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서, 영화의전당 근처에서 오가며 만난 모든 사람들이 <족구왕> 얘기를 했다. 영화제 특유의 진중하고 날카로운 작품들 속에서, 청춘의 긍정적인 ‘에네르기’를 마음껏 발산하는 이 영화가 보는 이들에게 적잖은 활력소가 되었나보다. 모두가 학점 취득과 취업 준비로 바쁜 대학 교정, “족~구하는 소리하고 앉아 있네”라는 비아냥에도 아랑곳 않고 거침없이 독수리킥을 날리는 ‘족구왕’ 만섭의 모습이 “누가 뭐래도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우문기 감독의 뚝심과 겹친다.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단편들이 다 전체관람가 영화였다. (웃음) 언젠가 그런 생각도 해본 적 있다. 누가 나에게 <추격자> 시나리오를 주고 감독을 맡으라고 하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사람이 죽고, 보다가 눈 가리게 되는 잔혹한 영화들을 잘 못본다. 심각한 영화도 늘 극장에서 보다가 졸게 되더라. 내가 좋아하는 건 그런 영화들이 아니다. 때론 유치하고, 때론 허무해도 보고 나면 웃을 수 있는 영화를 좋아한다. 벤 스틸러가 출연하는 영화나 웨스 앤더슨의 작품,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 잭 블랙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감독을 꿈꿨기에 영화를 만든다기보다, 좋아하는 영화를 계속 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이 직접 영화를 만들기로 마음먹었다는 우문기 감독의 첫 장편은 그가 좋아한다는 영화들을 닮았다. <족구왕>은 귀여워서 웃고, 썰렁해서 웃고, 정색해서 웃게 되는 영화다.
홍익대학교에서 영상영화를 전공한 우문기 감독은 족구와는 거리가 먼 대학 시절을 보냈다. 미대 안에 포함되어 있던 학부였기에 같이 족구할 사람을 찾는 거뭇한 복학생들보다 똑 부러진 여학생들과 마주하는 일이 더 잦았다. 원체 남학생도 소수였지만, 영화연출을 지망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소수 중의 극소수”였다고 말하는 우문기 감독도 한때는 광고 제작을 꿈꿨다. 우연히 영화를 찍던 같은 학부의 선배 형들과 친해지면서 그는 “여러 명이 모여 연기부터 조명, 녹음까지” 함께 해치우는 영화 작업의 묘미를 깨달았다. 그 즐거움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 과정에서도 이어졌다. “마음 맞고, 취향 비슷한” 동기들이 모여 만든 영화가 바로 김태곤 감독의 <1999, 면회>다. 이 영화의 미술을 맡았던 우문기 감독에게 처음 <족구왕>의 시나리오를 건넨 이도 김태곤 감독이었다. “술자리에서 졸업영화 찍어야 한다고 고민했더니 태곤이 형이 족구하는 복학생의 이야기를 구상한 게 있다며 <족구왕> 얘기를 꺼내더라. ‘술 사면 너한테 팔게’ 하기에 술 사고, <족구왕> 아이템을 가져왔다.” 자살과 성폭행 등의 ‘센’ 소재가 포함되어 있던 초기 단계의 <족구왕>은 우문기 감독의 캐릭터를 고려한 김태곤 감독의 ‘맞춤형 시나리오’로 유쾌하게 재탄생했다. 이처럼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주고받고, 굳건한 영화적 유대 관계를 결성한 영상원 동기들은 <1999, 면회> 당시 설립한 ‘광화문시네마’라는 창작집단 아래 모여 있다.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영화를 만들자”는 것이 모든 멤버가 동의하는 바라고 우문기 감독은 말한다. “상업영화를 찍게 되더라도 영화적 갈증을 느낄 때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젊은 감독들의 공간에서 앞으로 그가 만들어낼 웃음 머금은 영화들이 궁금하다. 일단은 “영화제에 급하게 출품하느라 미처 손보지 못했던” <족구왕>의 후반작업이 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