 미리 알고 들어가는 디테일한 부분이 숫자적으로 칠 때 반 정도 또는 5분의 2 정도라고 한다면 이번에는 그것보다 더 적었다. 미리 정해놓은 게 적으니까 현장 당일 아침에 뭐가 나오느냐 하는 게 더 중요해진 거다. 더 적으니까 몸이 힘든 건 더하지만 확실히 집중이 된다. 기댈 게 없으니까 더 편해지기도 하고. 트리트먼트도 이번에는 더 짧았다. 2~3일 동안 썼던 거 갖고 고민하다가 덧붙여서 한 5일 정도 썼다. 쓴 양도 작고 디테일도 적었다. 현장에 가서 더 열심히 해야겠구나 생각했던 거다. 배우들한테도 아무 얘기 안 해줬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현장에 왔다. 구경남 하는 (김)태우도 아무것도 모르고 왔으니까.

제목부터 정한뒤 촬영지·내용 순으로

-작품을 구상할 때 한 가지는 아니지만 늘 몇 가지 단상들이 얽혀서 시작되지 않나.
=제목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작년 겨울쯤인가 누구와 얘기하는데 그 사람이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뭐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들었다. 그런데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그 말이 딱 잘려서 내 머리에 남더라. 그래서 바로 벽에다 메모해서 붙여놨다. 그렇게 해서 제목을 정했다. 그러고 나니 어디서 찍을까 정해야 되겠더라. 내가 촬영 관련해서 말고는 별로 돌아다니질 않지 않나. (문화평론가) 남재일씨가 제천에 있는 학교에서 특강을 해달라고 해서 제천에 간 적이 있다. 그래서 제천을 정했고, 제주도는 원래 좋아하기도 하지만 무슨 일 때문인가 1, 2년쯤 전에 갔던 게 기억나서 두 군데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천은 옛날부터 저수지가 유명해서 제천이 된 거 아닐까 싶은데, 거기는 물이 땅에 갇혀 있는 형상이고, 제주도는 물에 땅이 갇혀 있는 형상이더라. 그게 재미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지명도 둘 다 ‘제’자로 시작하고. (웃음) 두 군데 가는 간격을 너무 떨어뜨리지 않고 연결하고 싶었다. 막연하게 일주일은 너무 짧고 20일은 너무 길고 그래서 12일 정도로 간격을 두고 가는 걸로 했다. 그 다음에 뭘 할 건가 생각해보니 영화감독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제천에는 영화제에 초청받는 걸로 하고 제주도에는 특강 가는 걸로 정했다. 그 다음에 알맹이는 또 뭘 할 것인가 생각해봤다. 제목 정하기 전에 술 먹다가 이번 영화 제목을 ‘새 삶’이라고 하면 어떨까 하고 말한 적이 있다. 새 삶이라는 주제가 나한테 뭔가 끌리는 게 분명히 있었던 것 같다. 그때도 그냥 그 말이 주는 느낌이 좋더라. 내 밑에서 그것과 관련된 뭔가가 쌓여 있었겠지. 새 삶을 사는 사람들 또는 그렇게 산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인공은 방관자가 되는 거니까, 이름은 구경남으로 하자, 이런 식으로 순서대로 정해나간 거다.

-그렇다면 ‘새 삶’이라는 것이 이번 영화의 큰 덩어리이기는 할 것 같다.
=그게 하나의 비빌 언덕이었다. 내가 그걸로 뭔가 얘기해보고 싶은 게 있겠지 하고 부딪쳐본 거다. 구경남이 그래서 새 삶을 시작했다고 믿는 두 커플을 돌아다니면서 만난다는 것으로 설정을 해놓았고.

-실은 초호화 캐스팅이다. 김태우, 고현정, 엄지원, 정유미, 공형진, 유준상, 하정우 등이 출연한다.
=돈 적게 들여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촬영할 텐데 할 수 있나, 라고 물어봤는데 다들 고맙게도 도와줬다. 주·조연들은 전부 노개런티로 해줬다.

-인물들 이름이 재미있다. 그런데 구경남이라는 이름은 전작과는 좀 다르게 직접적인 인상을 준다.
=구경하는 사람이라 그렇게 지은 건데, 구씨도 있고, 경남이라는 이름도 있고. 오히려 약간 개구쟁이처럼 지은 이름은 제천에서 등장하는 공형진 이름이다. 이름이 부상용인데 그가 구경남을 때려서 부상시킨다. (웃음)

-몇명은 예전에 같이했던 배우들이다. 다시 하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점이 있던가.
=<극장전> 때 (김)상경이하고 두 번째 할 때 그런 비슷한 고민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그런 걱정이 안 들더라. 어차피 하는 짓도 다르고, 꼭 달라야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인물을 마음속에서 윤곽을 만들고 미리 이해하는 것이 환상이라고 본다. 그걸 싫어한다. 그건 언어적으로 말이 되는 사람이 되게 만든다. 아니면 어디서 이미 본 것과 이미 있는 것과 결합되면서 안전한 수준이 되어버린다. 나는 그 둘 다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어적으로 말이 되거나 이미지로 익숙한 인물을 미리 갖고 가는 것이 내가 하려는 것에 방해가 되는 것 같다.

-촬영 중 갑자기 떠올라 찍은 장면 중 기억나는 게 있다면.
=지금 생각나는 거 하나는 제주도 장면에서 순이가 밥 차리는 동안에 구경남이 바깥에 나가 돌아다니는 장면이 있다. 내가 집주인 되시는 분과 뭔가 얘기하다가 이 수로는 뭐예요 하고 물어봤던 게 들어간 거지. 거기가 강요배 화백의 화실이다. 얘기 듣고 첫 번째 가본 화실인데 너무 환영해주시더라.

-제주도에서 학생들에게 구경남이 특강하는 장면이 있다. 실은 평상시 홍상수 감독 본인이 생각하는 바가 거기 겹치기도 한다. 나중에 영화를 본 관객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게 직접 연결되는 것을 꺼리지는 않았나.
=그 생각이 뭐 대단하게 특별한 건 아니다. 영화에서는 덜 그럴지 모르지만 미술이나 문학에서는 그런 태도라는 게 말만 다르지 내용은 이미 알려져 있는 거니까 보편성이 있는 거라고 봤다. 재미있는 건 구경남이 특강할 때 딴죽거는 여자애가 나중에 양천수 화백이라는 사람이 말할 때는 “와, 천재시네요” 라고 한다는 거다. (웃음) 사실은 똑같은 말인데. 중요한 건 실천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어쨌든 그런 표현은 나 개인에서 온 것일 수 있지만 태도 자체는 특별한 게 아니니까 괜찮을 것 같았다.

-근래 홍상수 영화 중 가장 웃기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가? 그 영화를 관람했을 당시에 어떤 사람으로 만났는가, 배경, 상황, 그날 아침에 뭘 하고 왔는지 등이 다 영향을 주는 것 같다. 관객 반응이 다양하다는 건 좋은 일이고.

고현정부터 하정우까지 초호화 캐스팅이네

-지금으로서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영화에는 <밤과낮>의 꿈장면에 비견할 만한 아주 기이한 꿈장면도 나온다.
=현장에서 생각난 거다. 트리트먼트에 없었다. 공형진이 처음에 등장하는 장면을 아침에 쓰고 있는데 갑자기 귀신 같다는 말이 떠오르더라. 그러면서 공형진, 정유미 커플이 귀신 집에 사는 귀신이라고 상정을 한 거다. 두 커플이 좀 이상하지 않나. 꿈에서도 좀 이상하고. 이걸 이상한 귀신 집으로 그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거다. 구경남이 뭔가를 잘못했는데 뭔지는 몰라야 한다, 하지만 생뚱맞게 봉변을 당해야 한다, 이 정도만 정하고 그 집 촬영에 갔다. 하지만 꿈을 꿀지 뭘 할지는 몰랐다. 그런데 귀신 집으로 풀린 거다.

-작품마다 변해가는데 <밤과낮>에 비교한다면 더 펼쳐놓았다는 느낌도 든다.
=좀더 은근해지는 쪽으로 가는 것 같다. 하지만 은연중에 배열된 것들이 있긴 하다. 누군가 아침에 일어났더니 코고는 소리가 들리는데 식탁 앞에서 물을 마신다, 고 하자. 그런 장면이 제천에서도 제주도에서도 일어난다. 그런 비슷한 게 몇 가지 있다. 가장 큰 건 새 삶을 산다고 믿는 두 커플의 대칭이고.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중 하나인 단편 <첩첩산중>도 완성했다.
=첩첩산중할 때 ‘첩’의 한자를 자세히 보면 좀 외계인처럼 생겼다. (웃음) 어쨌든 30분 조금 넘는다. 전주에 정유미가 놀러가서 문성근도 만나고 이선균도 서울에서 내려오고 하는 이야기다. 연극원 출신의 김진경, 소설가 은희경씨도 나온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