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서정뢰처럼 단 하나의 표정으로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받아온 배우는 없을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결코 흥분하지 않으며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는 그 외유내강의 이미지는, 홍콩으로 건너와 여러 상업영화에 출연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다른 본토 여배우들이 홍콩영화계에서 어색하게 액션연기를 소화하거나 단지 미모로 들러리 역할을 하는 경우는 흔했지만 서정뢰는 그렇지 않았다. 물론 <풍운>(1998)에서 곽부성에게 죽임을 당하는 단역으로 출연하긴 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중국 본토 바깥에서 작업할 때 스스로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렇게 이후 <상성: 상처받은 도시>(2006)에서 양조위의 아내로 나와 병상을 지키면서도, <명장>(2007)에서 유덕화와 이연걸 모두의 사랑을 받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면서도, <신주쿠 사건>(2008)에서 성룡의 오랜 첫사랑이자 일본 야쿠자의 아내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여자로 출연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사실 국내에는 얼마 전 성룡과의 키스 사건 해프닝으로 유명세를 치렀지만 서정뢰는 그리 만만하게 생각할 배우가 아니다. 고원원과 함께 출연한 <스파이시 러브 수프>(1998), <스프링 서브웨이>(2002) 등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혀가던 서정뢰는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2004)로 산세바스티안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감독이기도 하다. 아무런 경험도 준비도 없이 모진 운명 속으로 빨려들어간 외로운 여인, 그렇게 평생 한 사람만 마음에 품고 살아온 여주인공을 직접 연기하기도 했다. 그전에 장위안이 출연한 <아빠와 나>(2003) 역시 각본, 주연, 연출을 겸했었다. 철부지 아빠와 친구처럼 지내며 ‘아버지가 내 삶에 있어서 무엇인가’ 고민하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나이보다 훨씬 성숙한 여인을 연기하고 연출했었다. 같은 해 그녀가 불가능한 사랑을 꿈꾸는 이상주의자로 출연한, 왕슈오가 쓰고 장위안이 연출한 <사랑해>(2003) 역시 기억해둘 만한 작품이다.
1974년생인 그녀는 <신주쿠 사건> 이후 활동이 뜸하지만 여전히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며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더불어 그녀는 (중국의 인구가 많아서 발생한 일이겠지만) 활발한 포스팅과 함께 전세계 배우들 중 가장 많은 방문자 수를 자랑하는 블로그(blog.sina.com.cn/xujinglei)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녀의 최근 소식이 궁금하다면 블로그를 방문하면 될 것이다. 물론 중국어 블로그이긴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