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2008)을 만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노영석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습작으로 만든 단편영화가 전부였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1천만원의 제작비를 ‘투자’받아 강원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낮술>은 2008년 서울독립영화제를 시작으로 2009년 전주국제영화제와 인디포럼 등 여러 영화제를 뜨겁게 달구었다. 그의 재능을 눈여겨본 CJ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개발실은 그의 신작 <조난자들>(12월 개봉)을 재능있는 신인 감독을 발굴하는 버터플라이 프로젝트 지원작으로 선정했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린 날, 이른 아침에 만난 탓에 문을 연 카페가 없어 노영석 감독과 한 식당에 들어가 낮술을 마셨다.
-부산에서 <조난자들>을 본 관객 반응은 어땠나.
=폭발적이었다. (웃음) 그보다 먼저 갔던 토론토국제영화제에서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조감독과 함께 갔는데 우리끼리 그랬다. 영화제 관객의 반응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부산에 갔더니 토론토 때와 반응이 비슷하더라.
-강원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닌 <낮술>과 달리 <조난자들>은 한정된 공간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낮술> 때도 로케이션 동선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펜션을 베이스 캠프 삼아 그곳에서 스탭, 배우들과 함께 숙식을 해결했고, 촬영 역시 같은 풍경을 피해가며 그 근처에서 찍었다. 평소에 <달콤한 인생>에서 이병헌씨가 꽁꽁 묶인 채로 천장에 매달려 있고 청소하는 아줌마가 그것을 본 체 만 체 피 닦는 장면이나 <트레이닝 데이>에서 에단 호크가 홀로 갱단 소굴에 남아 있는 장면처럼 밀실에서 발생하는 공포를 내 영화에 시도해보고 싶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사가 걸려 있는 일이 또 누군가에게는 그저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섬뜩했다.
-<조난자들>은 시나리오작가 상진(전석호)이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 있는 펜션을 찾아가는 길에 전과자 학수(오태경)를 만나면서 시작된다.
=지금으로부터 5, 6년 전 실제로 겪었던 일이다. 당시 <낮술> 시나리오를 쓰고 난 뒤 남자 한명과 여자 한명이 산행을 하던 중 움막에 들어가면서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 시나리오를 틈틈이 썼다. 한정된 공간에서 사건이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잘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이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강원도에 있는 펜션을 찾았다. 그곳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감옥에서 막 출소한 남자를 우연히 만났다. 내가 가려던 펜션 주인과 잘 알고, 그곳을 찾은 도시 사람들과 싸웠다는 얘기를 들려주던 그 남자가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불편했다. 겨우 펜션에 도착해 시나리오를 썼다. 깊은 산속에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꽤 무섭더라.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고. 그때 그 경험이 <조난자들>의 출발점이자 영화의 초반 시퀀스가 되었다.
-첫 장편 <낮술> 이후 거의 4년 만의 신작이다.
=원래 지난해 찍으려고 했었는데 마침 딸이 태어났다. 어쩔 수 없이 진행을 미뤄야 했다.
-그간 혼자 힘으로 영화를 만들다가 CJ엔터테인먼트 콘텐츠 개발실이 운영하는 버터플라이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았다. 스튜디오와의 작업은 어땠나.
=<낮술>은 각본, 연출, 음악, 미술, 촬영 등 모두 혼자서 작업했다. 그래서 시스템 안에서 영화를 찍는 경험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스탭들을 제대로 구성해 작업했다. 시스템 안에서 감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많은 공부가 됐다.
-차기작이 뭔가.
=<목격자>(가제)라는 제목의 코믹범죄물이다. 스스로 정해놓은 순서대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차례로 찍고 싶다. 아직까지는 아이디어가 팍팍 떠올라서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부터 찍은 뒤 기회가 주어지면 상업영화에 도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