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배드민턴처럼
2013-10-29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오계옥
<셔틀콕> 이유빈 감독

바람에 날아간 공을 쫓아 달려갔다가 의외의 풍경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셔틀콕>은 목적지로 가는 도중 잘못 접어든 길에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믿는 영화다. 부모의 유산을 가지고 잠적한 누나를 찾아 남해로 떠난 의붓형제 민재(이주승)와 은호(김태용)가 이 영화의 말미에 얻는 건 누나의 돈이라기보다는 여정의 수많은 샛길에서 경험하고 느꼈던 무엇이다. 지나치기 쉬운 공간과 사건들을 소홀히 하지 않는 영화를 만든 데에는 연출자의 세심한 마음의 결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이유빈 감독의 말을 들어보니 그 짐작이 맞는듯하다. “이제까지 만든 단편들을 곱씹어보았을 때, 나는 ‘미련’에 대한 영화를 만들어왔구나 싶다. 지나간 일에 집착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때 왜 그랬을까. 그 사람은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혹은 내가 그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했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내 영화의 이야기가 나온다.”

<셔틀콕> 역시 이유빈 감독이 과거의 풀리지 않았던 매듭을 떠올리며 구상한 영화다. “집에서 맏이다. 두살 아래 여동생과 여섯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는데, 예전에 남동생과 집안이 뒤집힐 정도로 감정적으로 심하게 싸운 적이 있다. 당시 동생이 <셔틀콕> 민재의 나이쯤이었다. 싸우고 나서 ‘사춘기 남자애들은 왜 저렇게 고집이 세고 안하무인인가’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하게 됐다.” 동생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 이 영화는 “고등학생 시절 배드민턴 실기시험에서 함께 공을 받아줄 친구가 없어 곤경에 처했던” 감독의 자전적 경험과 겹치며 감정적으로 더 풍성한 영화가 됐다. 둘이 모여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는 배드민턴처럼, 인생에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점이 이 영화의 깨달음이자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이유빈 감독의 대답이 됐다.

첫 장편영화를 만들어 부산에 출품하기까지 이유빈 감독이 겪었던 여정이 <셔틀콕>의 의붓형제가 경험하는 우여곡절 못지않다. 중앙대에서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대학원 과정까지 마쳐 갑자기 적(籍)이 없어진 그녀가 “끈 떨어진 연처럼 불안한 마음이 되어” 열흘간 써내려간 작품이 바로 <셔틀콕>이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마음속에서 뭔가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나리오를 쓰면 뭐하나. 혼자서는 영화를 찍을 수가 없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PD도 없고, 촬영감독도 없고, 제작비도 없고.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난생처음 슬럼프가 찾아왔다. 한달 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울기부터 했던 것 같다.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게 다른 곳으로 날아간 인생의 공은 이유빈 감독에게 새로운 인연과 다시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는 용기를 줬다. 부산영화제 아시안필름마켓 부산프로모션플랜(PPP)팀에서 일하며 “영화 찍는 것만 힘든 게 아니라 사람 사는 게 다 힘들구나”라는 점을 깨달았고, 뒤이어 스크립터로 참여한 <회사원> 현장에선 이후 <셔틀콕>을 함께 만들 ‘사람들’을 얻었다. 학부 때만 해도 “부탁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직접 자신의 영화를 촬영하기도 했다는 그녀는 이제 “함께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기에” 영화를 만든다. <셔틀콕>은 어쩌면, 뒤늦게 성장통을 앓은 창작자의 한 시기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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