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이 감독의 신작이 궁금하다] 박흥식 감독의 <협녀>
2009-01-06
글 : 강병진
사진 : 이혜정
칼을 쥔 여인이 세상과 부딪히면…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의 박흥식 감독이 ‘무협영화’를 찍는다. 칼을 든 무사들이 등장하는 진짜 무협영화다. 감독 본인은 이제 “의외라는 시선들에 신경 쓸 시기가 지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전작 3편에 이어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까지를 봤을 때 박흥식 감독과 ‘무협’의 관계는 의외의 만남이다. 하지만 이 무사들이 여성이라면 어떨까? 이 경우에는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전작들에서 화장품 가방을 든 여자(<사랑해, 말순씨>)와 때밀이 수건을 든 여자(<인어공주>)를 그렸던 박흥식 감독이 이번에는 ‘칼을 든 여자’를 탐구하는 것이다. 제목하여 <협녀>다.

영화의 배경은 중기에서 말기로 접어드는 고려다. 무신정변이 일어나면서 남자라면 누구나 권력의 아귀다툼에 칼을 들이밀던 이때, 변방에 위치한 어느 항구마을에 세 가족이 나타나 찻집을 차린다. 어미로 보이는 50대의 눈먼 여자는 차를 팔고, 누이로 보이는 20대 여자는 차를 볶고, 막내인 듯한 남자는 손님들의 시중을 든다. 하지만 밤이 되어 ‘茶園’이라 쓰인 등이 꺼지면 이곳은 누군가를 죽이고픈 사람들의 사연으로 가득 찬다. 이곳은 바로 세간에 ‘설랑’으로 불리는 자객의 근거지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곳에 기거하는 이들의 정체도 따로 있다. 눈이 먼 여자는 전설적인 자객인 신녀이고 차를 볶던 여인은 그녀의 손에서 자객으로 길러진 청녀다. 살인청부를 받은 신녀가 청녀에게 지령을 내리면 그녀는 막내인 감초의 도움을 받아 살인을 수행한다. 언뜻 가족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사실 복수심으로 뭉친 집단이다. 과거 동료이자 연인인 남자에게 배신을 당한 신녀는 그와의 결투 도중 눈이 멀었고, 자신을 대신해 복수를 해줄 청녀를 키운 것이다. 무신정변으로 부모를 잃은 청녀 또한 신녀의 복수를 해주고 난 뒤에는 자신의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날 것이다. 칼에 피를 묻히며 복수의 중심부를 향해 달려가던 어느 날, 이들 곁에 또 다른 여자가 등장한다. 무사가 되고 싶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될 수 없었던, 하지만 청녀를 보며 그녀와 같은 무사가 되길 소원하는 여자 검녀다.

빠르고 사실적인 검술액션이 컨셉

“매혹이 중요하다. 이야기도 매혹적이고, 인물도 매혹적이어야 한다.” 박흥식 감독이 여자의 손에 칼을 쥐어준 이유도 ‘매혹’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한번도 무협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던 그는 <인어공주>를 촬영할 당시, 아내가 선물한 김용의 <사조영웅전>을 탐독했다. 그곳은 또 다른 매혹의 세계였다. 매초풍, 이막수, 소용녀, 황룡 등의 여자 무사들을 그곳에서 만난 것이다. “이들이 남자를 흉내내지 않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여성성을 지니면서도 강인한 여성들의 모습이 매혹적이더라.” 영화의 액션 또한 볼거리보다는 그들의 매혹적인 모습과 내면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다. 몸이 부딪히고 칼을 통해 감정이 수반되는 액션, 그리고 <자토이치>나 <수라유키히메>에서 등장하는 빠르고 사실적인 검술액션이 현재 목표로 삼은 컨셉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박흥식 감독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당연히 칼을 쥔 이 여인들이 세상과 부딪히며 겪게 될 고민이다. <인어공주>와 <달콤한 나의 도시>를 함께한 송혜진 작가에게 시나리오를 맡긴 이유도 그 때문일 듯. 이것은 곧 <협녀>의 이야기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기 위한 여지이기도 하다. 영화는 세명의 여자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또 다른 관계에도 주목한다. 신녀의 눈을 멀게 한 남자와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또 다른 남자가 새로운 갈등을 낳고 신녀와 청녀의 만남에 얽힌 비밀이 드러나면서 여인들의 내면은 더욱 센 밀도를 띠게 될 것이다. “그동안 내가 안으로 강한 여자의 이야기를 했다면, 이번에는 안팎으로 모두 강한 여자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복수를 다짐한 여자들의 내면을 깊이있게 접근하는 영화로 만들고 싶다.” 말하자면 박흥식 감독에게 <협녀>는 액션영화라기보다는 드라마에 가까운 작품인 셈이다. 게다가 여전히 여성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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