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10년지기 봉준호, 사카모토 준지 감독을 만나 그의 신작 <어둠의 아이들>을 묻다
2010-03-25
정리 : 주성철
사진 : 최성열

봉준호 감독이 <어둠의 아이들> 개봉에 맞춰 방한한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인터뷰어를 자청했다. <멍텅구리: 상처입은 천사>(1998), <의리없는 전쟁>(2000) 등 일본에서는 최양일 감독과 더불어 선 굵은 남성적 터치의 영화들을 만들어온 사카모토 준지는 봉준호 감독이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로 산세바스티안영화제를 찾았을 때 만나 지금까지 ‘형님’으로 모시는 감독이다. 서로의 영화가 촬영 중이거나 개봉할 때, 서울 혹은 도쿄에서 만나 술잔을 비우며 우정을 쌓아온 게 어느덧 10년의 세월이 됐다. <어둠의 아이들>을 보면서 ‘현실과 정면으로 대결하는 힘이 놀라웠다’고 말하는 봉준호 감독은 어린 배우들의 연기, 실화의 영화화 등에 대해 꼼꼼하게 질문해줬다. 오랜 우정만큼 무거움과 유쾌함이 자연스레 오간 그들의 대화에 당신을 초대한다.

<마더> 때 후지야마 나오미 얘기가 많이 생각났다

봉준호: 10년 전 산세바스티안영화제 경쟁부문에 <플란다스의 개>(2000)가 진출했는데 그때 사카모토 준지 감독님도 <얼굴>(2000)로 경쟁부문에 오셨다. <플란다스의 개>를 보고 좋으셨는지 함께 식사 한번 하자고 해서 처음 뵈었다. 나로서는 데뷔작으로 간 해외영화제가 신기하기만 했는데, 아시아 사람이 드문 곳에서 마치 오랜 ‘형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이후 <플란다스의 개>로 도쿄영화제에 갔을 때, <살인의 추억>(2003)이 일본에서 개봉할 때, 또 감독님이 <KT>(2002) 촬영으로 한국으로 오시거나 부산영화제에 초청받고 그러면서 한국과 일본에서 거의 매년 만난 것 같다.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일본 감독들은 보통 술을 잘 못하던데 사카모토 감독님은 잘하셔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사카모토 준지: 산세바스티안에서 처음 만났을 때 영화 얘기도 많이 했지만 초면에 부끄러운 얘기도 많이 했다. 12살 때까지 오줌을 못 가려서 비닐 팬티 입은 얘기 같은 거. (웃음) 그 나이 되도록 밤에 실수를 많이 해서 아예 비닐을 두르고 잤었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 왜 그런 얘기를 했을까. 그만큼 좋았다는 얘기겠지.

사카모토 준지
봉준호

봉준호: 그날, 이미 TV와 무대에서 엄청난 스타이면서 영화에는 출연하지 않던 후지야마 나오미를 <얼굴>에 캐스팅한 얘기를 해주신 게 인상적이었다. 영화가 처음은 아니지만 <마더>(2009)에 김혜자 선생님을 모시면서 그 생각이 많이 났다. 두 영화 모두 상업적인 기획은 아니었지만 <마더>에는 원빈이라는 배우도 있고, 나로서는 운 좋게 <괴물>(2006) 다음 영화여서 큰 어려움 없이 영화를 준비할 수 있었다. 내가 일본에서 작업한 옴니버스영화 <도쿄!>(2008) 중 <흔들리는 도쿄> 주인공이 가가와 데루유키인데, 마침 그가 후지야마 나오미와 함께한 공연이 있어 직접 대극장에서 본 기억도 있다. 무대를 장악하는 힘이 대단한 배우였다.

사카모토 준지: 대단한 미인도 아니고 또 젊은 배우도 아니라 나도 후지야마 나오미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기획한다는 것 자체가 힘들었는데, 프로듀서가 열심히 노력한 결과였다. 게다가 엄청난 스타라 4년 뒤 스케줄까지 꽉 짜여져 있다. <얼굴>도 ‘4년 뒤 여름을 비워주세요’라고 해서 한 거다. 생각해보면 원빈의 경우처럼 <러브레터>(1995)의 도요카와 에쓰시가 <얼굴>에 출연한 것도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전에 <마더> 인터뷰에서 봉 감독이 김혜자씨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봤다.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후지야마 나오미에게 어떤 이야기를 짊어지게 할까, 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봉준호: <KT> 촬영차 한국에 왔을 때 도움을 못 드려 죄송했는데, <괴물> 촬영장에 오셨을 때도 신경 써드리지 못했다. 미국 CG 회사와의 계약 때문에 매일 방대한 분량의 CG 분량을 점검하느라 짬을 내지 못했다. 지금도 정말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카모토 준지: 전혀 그렇게 생각할 필요없다. 영화 현장은 언제나 많은 변수들이 있고 감독은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집중력을 잃어선 안된다. 그래도 그때 송강호씨와 맥주를 한잔 할 기회가 있어 좋았다. 맥주를 연거푸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웃음)

봉준호: <흔들리는 도쿄>를 촬영하러 도쿄에 갔을 때는 부끄럽게도 정말 큰 도움을 주셨다. 주인공이 히키코모리니까 집 내부 공간이 중요해서 미술감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는데 직접 추천도 해주셨고, 내가 워낙 땀이 많은 체질이라 감독님이 주신 수건을 현장에서 정말 잘 썼다. (웃음) 감독님 덕택에 영화를 무사히 끝낼 수 있어서 일본쪽 스탭들하고 분위기도 참 좋았다.

사카모토 준지: 그래서 영화 쫑파티하면서 홀라당 벗은 건가? 요시미 조감독하고 웃통 벗고 춤을 추고 있더라. (일동 웃음)

봉준호: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는데 일본쪽 제작부 한명이 내 윗옷을 벗기기에 난 그게 일본영화계의 쫑파티 전통인 줄 알고 가만히 있었다. (웃음)

사카모토 준지: 하하. 그러면서 전통이 되는 거다. 나 역시 <얼굴> 쫑파티를 하면서 후지야마 앞에서 전라가 됐다. 현장에서 배우에게 너무 혹독하고 힘들게 한 것 같아 나로서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건데 오히려 혼났다. 그동안 이런 바보 같은 사람에게 지시를 받았던 건가, 하면서 나가버리셨다. (웃음) 아무튼 난 봉 감독에게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계속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니 어쩔 줄 모르겠다. 나야말로 <어둠의 아이들> 촬영차 타이로 떠나기 3일 전에 봉 감독을 만났는데, 타이 가서 쓰라고 고가의 선블록 화장품을 선물해줘서 고마웠다. 정말 잘 썼다.

어리거나 친숙하지 않는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땟나

봉준호: 어느덧 20편 가까이 찍으셨다. 자기 영화를 세면서 두손 열 손가락을 다 쓰는 사람이 제일 부럽다. (웃음) 굉장히 거칠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요즘 일본영화는 남자감독의 영화라도 뭔가 보드랍고 선이 가늘다는 느낌, 그렇게 좀더 여성적이고 섬세하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런데 감독님의 영화는 물론 <다마모에>(2007) 같은 작품이 있긴 하지만 거의 유일하게 남성적인 느낌을 준다. 거칠게 밀어붙이는 특유의 터치가 있다.

사카모토 준지: 나 스스로 남성적이다, 여성적이다를 분석하기는 어렵지만 예전부터 어차피 적은 예산으로 만들어야 할 영화라면 내 개성을 최대한 발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없으면 손해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오기가 발동해 남성적이고 폭력적인 세계에 더욱 빠져들지 않았나 한다. 그래도 영화를 만들 때는 기질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감독으로서 또 다른 퍼스낼리티를 만들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영화가 그런 기질을 보여준다 할지라도 만드는 과정 자체는 다른 거다. 그래서 감독으로서의 나를 보자면 자상한 척하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웃음)

봉준호: <어둠의 아이들>에서는 쓰마부키 사토시나 미야자키 아오이 같은 소녀 배우에게 자상했을 것 같다. (웃음)

사카모토 준지: 그런데 이상하게 젊은 배우들과 술을 마시면 자꾸 설교하고 훈계하게 된다. 쓰마부키 사토시나 오다기리 조가 나 때문에 굉장히 괴로웠을 거다. (웃음) 나로서는 격려하고 싶은 마음에 얘기를 시작한 건데 꼭 잔소리로 끝난다. 여러 번 반성하지만 그게 잘 안된다. (웃음)

봉준호: <어둠의 아이들>의 중심 배우들은 감독님과 기존에 친숙했던 배우들이 아니다. 게다가 언어가 다른 어린 배우들과도 함께해서 더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사카모토 준지: 여러 말 하지 않아도 내 뜻을 헤아려주고 척척 호흡이 잘 맞는 배우는 <어둠의 아이들>에도 나오고, 전에 <KT>나 <망국의 이지스>(2007) 등 많은 영화를 함께한 사토 고이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 하던 배우들과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도 있었다. <어둠의 아이들>이 그런 경우인데 감독으로서 내 연출이 어디까지 통할지 불안감을 지닌 채 작업을 하는 것도 매력적이다. <어둠의 아이들> 다음에 최근 찍은 <자토이치 더 라스트>에서는 나카다이 다쓰야라는 대배우와 새로 작업했다.

봉준호: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1980)에 나온 배우 아닌가. 정말 기대된다. 또 궁금한 건 이번 영화에서는 연기지도 자체가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수 있다. 비직업 배우들도 섞여 있는지, 구체적으로 어떻게 연출했는지 여쭤보고 싶다.

사카모토 준지: 단순한 엑스트라를 제외하고는 모두 ‘배우’라는 자각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다. 그렇게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고 ‘나는 지금 다른 사람을 연기하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지 못한 아이들에게 이런 연기를 시키면 안된다. 같은 또래 아이 중에서 매춘이나 장기매매 같은 전혀 다른 인생에 처한 아이들이 있다는 걸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매춘이라는 말의 뜻을 이해하는 아이들만 뽑았다. 그리고 어린 배우들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영화에 등장하는 탐욕스런 백인 남자의 뚱뚱하고 벌거벗은 육체 같은 건 따로 찍어서 그 어린 배우들이 절대 보지 못하게 했다.

일본은 PG-12 등급, 한국은 청소년 관람불가

봉준호: 2008년 여름에 이 영화를 일본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매춘도 충격적이지만 산 채로 장기가 도려내지는 아이가 있고 또한 그걸 받아서 사는 아이가 있다. 서로 다른 환경에 놓인 두 아이가 그렇게 나뉘는 상황이 슬프고 충격적이었다. 에이즈에 걸려 쓰레기로 버려졌다가 거기서 빠져나와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 아이의 모습도 강렬하게 남아 있다. 일본에서는 부모 동반이 가능한 PG-12 등급을 받은 것으로 아는데, 한국에서는 성인영화로 다뤄져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게 안타깝다.

<어둠의 아이들>
<어둠의 아이들>

사카모토 준지: 쓰마부키 사토시가 대본을 읽고는 나를 찾아왔다. 거절하려고 온 거다. 영화에 너무 희망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이 영화를 일본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라고 설득했다. 어린 학생들이 용돈을 벌거나 혹은 다른 이유로 매춘을 하는 상황, 그리고 일본이 저지르고 있는 국제사회에서의 잘못 등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얘기를 했다. 쓰마부키가 1시간 정도 생각하더니 하겠다고 했다. 사실 일본에서도 심의 과정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영윤(映倫)과 싸워서 그런 등급을 받아낸 거다.

봉준호: 굉장히 중요한 결정이다. 시간을 끌었을지언정 그런 등급이 가지는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어둠의 아이들>을 지지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현실을 다루는 혁신적인 측면에서다. 표면적으로 사건 자체를 다루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뤄지느냐 하는 태도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 등 이른바 선진영화계가 동남아나 아프리카 등에서 벌어지는 폭로적인 소재를 다룰 때 시선의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도 선진국 중 하나라는 카테고리로 볼 때 자신의 죄악을 그대로 끌어안고 바라보고 있어서 놀라웠다.

사카모토 준지: 아이를 구해내는 훌륭한 NGO, 현실을 폭로하는 유능한 기자 같은 뻔한 공식을 만들어내고 싶지 않았다.

봉준호: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묘한, 복합적인 느낌이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포착되는 시점도 있고, 반대로 착취당하는 동남아의 입장에 서게 되는 지점도 있다. 흔히 양공주로 묘사되는 한국전 당시 미국과의 관계가 있는가 하면, 베트남전에서는 역시 또 라이따이한이라는 말로 설명되는 가해의 역사가 있다. 우리 해외 이민자들이 겪었던 고통이 그리 오래지 않은 역사임에도 지금의 우리는 스스로 제3세계가 아니라고 믿는 강력한 열망 속에 실제로는 우리 생활 깊숙이 존재하고 있는 동남아 노동자들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는 이중적 잣대가 있다. 일본에서 이런 용감한 영화가 나왔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자기반성 정도가 아니라 심지어 자학에 가까운 강력한 시선의 전복이 있다.

사카모토 준지: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엄연한 현실임에도 일본을 너무 나쁘게 묘사한 반일영화라며 우익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반응보다 오히려 침묵이 더 많았다. 보고난 뒤 그냥 입을 닫아버리는 거다. 꽤 센세이셔널하게 신문이나 잡지에서 다뤄졌지만 피상적인 정보 외에 언론이나 심지어 영화잡지들에서조차 깊이있게 수용되지 못했다.

봉준호: 그래서 역설적으로 이 영화의 가치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렇게 현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영화, 이미 유명한 감독과 배우들이 이런 기획으로 만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어떻게 보면 영화라는 매체가 명백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순기능은 굉장히 중요한데 요즘엔 그런 영화들이 별로 없다. 한국에서도 이런 현실의 이슈를 가지고 현실과 강력하게 대면하는 영화가 드물다는 게 아쉽다.

사카모토 준지: 그런 국가 대 국가의 문제도 있지만 사람들의 황폐한 내면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었다. 예전에는 일본 남자들이 단체로 매춘 관광을 떠났다면 이제는 젊은 일본 남자들이 인터넷 등을 통해 단독으로 정보를 교환해서 타이나 필리핀으로 떠난다. 히키코모리까지는 아니라도 일본 내에서는 사람들과 전혀 관계를 맺지 않고 그저 조용하게 지내던 사람이 거기로 가서는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동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현재 일본의 구조적 문제뿐 아니라 개인에 대한 관심의 환기도 중요하다. 일본 내에서는 아무런 관계도 맺지 않고 살아가던 사람들이 그런 목적으로 비행기에 올라탄다는 게 참 아이로니컬하고 슬픈 일이다.

실화의 영화화 불안하지 않았나

봉준호: 실화를 다루는 건 참 조심스럽다. 나 역시 <살인의 추억>으로 실화를 다뤘지만 사실 모두에게 고통스런 기억이다. 연쇄살인사건이라는 게 피해자 가족은 말할 것도 없고, 형사들에게도 실패한 얘기이며, 억울하게 끌려간 용의자도 마찬가지다. 다시는 꺼내고 싶지 않은 이야기인데 내가 왜 이걸 굳이 ‘추억’이라는 이름까지 달아서 찍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서 다시는 실화 사건을 다루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 감독이 의지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다. 사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한다는 분명한 입장과 태도다.

사카모토 준지: 아주 중요한 얘기다. 영화 한복판에는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 당신도 그러했겠지만 감독에게는 영화를 만들 때 느끼는 쾌감 같은 게 있는데 이런 실화 소재 영화를 만들 때는 그런 게 덜하다. 이런 소재를 다룰 때 자칫 잘못하면 누군가에게 상처만 주고 끝낼 수도 있다. 내 자신의 포커스를 명확하게 맞추는 게 중요했다. 영화를 만드는 기쁨과 별개로 영화화에 대한 불안감, 나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는 과정을 반복했다. 분명 영화는 공개되면 찬반양론에 휩싸일 것이고, 그게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이라면 설득력있게 해설하고 납득시킬 수 있는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함께하고 지지해주는 스탭들이 있었기에 불안감을 불식시킬 수 있었다. 혼자만의 각오로는 할 수 없었던 영화다.

봉준호: 그건 나도 알고 있다. 타이로 떠나기 며칠 전에 도쿄에서 뵈었을 때, 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 출정 직전의 장군 같은 모습이었다. (웃음) 혹시 속편 계획도 있으신지? 일단 감독님이 일본으로 돌아가시면 <어둠의 아이들> 홍보는 내가 열심히 하겠다.

사카모토 준지: 하하. 아니다. 어둠의 심연을 건드리기에는 내가 부족한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어둠의 아이들>이 한국에서 개봉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 사실 나도 당신 영화 홍보 많이 했다. <살인의 추억>이 너무 좋아서 언론에 ‘구로사와 아키라의 손자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말까지 했고, 무대인사하러 봉 감독이 일본에 못 왔을 때 내가 당신한테 직접 들은 얘기들을 떠올려 장면 설명 같은 걸 대신 해줬다. 사람들은 ‘저 인간이 직접 만든 당사자도 아니면서, 뭘 알고 떠드는 건가’ 했을 거다. (웃음) 아무튼 일본에서는 나보다 당신의 차기작 소식을 더 궁금해한다. 당신의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할 때마다 각종 영화 사이트에는 ‘일본에서는 왜 이런 영화를 못 만드나’라는 얘기로 도배된다. (웃음)

봉준호: 그때 나로서는 정말 무한한 영광이었지만 구로사와 감독님의 유족들이 들었으면 화내셨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은 <설국열차>를 열심히 쓰고 있다는 것 외에는 아직 계획이 없다. 여름까지는 무조건 쓸 생각으로 머리를 쥐어짜고 있다. (웃음)

사카모토 준지: 흠. 지난번 도쿄에서 만났을 때는 그보다 더 많이 얘기해주지 않았나. 이거 <씨네21>에서 특종 하나 건질 수 있게 해드려야 하는데. (웃음) 그럼 오늘밤 한잔하면서 더 얘기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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