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슈퍼히어로는 이렇게 탄생하였노라
2012-07-10
글 : 김봉석 (영화평론가)
배트맨, 슈퍼맨, 일롱게이티드맨… 읽을 만한 슈퍼히어로 코믹스 추천

마블의 야심작 <어벤져스>가 대성공을 거두자 DC에서도 <저스티스 리그>의 제작에 들어갔다. 마침 <다크 나이트 라이즈>로 배트맨 3부작이 막을 내리고, <맨 오브 스틸>의 슈퍼맨과 배트맨 모두 리부트하면, DC 유니버스를 통일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아이언맨3>에 아이언 패트리어트가 나온다는 말이 돌면서 <스파이더맨>과 <엑스맨>을 포함한 마블 유니버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스파이더맨의 적수인 노먼 오스본이 바로 아이언 패트리어트이기 때문. 이렇듯 전개되는 마블과 DC 유니버스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다면, 반드시 코믹스 몇개를 기본으로 읽어야만 한다. ‘그래픽 노블’이라고 부를 정도로 문학적인 향취가 가득한 작품들도 곁들이면서 이미 고전으로 자리잡은 <왓치맨>과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미리 봐두길.

배트맨: 이어 원

프랭크 밀러 글 / 데이비드 마주켈리,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 / 세미콜론 펴냄
<블랙 스완>의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배트맨: 이어 원>을 준비하다가 좌초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배트맨 비긴즈>가 아쉽다는 말이 아니라, ‘분열증’에 일가견이 있는 애로노프스키가 그려내는 ‘배트맨’의 두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의 프랭크 밀러가 창조한 배트맨의 탄생신화는 단지 ‘영웅’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배트맨이 활약할 ‘어두운’ 세계를 확고하게 만드는 것을 기본으로, 고든 경찰국장을 배트맨의 파트너로 격상시키면서 악과 싸우는 ‘인간’의 얼굴을 부각하고, 배트맨의 연인이자 적인 캣우먼의 탄생까지 일필휘지로 그려낸다.

배트맨: 롱 할로윈

제프 로브 글 / 팀 세일, 리치먼드 루이스 그림 / 세미콜론 펴냄
초능력이 없는 인간 브루스 웨인의 강점은, 탐정이라는 캐릭터다. 누구도 믿지 않고 모든 단서를 추적하며 논리적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내는 탐정. 배트맨은 기념일마다 살인을 저지르는 홀리데이 킬러를 추적하지만 1년 넘게 범인을 잡지 못한다. 검사인 하비 덴트는 <이어 원>에도 나왔던, 여전히 고담시를 지배하는 마로니와 팔코네 패밀리를 의심한다. <롱 할로윈>의 스토리는 <배트맨: 다크 빅토리>로 이어지며, 고담시의 악당들이 범죄조직에서 ‘프릭스’(Freaks)로 바뀌는 과정을 어둡게 그려낸다. ‘투 페이스’가 탄생하고, 마음속의 악을 끄집어내는 섬뜩한 풍경도 일품이다.

킬링 조크

앨런 무어 글 / 브라이언 볼런드 그림 / 세미콜론 펴냄
<다크 나이트>에서 히스 레저가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잭 니콜슨의 조커를 능가한 건 아니다. 히스 레저와 잭 니콜슨의 조커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환상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배트맨>의 팀 버튼이 “난생처음 좋아하게 된 만화”라고 밝힌 <킬링 조크>가 없었다면 잭 니콜슨의 조커도, 히스 레저의 조커도 아마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리들러보다도 수수께끼로 가득한 악당,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조커. <워치맨>의 앨런 무어가 창조한 <킬링 조크>의 조커는 심연을 알 수 없는 ‘악의 탄생’을 신랄하면서도 서정적으로 보여준다.

슈퍼맨: 레드 선

마크 밀러 글 / 데이브 존슨, 킬리언 플런켓, 앤드루 로빈슨, 월든 웡, 폴 마운트 그림 / 시공사 펴냄
영원한 보이스카우트 슈퍼맨은 낡은 캐릭터다. 너무 반듯해서 브라이언 싱어조차 구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철의 사나이, 라는 캐릭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어떤 상황에 집어넣더라도, 강철의 사나이는 자신의 길만을 고집하니까. <킥애스: 영웅의 탄생>의 작가 마크 밀러의 <레드 선>은 정통적인 DC 유니버스를 벗어나 슈퍼맨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한다. 슈퍼맨이 미국의 스몰빌이 아니라 소련의 한 시골에 떨어졌다면? 노동계급의 영웅이며 사회주의의 약진을 위해 헌신하는 강철 사나이가 된다면? 스탈린에 이어 소련 지도자가 된 슈퍼맨의 적수는 미국 대통령이 된 렉스 루터이고, 인간의 영웅 배트맨이었다.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

브래드 멜처 글 / 래그스 모랄스, 마이클 베어 그림 / 시공사 펴냄
자신의 정체를 밝힌 아이언맨, 판타스틱 포와 달리 대부분의 슈퍼히어로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긴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에서도 파커가 가장 고민하는 것은 연인과 가족의 안전이다.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지인들도 위험에 처한다. 그렇다면 그들이 지켜야 할 아이덴티티는 대체 무엇인가? 마스크를 쓴 히어로? 아니면 일상의 행복?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한 브래드 멜처의 <아이덴티티 크라이시스>는 일롱게이티드맨의 아내가 살해당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범인을 추적하던 저스티스 리그는 엄청난 과거의 잘못을 떠올리고, 그 사건에 관련되지 않았던 배트맨은 독자적으로 범인을 추적한다.

저스티스

짐 크루거 글 / 알렉스 로스, 더그 브레이스웨이트 그림 / 시공사 펴냄
생각해보자. 왜 슈퍼히어로들은 범죄를 일으키는 악당들만 잡는 것일까? 그들은 왜 사회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을까? 모두가 잘 살고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건설하지 않는 걸까? <저스티스>는 진정한 정의란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한다. 어느 날 갑자기 루터, 브레이니악, 리들러, 고릴라 그라드, 블랙 만타 등 악당들이 세계의 정의를 실현하겠다고 선언한다. 저스티스 리그의 슈퍼히어로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그들을 지켜본다.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저스티스>에서 더욱 주목할 것은 거장 알렉스 로스의 그림이다. 우아하고 유려한 선과 색감이 영웅들의 싸움에 신비감을 불어넣는다.

토르: 천둥의 시대

매트 프랙션 글 / 패트릭 저처 그림 / 시공사 펴냄
아무리 그래도 신이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건 좀 이상하다. 그리스의 신들이 일종의 슈퍼히어로라는 <핸콕>의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기는 했지만 낯섦은 여전하다. 하지만 <토르: 천둥의 시대>를 보면 신화와 슈퍼히어로의 조합이 꽤 어울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블 유니버스와 상관없이 그저 ‘토르’라는 북구의 신에 대한 이야기로서도 흥미롭고 동시에 아스가르드라는 외계에 존재하는 초인, 외계인들의 역사로서도 매력적이다. 토르가 왜 지구에 와서 슈퍼히어로의 일원이 되었는지, <어벤져스>의 악당 로키가 왜 토르에게 집착하는지도 알 수 있다.

시빌 워

마크 밀러 글 / 스티브 맥니븐 그림 / 시공사 펴냄
주민등록제가 없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등록’은 자유의 억압이자 권리 침해라고 간주된다. 그렇다면 ‘힘’을 가진 초인들은 어떨까? <엑스맨>에서도 뮤턴트등록법이 나온 적이 있는데, <시빌 워>에서는 초보 슈퍼히어로들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심각한 갈등이 벌어진다. ‘9·11 이후 자유보다 안전을 선호하게 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만들어진 <시빌 워>는 등록법에 찬성하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반대하는 캡틴 아메리카가 각각 중심이 되어 슈퍼히어로들이 모이고 결국은 ‘내전’에 이르게 된다. 슈퍼히어로들이 편을 나눠 싸우고 죽이는 광경은 악당들을 물리치는 풍경과는 전혀 다른 엄숙함을 드리운다.

썬더볼츠

워런 엘리스, 마이크 데오타토 주니어 글·그림 / 시공사 펴냄
최근 마블의 시도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던 <시빌 워>는 다양한 작품으로 뻗어나가며 새로운 설정들을 만들어냈다. 그중 하나인 <썬더볼츠>는 초인등록법안이 통과된 뒤, 등록된 초인들을 이용하여 미국 각지에 법 집행기관들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된다. 스파이더맨의 적인 베놈, 데어데블의 맞수 불스아이, 문스톤, 송버드, 소드맨 등 과거의 빌란들이 법을 집행하겠다며 노먼 오스본이 수장인 ‘썬더볼츠’에 모인다. 등록되었다는 이유만으로, 과연 빌란들이 슈퍼히어로가 될 수 있을까? 영화 <레드>의 원작자이기도 한 워런 엘리스는 안티 히어로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가장 잘 쓰는 작가 중 하나이다.

원티드

마크 밀러 글 / J. G. 존스 그림 / 중앙북스(books) 펴냄
영화 <원티드>는 잊어버리자. 액션이 좀 멋있다고는 해도, 원작의 알맹이는 모두 사라져버렸다. <슈퍼맨: 레드 선>의 작가 마크 밀러의 역작 <원티드>는 기존 슈퍼히어로물의 설정과 캐릭터를 완벽하게 역전시킨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하다거나 뒤트는 정도가 아니다. <원티드>의 세계는 초악당과 슈퍼히어로들이 이미 대판 붙었다가 초악당들이 완벽하게 승리한 미래다. 애인과 친구에게 배신당하고 조롱당하는 찌질한 청년 웨슬리 깁슨은 우연히 폭스라는 미녀를 만나, 지구 역사상 가장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뒤를 잇는다면 돈과 명예도 뒤따라온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