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대륙의 기품을 간직한 만인의 연인
2011-05-17
글 : 김도훈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적인걸> 리빙빙

대륙에는 판빙빙 말고도 또 한명의 빙빙이 있다.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2009)와 <적인걸>(2010)의 리빙빙이다. 둘이 라이벌인 건 당연한 일이다. 정상의 여배우가 이름도 같다면 언론과 대중은 어쩔 도리 없이 라이벌 의식을 부추기게 마련이다. 리빙빙 역시 판빙빙과의 라이벌 관계를 잘 알고 있다. <적인걸>로 <씨네21>과 인터뷰를 했을 당시 그녀는 농담삼아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중국에선 판빙빙과 앙숙으로 유명합니다.” 다만 판빙빙과 리빙빙이 이미지가 꽤 다른 배우들이라는 건 알아둘 필요가 있다. 상하이엑스포 홍보대사, 세계자연보호기금의 글로벌 친선대사를 줄줄이 맡을 정도라면 중국 내에서 리빙빙의 이미지가 어떤지 쉽게 짐작이 갈 것이다. 판빙빙이 기자 폭행이나 거부와의 밀애 스캔들로 중국을 뒤집어놓는 동안 리빙빙은 홍보대사로 참석한 기자회견에서 우아하게 머리를 쓸어넘긴다. 판빙빙이 디바라면 리빙빙은 만인의 연인이다.

리빙빙의 우아함은 어쩌면 그녀의 나이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리빙빙은 지금 떠오르는 중화권 여배우 중 가장 나이가 많은 1973년생 늦깎이 스타다. 다른 여배우들이 연예계에 뛰어들 나이에 리빙빙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흑룡강성 하얼빈 태생인 리빙빙은 원래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이었다. 그녀는 때늦은 1994년 상하이 희극학원 연기과에 들어갔고, 이후 여러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성공도 조금 더딘 편이었다. 리빙빙은 2000년에 출연한 장위안 감독의 <17년 후>로 주목받은 뒤 2004년 펑샤오강의 <천하무적>에 출연하고서야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작을 하는 편도 아니다. 스타의 지위에 오른 이후에도 눈에 띄는 영화는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바람의 소리>(2009), <적인걸> 정도다. 80년대 홍콩영화 전성기의 여배우들과 굳이 비교하자면 다작을 하지 않으면서 기품있고 강인한 이미지로 승부를 걸었던 종초홍을 떠올려도 좋을 것이다.

현재 리빙빙은 두편의 거대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웨인왕 감독의 국제적인 프로젝트 <설화와 비밀의 부채>와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작인 <신해혁명>이다. 전자에서 그녀는 소작농 전지현과 서신으로 우정을 교환하는 귀족의 딸을, 후자에서는 장쯔이가 33살의 나이로 처형당한 혁명열사를 연기하는 동안 성룡이 연기하는 혁명가 황흥의 아내를 연기한다. 젊은 여배우들을 보완하며 극의 무게를 떠받칠 줄 아는 리빙빙은 우리 곁을 빙빙빙 맴돌다 떠나지 않을 중화권의 큰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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