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내 안에 잠든 소녀를 깨워
2013-07-10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소녀> 이해영 감독-시나리오 작업 중

제작 청년필름 / 감독 이해영 / 출연, 스탭, 배급 미정 / 크랭크인 12월 / 개봉 2014년 하반기

시놉시스 1938년 경성의 한 기숙학교. 몸이 약한 소녀들이 모인 요양학교에서 소녀들의 병세가 호전되면서 기이한 일들이 벌어진다.

이해영 감독과 소녀. 왠지 어울린다. 이해영 감독의 신작 <소녀>는 근대의 여자 기숙사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소녀들의 불안과 흔들림에 관한 영화다. 징후는 <천하장사 마돈나>에서부터 이미 감지되었다. 소녀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아저씨가 그려낼 소녀는 어떤 모습일까. 더구나 배경이 1930년대 여자 기숙사라니, 호기심은 더해간다. 흥미로운 호러영화가 될 것 같다고 하자 이해영 감독은 손사래를 치며 호러 장르 안에서 해석될 것을 경계한다. 불안에 대한 새로운 접근, 근대라는 과도기와 소녀의 불안함이 만났을 때 어떤 화학반응이 일어날지 이해영 감독에서 직접 들어봤다.

-소재가 이색적이다. 어디서부터 출발한 이야기인가.
=<페스티발>을 마친 뒤 쟁여놓은 아이템도 없었고 어떤 작품을 해야 할지 몰라 붕 뜬 상태였다. 그때 마침 떠오르는 이미지 하나를 붙잡고 끙끙대고 있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나무 밑에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서 있는데, 양손에 피 묻은 글러브를 끼고 있는 거다. 이와이 슌지 영화 같은 화면에 순정만화 속 표정을 한 소녀. 그런 포스터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문제는 이걸 상업적으로 풀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러던 차에 심현우 PD를 만나 돌파구를 발견했다.

-하나의 이미지를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들어나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다.
=내 말이. 이미지 위에 명확한 기획을 얹으면 후다닥 글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더라. (웃음) 1930년대 여자 기숙학교, 장르적인 바탕은 호러. 이렇게 딱 세 단어와 이미지만 가지고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길어졌다. 대략 1년 정도 걸린 것 같다. 게다가 호러를 염두에 두고 출발했지만 호러적인 주파수를 정확히 맞추는 게 힘들었다. 변종 장르처럼 해석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호러적’일 수는 있어도 호러는 아닌, 그러니까 순정만화적인 감성이 살아 있는 서스펜스 드라마로 마무리되었다. 기획서대로 말하자면 서스펜스 공포 액션? 하긴 그게 정확히 시나리오의 순서이긴 하다. (웃음)

-1930년대라는 시대배경이 흥미롭다. 신선할 수도 있지만 모험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재밌고 절묘한 시대다. 정체성을 갖지 못하도록 강제된 시기랄까. 조선인이기에 정체성을 가질 수 없었던 시기와 여고생의 과도기적인 감성이 맞닿아 있다고 느꼈다. 학교에서 강제하는 것과 국가가 강제하는 것도 섞여 들어가는 지점이 있고. 그 당시의 열패감, 채무감 같은 것이 여고생의 정서와 만났을 때 화학반응 같은 게 있다.

-장면의 디테일에 공을 들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시대배경이 1930년대인 만큼 이번에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되겠다.
=사실 그런 측면에서 30년대는 약간의 핸디캡이 있는 시대다. 그 시대를 배경을 한 영화 중 크게 성공한 영화도 없었고. 흔히 근대를 배경으로 하면 미술에 굉장히 힘을 들이기 마련인데 이번에는 일부러 힘을 빼고 가려 애쓰고 있다. 예전 <페스티발> 때 교복 셔츠의 면 소재를 60%로 해달라고 할 정도로 소품이나 디테일에 집착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런 강박을 없애고 최대한 비어 있는 느낌으로 가고 싶다. 고딕풍의 황량한 장면 위에 소녀들이 도드라지도록. 조명과 어둠을 활용해보고 싶은데 <디 아더스> 같은 화면이면 좋을 것 같다.

-<소녀>의 핵심은 결국 ‘소녀’의 이미지겠다.
=그걸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게 영화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여러 배우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아직은 가능성 단계다. 내 가슴속에 잠들어 있는 소녀를 잘 불러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목표가 있다면.
=이제 슬슬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고 싶다. (웃음) 그걸 위해 장르로 똑 떨어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녹록지가 않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장르적인 색깔, 그러니까 서스펜스나 호러적인 요소는 요리를 어떤 접시에 담아내는가의 문제다. 중요한 건 담겨진 내용물, 그러니까 소녀의 마음, 소녀들의 드라마가 될 것이다.

한줄 감상 포인트
소녀의 마음을 지닌 아저씨가 그려낼 소녀. 일렁이는 촛불 그림자 같은 불안의 매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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