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부터 ‘장 클로드 반담’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360도 돌려차기의 달인, 상대는 언제나 그가 때려주기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서 있던 수많은 액션영화의 히어로 장 클로드 반담, 그 이름이 맞다. 그는 최근까지도 매해 <웨이크 오브 데스>(2004), <세컨드 인 코맨드>(2006), <언틸 데스>(2007) 등 B급 액션영화를 꾸준히 찍어오고 있었다. 결코 액션영화가 아닌 블랙코미디 <JCVD>는 처음으로 고향 벨기에에서 찍은 장 클로드 반담의 자기 반영적인 영화이자, 그가 자신의 이름 그대로 출연하는 가짜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실베스터 스탤론이 <록키 발보아>(2006)에 출연하며 환갑이 된 자신의 육체의 노쇠함을 그대로 드러내고, 영원한 라이벌 스티븐 시걸이 뜻밖의 코미디영화 <양파 무비>(2008)에 출연하며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한 것처럼 20세기 아날로그 ‘근육’ 액션스타의 막내라 할 수 있는 장 클로드 반담 역시 쉰살이 다 된 자신의 쓸쓸한 그림자를 그대로 보여준다. 오프닝의 롱테이크 액션신부터 뭔가 예감이 좋다.
영화현장에서는 여전히 B급 액션영화에 출연하며 젊은 감독의 비아냥거리가 되고, LA법원에서는 딸아이의 양육권 문제로 법정 공방 중인 장 클로드 반담이 고향 벨기에로 온다. 여러모로 궁지에 몰린 그가 은행에 현금을 인출하러 들어갔는데 거긴 이미 은행 강도가 점령한 상태다. 우연한 총격 사고가 벌어지면서 그가 은행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아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장 클로드 반담이 은행을 털고 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져간다. 수많은 취재진들이 몰려들고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 러브 장 클로드 반담’이라는 피켓을 든 채 그의 이름을 연호한다. 그가 출연했던 액션영화의 기억대로라면 단숨에 전광석화 같은 돌려차기로 강도들을 제압하는 게 정상이지만 현실의 장 클로드 반담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악당이 오우삼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해주고, 그 영화에서 했던 그 발차기를 보여달라고 하면 마지못해 보여주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그는 이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게 될까.
영화에서 장 클로드 반담은 계속 고전한다. 한 동양인 감독은 “오우삼 감독이 저 사람 때문에 할리우드에 왔다고 내가 굽실거려야 돼?”라고 말하고, 상대쪽 변호사는 “저 사람이 출연한 영화들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나쁜 영화들입니다. 두개골을 박살내고, 다리뼈를 작살내고, 사타구니를 걷어차고, 결코 우리 자식들에게는 보여줄 수 없죠”라고 무시하며, 급기야 딸마저 “아빠가 TV에 나올 때마다 친구들이 놀려서 같이 살기 싫어요”라고 꺼려한다. 그는 늘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했고 그것으로 가족을 먹여살렸지만 허무하기만 하다. 오직 그 영화의 팬들만이 열렬히 그를 응원한다. 한 아랍계 팬의 말이 압권. “다른 액션 히어로들과 달리 그는 아랍 사람을 때린 적이 없다.”
<JCVD>는 고뇌에 찬 한 액션배우의 쓸쓸한 황혼기를 사려 깊으면서도 유머러스하게 포착해낸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은행에서 벌어지는 인질극이라는 점에서 알 파치노의 <뜨거운 오후>를 연상시킨다”며 “시종일관 장 클로드 반담을 귀엽게 그려내는 작품”이라고 썼다. 그의 화려한 액션영화를 기대한 사람들이라면 실망하겠지만 그의 팬이라면 몸이 약해 가라테를 배우던 시절의 기억과 성공, 마약과 여러 명의 아내, 그리고 지금의 초라한 모습에 이르기까지 주절주절대는 그의 진실된 독백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TIP/ 역시 장 클로드 반담의 라이벌은 스티븐 시걸. 그에 대한 언급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압권은 그가 주연을 맡기로 한 영화의 캐스팅이 바뀌어 스티븐 시걸에게 역할이 넘어간 얘기. 제작자는 스티븐 시걸이 트레이드마크인 말총머리를 자르겠다는 의지를 보여 캐스팅을 바꿨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