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분노 말고 할 수 있는 게 뭘까
2013-10-29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한공주> 이수진 감독

과거 어떤 사건을 겪은 여고생 한공주(천우희)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인천으로 전학을 간다.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면서 삶의 희망을 찾는다. 하지만 꼬리표처럼 따라온 과거가 공주의 새로운 삶을 또다시 산산조각낸다. 공주는 앞으로도 계속 따라올 자신의 과거를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서 출발하는 <한공주>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무비꼴라쥬상과 시민평론가상을 수상하며 2관왕에 올랐다.

-2008년 미쟝센단편영화제 비정성시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과 촬영상을 수상했던 단편 <적의 사과>(2007) 이후 거의 6년 만이다.
=계속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한 제작사와 각본 계약을 해서 2년 동안 준비한 것도 있었고.

-<한공주>는 과거 어떤 사건을 겪은 여고생 공주가 새로운 삶을 살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거의 일이 플래시백을 통해 수시로 끼어든다.
=공주가 겪었던 그 때 그 사건을 재구성하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런 이야기는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다루니까. 공주가 겪은 일과 유사한 사건들을 접한 뒤 분노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분노하는 것이 제대로 된 분노인가. 가해자든 피해자든 그 친구들이 주변 사람이라면 분노하는 것만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선뜻 떠오르지 않더라. 사람들은 어떤 사건에 내재되어 있는 진짜 문제들을 정말 생각해볼까, 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영화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했다. 영화를 하게 된 계기는 뭔가.
=대학 졸업하기 직전 방학 때 ‘내 인생의 영화 한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 기회가 있었다. 전문지식 없이 글을 쓴 뒤 소소하게 친구들을 모아 한 3일 동안 찍었다. 우리끼리 스탭, 배우 다 하고. 컷편집도 직접 배워서 하고. 무척 즐거웠다. 목적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완성하고 난 뒤, 친구들이 영화제에 내라고 권해서 그해 서울독립영화제와 인디다큐페스티벌에 냈던 기억이 난다. 그때 경험한 영화제는 신세계였다.

-그래도 재능이 있었나보다. 이후 꾸준히 영화를 만들었다.
=2004년 <아빠>를 만들어 서울독립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초청받았고, 당시 싸이더스에서 9개월 정도 연출부 생활을 하다가 영화가 엎어진 적도 있었다. 인디스토리가 제작한 <8월의 일요일들>의 조연출을 하고 난 뒤 <아들의 것>을 만들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와 미쟝센단편영화제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허진호 감독님의 <행복> 연출부로 일한 뒤 <적의 사과>를 만들었다.

-<적의 사과>로 인정받았는데 그때 솔깃한 제안은 없었나.
=그렇게 솔깃하진 않았다. 시나리오 쓰는 거 없어요? 같은 입질 정도. 몇몇 제안이 있었지만 그때는 자신감이 너무 많았다고 할까, 오만했다고 할까.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사실 감독이 영화를 찍지 않으면 백수잖나. 어머니가 물어보셨다. “뭐하고 지내니?” “글 쓰고 있어요”라고 대답하면 “감독이 영화를 찍어야 감독이지. 그게 무슨 감독이야” 그러신다. 그게 맞는 말씀인 것 같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한공주>를 준비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
=그만둘 수가 없었다. <아빠>도, <적의 사과>도, <한공주>도 내게 마지막 영화였다.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관객에게 내가 영화를 계속해도 되는지 검증받는 것 같다. 좋지 않은 결과를 받으면 무슨 염치로 영화를 하겠는가.

-지금은 홀가분하겠다.
=전혀. 크랭크업했을 때도, 지금도 홀가분하지 않다. 개봉이 끝날 때까지 그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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