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백진희] 저, 착한 아이 아닌데요
2009-06-26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반두비>의 백진희

“착한 아이냐, 아니냐.”

19살 백진희는 <반두비>의 오디션장에서 신동일 감독에게 질문을 받고 선뜻 ‘착하지 않다’고 대답했다. “또래 친구들을 제치고 혼자 캐스팅되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게 착한 모습 같지는 않더라고요.” 그녀의 ‘못된’ 심성에 감독이 반했다. 오디션 응모자들 모두가 자신은 ‘착한 아이’라고 할 때 혼자 똑 부러지게 자신을 정의하던 아이. 백진희가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 노동자 ‘카림’과 우정을 나누는 당찬 여고생 ‘민서’가 될 찬스를 얻는 순간이었다.

<반두비>의 ‘민서’는 외톨이다. 죽도록 미운 엄마의 애인, 친구들처럼 영어원어민교사에게 수업도 받고 싶지만 돈이 없는 현실. 비뚤어지는 그녀를 다잡아준 건 예상치 못했던 친구 ‘카림’이다. 악덕 사장에게 속아 임금을 떼이고도 희망을 잃지 않는 건전한 청년 카림과 만나면서 민서는 혼란스러웠던 자신의 성장기에 새로운 동력을 찾는다.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안마서비스 업소를 들락거리는 ‘나쁜 행동’도 일삼지만, 친구 카림을 위해서 그의 사장에게 귀싸대기를 때려주는 파워풀한 용기도 가진 당찬 소녀 역시 민서다. “욱하는 성격이 저랑 민서랑 똑 닮았어요. 그래서 그 장면 찍을 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웃음)”

미처 알지 못했던 이주 노동자라는 어두운 사회의 일면.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난생처음 외국인 배우와의 촬영도 서먹하기만 했다. 촬영 두달 전부터 다같이 모여 연습하고 함께 밥도 먹고, 감독과 상의하면서 민서를 공부했다. 그렇게 주 6일을 꼬박 민서로 살았다. 그래도 안마서비스 업체에서 일하는 수위 높은 장면을 찍을 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다행히 촬영을 마쳤는데 집으로 돌아오다 저도 모르게 막 울었어요. 긴장이 풀어져서 그랬던가봐요.”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CF는 많이 찍었지만 <반두비>는 그녀에게 연기자의 표식을 붙여준 첫 작품이다. 휴대폰 광고의 깜찍발랄한 ‘시보소녀’도 ‘깨끗하고 맑고 자신있게’ 예쁘기만 한 화장품 광고 모델도 아닌 진짜 연.기.자. “이거, 우산으로 바꿔주세요.” 영화 <키친>에서 딱 한마디의 대사를 받았던 단역배우 백진희는 그렇게 당찬 주연으로 이제 한편의 영화를 끝냈다. “연출을 전공으로 택할 때 부모님이 무척 반대하셨는데 영화 개봉한다고 하니 비로소 인정해주셨어요.” 얼마 전 PD가 선물해준 <88만원 세대>를 읽으면서 자신의 청춘에 대해 두려움도 느꼈다는 그녀는 아직 성장 중이다. “연기는 한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사는 거잖아요.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앞으로 경험을 많이 쌓아서 보완하려고 해요. 이건 평생할 제 직업인걸요.” 이주 노동자에 대한 선입견으로 생긴 <반두비>에 대한 잡음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진정성을 설파한다. “영화 보시고 나면 그런 생각 절대 안 하실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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