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의 직업은 수도 없이 많다. 그는 모두가 다 알고 있듯 연기를 하며, 연출도 하고,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선 개그도 한다. 또 가끔은 책도 쓰고, 도쿄예술대학 대학원에선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는 이름도 두개다. 연기와 코미디를 할 때는 비트 다케시, 연출을 할 때는 기타노 다케시. 웃음을 줄 때는 그저 바보 같지만 <소나티네> <하나비> 같은 영화에서 폭력을 휘두를 때면 정말 섬뜩하다. 그는 일본사회를 비판할 줄 아는 연예인이지만 동시에 도쿄도 이시하라 신타로 도지사를 지원하는 보수파이기도 하다. <피와 뼈>의 모습 그대로 가부장적인 아버지론을 주장한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모저모가 서로 엉켜 있다. 부딪히고 겹친다. <다케시들>에서 그가 스스로를 분해하기 시작했을 때 그래서 그 모습은 이해가 됐다. 여러 모습을 가진 자가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작점 같았기 때문이다. 기타노 다케시는 이때부터 자신의 이름을, 그리고 직함을 하나둘 부숴나가기 시작했다.
<감독만세!>는 기타노 다케시 스스로 ‘자기 분신에 대한 3부작’ 중 두 번째 영화라 부르는 작품이다. 탤런트로서 자신의 존재를 조각냈던 <다케시들>에 이어 기타노 다케시는 <감독만세!>에서 감독으로서 자신의 위치를 분해한다. 12편(2007년 기준)의 장편을 만든 감독, 그중 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단 한편. 기타노는 자신을 “잘 팔리지 않는 감독”이라 비판한 뒤 이야기의 문을 연다. 그리고 여기 “두번 다시 갱영화를 찍지 않겠다” 선언했던 과거 인터뷰가 겹친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화를 찍을 것인가. 기타노 다케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빔 벤더스가 좋아한다는 오즈 야스지로식의 영화를 만들어보자. 카메라가 로앵글로 바뀐다. 부부가 테이블 사이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하고 차를 마신다. 하지만 실패. 차 한잔 마시는 데 30분이나 걸리는 영화에 관객이 들 리 없다. 폭력을 피하려는 기타노 다케시의 시도는 이렇게 몇번 더 이어진다. 지금까지 찍어본 적이 없는 러브스토리, 호러영화에 도전해보고 <올웨이즈 3번가의 석양>이 히트한 점을 고려해 쇼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도 만들어본다. <감독만세!>는 이렇게 서로 다른 장르의 영화를 도전의 실패담으로 채워넣는다. 기타노 다케시 스스로에 대한 자학이 바탕이 된 이야기가 일본영화계의 현재, 관객에 대한 불만, 영화감독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모두 함께 훑는 셈이다.
“대범한 무적의 표현방식.” <키네마준보>의 평처럼 <감독만세!>는 지금까지 기타노 다케시가 보여준 그 어떤 영화보다 황당무계한 작품이다. 기타노 감독의 마네킹이 건강검진을 받으며 시작하는 영화는 슬랩스틱 코미디부터 <자토이치>식의 액션, 용감한 풍자와 엉뚱한 설정을 마구 뒤섞어 뱉어낸다. 몇번의 도전과 실패는 <약속의 날>이란 SF영화로 이어지는데 이 영화 속 영화가 기타노 영화의 특기, 대중을 의식한 기타노, 스스로를 부정하려는 기타노 등을 경계없이 드러낸다. 그야말로 ‘울트라 버라이어티 무비’다. 화가를 주인공으로 했다는 3부작 중 마지막 영화 <아킬레스와 거북이>도 보고 싶다. 완벽한 오리지널리티와 자신에 대한 진심어린 성찰. <감독만세!>는 기타노 다케시의 다면성을 함께 고민하게 하는 유쾌한 수작이다.
TIP/ 기타노 감독의 울트라 버라이어티 무비. 그의 모든 영화를 능가하는 웃음과 황당함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