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주)스튜디오후크 / 감독 조근현 / 촬영 김정원 / 미술 유영종 / 의상 조상경 / 음악 박기헌 / 출연 미정 / 배급 미정 / 크랭크인 8월 말 / 개봉 미정
시놉시스 한때 천재 소리를 들었던 조각가 준구는 40대 초반에 불치병에 걸려 조각도 삶도 포기한 상태다. 그런 그의 앞에 아내 정숙은 민경이란 이름의 여인을 모델로 데려온다. 기구한 사연을 지닌 민경은 준구의 모델로 성장하며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고, 준구 역시 그녀의 아름다움에 홀려 꺼져가던 예술혼을 되살려 생애 최고의 작품 <봄>을 완성한다.
‘창’과 같은 영화가 있는가 하면, ‘거울’과 같은 영화가 있다. 전자가 감독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 되어준다면, 후자는 감독에게 일종의 자화상을 제공한다. 조근현 감독에게 데뷔작 <26년>이 전자에 가까운 영화였다면, 차기작 <봄>은 후자에 가까운 영화가 될 듯하다.
<봄>은 40대 초반에 불치병에 걸린 조각가 준구가 누드모델 민경을 만나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처음에는 그저 회화를 전공한 미술감독 출신 감독으로서 감수를 맡았던 시나리오였는데 어느 순간 갑자기 확 끌렸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한명의 예술가를 통해 내 생각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도 했고, “한때 내가 미술가로서 꿈꿨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어서 이 영화라면 푹 빠져서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도 했다.
그가 나중에야 못 이긴 듯 뱉어낸 진짜 이유는, 그러나 훨씬 사적인 것이었다. “내가 미술학도로서 가장 반짝였던 1993년,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가세를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는 장남인 내가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렇게 20년이 지났고, 아버지는 아마도 올해를 못 넘기실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이 영화가 특별하게 다가온 지점이 있는 거다. 자신 혹은 누군가의 병 때문에 작품을 포기해야 하는 예술가, 그가 어떤 돌파구를 만나 겪게 되는 변화, 그 순간순간의 예술가의 심리 등에 몰입이 안될 수가 없다.” 그와 준구의 차이라면 그의 돌파구는 민경이 아닌 영화였다는 사실뿐이다. 그렇게 그의 ‘봄’은 영화와 함께 찾아왔다.
<봄>의 방점도 당연히 인물들의 관계와 드라마에 찍힐 것이다. 조근현 감독이 민경을 찍는 방식에 신중을 기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다.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개는 ‘조각가가 모델과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냐’고 묻는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민경이 단순한 대상에서 인간적인 실체로 변화해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거치며 두 남녀가 서로에게 연민, 인간애, 심지어 사랑까지 느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들의 욕망은 육체적인 욕망보다 작품에 대한 욕망, 삶에 대한 욕망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들이 삶의 의미를 회복해나가면서 희망이란 말로 바뀌어갈 욕망.” 그 시선의 변화를 카메라는 어떻게 대리할까. “촬영감독하고 전시하듯 보여주기 위한 앵글이 아니라 보는 앵글 위주로 가자고 했다. 일반 관객이 아니라 작가의 시선에서 민경을 찍어나가야 하는데, 우리가 제대로 된 시각을 갖고 있지 않으면 잘못 담길 수 있어서 계속 고민 중이다.”
한편 조근현 감독에게는 민경만큼 준구를 담아내는 방식도 중요하다. <봄>을 일종의 영화적 자화상으로 여기고 있는 그는 “‘예술가’의 내면을 왜곡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 수 있길 바란다. “‘고뇌에 찬 괴팍한 예술가’라는 이미지는 비평의 폭력이 낳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한국영화 중에서도 예술가를 이상하게 다룬 작품들이 많았다. 예술가의 삶도 여느 인간들의 삶과 마찬가지고, 허접하기도 하고 헐렁하기도 하지 않나. 우디 앨런의 영화 속 예술가들처럼.” 그렇다고 ‘예술영화’의 자의식을 드러낼 생각은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대중영화다. 내 사연을 앞세우지도 않을 것이고 미술감독 출신이라고 준구의 작품세계를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 역시 내 취향이 아니다. 예술에 관한 영화라고 어렵게 만들 생각도 전혀 없다. 박제동 선생님에게 뼛속까지 파묻히도록 배운, ‘민중과 함께’하는 정신을 생각한다.”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봄의 색채와 향기로 그려낼 <봄>은 8월 말 크랭크인을 목표로 한창 캐스팅을 진행 중이다.
한줄 감상 포인트
어쩌면 <은교>보다는 덜 치명적이고 더 온화한 방식으로 예술가와 모델의 관계에 탐닉할, ‘예술영화’가 아닌 그저 예술에 관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