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배우의 귀환이다. 제프 브리지스의 <크레이지 하트>는 지난해 미키 루크의 <더 레슬러>와 많이 닮아 있는 영화로 점점 사라져가는 미국의 컨트리음악에 대한 향수와 늙어가는 뮤지션의 모습을 담은 독립영화이다. 컨트리뮤직텔레비전에서 제작했지만 한동안 극장 배급 자체가 불확실해 보이던 <크레이지 하트>는 지난해 가을 극적으로 폭스 서치라이트를 통해 배급망을 확보한 뒤, 제프 브리지스의 연기에 대한 찬사를 바탕으로 소리소문없이 제작비 700만달러를 회수했다. 그리고 3월 오스카 수상식을 앞둔 지금 한창 달아오른 <크레이지 하트>에 대한 관심은 제프 브리지스의 첫 오스카 수상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제프 브리지스는 배우 로이드 브리지스의 아들이자 보 브리지스의 동생으로 그야말로 할리우드 배우 집안에서 자라났다. 71년 데뷔작 <라스트 픽처쇼>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화려하게 할리우드에 진출한 그는 74년작 <대도적>(Thunderbolt and Lightfoot)으로 또 한번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뒤, 80년대에는 금발의 매력남으로 할리우드가 가장 아끼는 주연배우 중 하나로 성장했다. 그러나 전성기의 브리지스는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 니로와 같은 당대의 ‘센’ 배우들에 가려 빛을 발하지는 못했고, <스타맨>과 <컨텐더> 등으로 4번이나 오스카 후보에 올랐지만 한번도 수상하지 못했다. 이제 막 환갑을 넘긴 그는 마침내 <크레이지 하트>로 골든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어느 때보다도 오스카에 가까이 다가와 있다.
<크레이지 하트>는 한때 잘나갔지만 이제는 허름한 볼링장 공연이나 전전하는 컨트리 뮤지션 배드 블레이크의 이야기다. 4번의 이혼 경력에, 무일푼에, 알코올중독인 배드에게 젊은 여기자 진(매기 질렌홀)이 인터뷰를 위해 찾아온다. 그들은 서로에게 끌리고, 그는 재기를 꿈꾸게 된다. 그렇지만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이 쉽지 않다. <크레이지 하트>는 배드 블레이크라는 캐릭터를 놀랄 만큼 세밀하게 묘사한다. 축 처진 뱃살에 덥수룩한 수염의 제프 브리지스는 싸구려 모텔방에서 포르노나 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배드 블레이크 그 자체다. 감독은 촬영장에서 제프 브리지스와 함께 술에 취한 배드가 연주를 할 때와 몇백 마일을 운전할 때 단추를 몇개 풀어놓고 있는지 등 세부 묘사에 대해서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외모도 연기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배우다운 모습이다.
코언 형제도 몇몇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듯 그는 캐스팅하기 아주 어려운 배우로 유명하다. 처음으로 쓴 시나리오를 들고 온 풋내기 데뷔 감독 스캇 쿠퍼가 제프 브리지스를 설득할 수 있었던 건 ‘음악’덕분이었다. 영민한 스캇 쿠퍼는 <크레이지 하트>를 만들기 위해서 정확하게 누가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브리지스의 오랜 친구이자 <앙코르>와 <위대한 레보스키>의 음악을 맡은 티본(T-Bone) 버넷이었다. 티본이 먼저 승낙을 하자 브리지스 역시 수락했다. 스캇 쿠퍼가 신참내기의 순진함과 무모함으로 이 꿈같은 일에 덤벼들었다면,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준 것은 바로 제프 브리지스였다.
제프 브리지스는 종종 연주도 하는 뮤지션인 동시에, 자신의 촬영장에서 사진을 찍으며, 33년을 함께해온 아내와 한적한 시간을 보내는 걸 즐기기도 하는 배우이다. 감독 스캇 쿠퍼는 말한다. “제프는 사생활을 무척 중요시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그에 대해서 잘 몰라요. 그래서 그가 연기를 하게 되면, 우리는 아무런 편견없이 그를 그 캐릭터로 받아들일 수가 있어요. 제프는 진짜 배우예요.”
내 나이 60, 이제 첫 앨범 준비해볼까
LA에서 만난 제프 브리지스
지난해 12월3일 영화 속 배드 블레이크처럼 여전히 턱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나타난 제프 브리지스와 샌타모니카의 카사 델 마 호텔에서 인터뷰를 했다. 앞서 이뤄진 매기 질렌홀과의 인터뷰가 거의 끝나갈 무렵 제프 브리지스가 방 안에 들어섰다. 매기 질렌홀이 “제프. 우리가 처음 만난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줘요”라고 하자 그는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지으며 “<모나리자 스마일> 시사회장에서 만났지”라고 대답했다. 매기 질렌홀이 덧붙였다. “나는 똑똑히 기억해요. 그날 나는 약간 술이 취해 있었어요. 그럴 만도 하잖아요. 내 영화의 시사회였으니까. 그래서 당신 앞에 성큼성큼 걸어가서 당신 영화들을 좋아해요라고 말했죠. 그러자 당신은 앞으로 같이 연기를 할 날이 올 거라고 했죠.” 제프 브리지스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진짜로 그렇게 되었지.”
-선뜻 배역을 수락하지 않기로 유명한데 소문이 진짜인가.
=사실이다. 일을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한다. (웃음) 늘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해야 하는 일은 정말 너무너무 힘들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에 결정을 내릴 때 고민을 많이 한다. 거의 11개월 내내 아내와 떨어져서 일을 했는데 앞으로 또 그러고 싶지 않다. 아내는 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이니까.
-영화 속 연주는 직접 다 해낸 것인가.
=기타 연주의 많은 부분을 직접 하긴 했지만, 몇몇 중요한 장면에서는 티본이 이미 녹음해둔 스티븐 브루튼과 버디 밀러의 연주곡에 맞추어서 내가 기타를 연주했다. 물론 계단에서나 침대에서 했던 연주는 진짜 내가 한 것이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을 실감할 것 같은데.
=얼마 전에 어머니를 화장한 재를 바다에 뿌렸다. 몇년 전에는 아버지를 보냈고. 이제 내 차례다. (웃음) 아버지가 85살에 돌아가셨고, 내가 지금 60살이 되었으니까 25년이 남은 셈이다.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이라면 내가 35살일 때인데, 정말 눈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흘러왔으니까 85살도 금방 다가올 것 같다. 성격이 좀 느긋한 편이라 앨범을 한번 내보면 어떨까 생각을 해보다가도 계속 미루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는 지금 하지 않으면 영영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지금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에너지로 가득해지는 것 같아 좋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매기 질렌홀은 실제 자신의 약한 모습이 화면에 드러나는 것 같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땠나.
=동감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자신의 나약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다. 어렸을 때에는 약한 면을 보이는 것이 너무 싫잖나.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우리가 연기하는 것을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그런데 나는 아버지가 유명한 배우라는 것을 친구들이 알게 되는 것도 싫었고, 남들과 다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기본적으로는 나의 약한 부분을 끄집어내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고, 할 수 없이 인정하게 되고, 그러면서 남들을 더 이해하고 공감하게 되는 것 같다. 알다시피 인생에서 어떻게 계속 행복하게만 살 수 있나. 두려움을 받아들일 줄 알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두려움을 피하려고만 하면 고통스러워질 뿐이다.
-당신의 나약한 모습은 어떤 것인가.
=머릿속에서 그리는 완벽한 나를 현실의 내가 따라가지 못할 때 참을성이 없어진다. 화도 많이 나고. 그럴 땐 못난 내 모습을 가지고 스스로를 못살게 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스스로와 화해를 해야 한다.
오스카를 향한 다섯 순간들
1. 1971년 데뷔작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라스트 픽처쇼>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다. 수상자는 같은 영화에 출연한 벤 존슨.
2. 1974년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출연한 <대도적>으로 또다시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다. 수상자는 <대부2>의 로버트 드 니로. 젊은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던 브리지스는 2년 뒤 머리를 기르고 졸작 <킹콩>에 출연하고 만다.
3. 1984년 존 카펜터의 <스타맨>으로 오스카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다. 이로써 브리지스는 ‘외계인을 연기하고 유일하게 오스카 후보에 오른 배우’로 기록되다. 이 기록은 물론 아직도 깨어지지 않았다. 수상자는 <아마데우스>의 F. 머레이 에이브러햄.
4. 2000년 <컨텐더>로 세 번째 오스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다. 수상자는 <트래픽>의 베니치오 델 토로.
5. 2008년 <아이언맨>에서 삭발을 하고 악역 오베디아 스탠을 연기하다. 이 밋밋한 악역으로 브리지스와 오스카는 영영 멀어지나 싶었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