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인 문정현 감독 수신인 ‘평화바람’의 문정현 신부, 오두희 다큐멘터리 감독
문정현 신부님, 뜬금없는 제 편지에 다소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사실 신부님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것도 같습니다. 2002년 즈음 김동원 감독 특별전 뒤풀이에서 처음으로 신부님을 뵀었지요. “문정현입니다” 하는 제 인사에 같은 이름 때문인지 깜짝 놀라셨지요. 이후로도 인사를 드릴 때마다 놀라시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신부님이 저에게 처음으로 해주셨던 말씀이 “예술하지 마!”였습니다. 현장의 이야기들은 빨리 기록되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한다는 게 신부님의 생각이셨습니다.
신부님을 주인공으로 2010년에 제가 제작한 <용산>이라는 영화에서도 이 정권과 권력의 부조리함을 현장의 언어로 웅변해주셨고, 함께하는 삶으로 그 진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군사독재정권에 대한 항거로부터, 군산/용산 미군기지들로, 매향리, 새만금, 부안에서 대추리로, 다시 용산 남일당으로 그리고 제주 강정까지 신부님은 항상 현장의 최전선에 계셨습니다.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문서, 기억나시죠? 신부님에 대한 글은 아직까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외고집, 타인과 타협할 줄 모르는 성격, 매사에 도전적이고 반항적이나 신도로부터 존경받음. 금전에 관심 없고 곧은 성격, 저돌적 성격으로 깡패신부로 불림.’ 선생님은 깡패신부라 불리며 외부세력으로 매도당하시지만 이 땅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현장에서 쉬지 않고 평화와 상생을 외치셨습니다.
오두희 선배, 제가 처음 선배를 본 곳은 용산 미군기지 앞이었습니다. 우연히 집회에 참석했었고, 확성기를 들고 미군기지 철수를 외치던 선배는 여전사의 모습, 그 자체였습니다. 이후에도 ‘평화바람’에서 문정현 신부님과 함께 쉬지 않고 활동하시는 모습은 더이상 운동을 하지 못하는, 혹은 머리로만 운동을 생각하는 저 같은 후배들을 창피하게 만들었습니다. 구수하고 뒤끝 없고 유머러스함과 더불어 진심을 다해 연대하는 모습은 카메라로만 현장에 존재하는 저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래서인지 선배의 2010년 영화 <용산 남일당 이야기>를 통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찍는 영화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평범한 것을 특별하고 보편적인 그 무엇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타인의 고통을 내 영화의 재료로 삼는 기생계급으로의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소재깡패”라고 제 영화의 한계를 이야기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새삼 이해가 됩니다. 다큐멘터리에 있어 현장에서의 태도와 진심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입니다. 선배의 삶과 영화가 이를 증언해줍니다. “정현씨가 열심히 해야지, 난 이제 다큐 안 할 거야, 너무 힘들어” 하시던 선배의 모습이 생각납니다. 치열하지 못하고 오히려 속물이 되어가고 있는 저를 되돌아봅니다.
길 위에서 끊임없이 현재를 고민하고 평화를 외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시는 두분의 삶을 통해 내 삶의 운동을 생각해봅니다. 제 카메라가 shooting이 아닌 recording할 수 있는, 현장에서 겸손히 배우고 함께하는 삶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무쪼록 두분 건강하시고 현장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뭔가 좀 야릇한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