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인 김태일 감독 수신인 아직 만나지 못한 오월에게
제가 정말 만들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면서 선택한 것이 ‘민중의 세계사’였습니다. 역사의 현장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기록에서 누락되기 일쑤인,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언젠가 도서관 구석에서 발견한 한권의 책이 제 생각을 더욱 굳게 해주었지요. 고 권정생 선생님의 소설 <한티재 하늘>. 19세기 말부터 20세기를 살았던 이 땅의 이름 없는 민초들의 삶을 고스란히 담은 책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역사가 권력의 역사이고, 힘의 역사였음을 뼈저리게 일러준 책이기도 합니다. 최소한 자신들이 살아가고 있는 삶을 자신의 방식으로 표현하고 자신의 시선으로 담아내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오월, 당신의 얼굴이 그때 떠올랐습니다. 80년 5월, 광주는 아름다운 공동체였습니다. 물자는 끊겼고, 통신은 두절됐으며, 언론 또한 당신의 말을 외면했습니다. 아니, 왜곡했습니다. 광주는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었습니다. 하지만 광주는 이름 없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광주에선 범죄 한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파 굶어죽는 이도 없었습니다. 서로 위로했고, 서로 의지했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하나였습니다. 넝마주이와 교수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너무나 평온했습니다. 무력으로 권력을 찬탈하려 했던 극소수 무리만이 광주를 불순분자의 난동에 의해 점령된 도시라 불렀지요. 오월, 당신을 보았다는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이 또 있을까요? 그런 세상이 또 있을까요?”
사실 저는 당신의 본명을 알지 못합니다. 다만, 누군가는 당신이 넝마주이였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는 당신이 갱생원에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름 없는 당신을 찾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 당신이 분명히 살아 있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서 수소문했지만 결국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제 딴엔 황급히 서둘렀는데 너무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5월27일 도청이 진압된 다음날 공수부대와 총을 든 군인들이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월산동 일대에 살던 넝마주이들을 전부 다 데리고 갔는데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한 시민의 증언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을 느꼈습니다.
기록이란 증언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증언하지 않는 것은 기록되어질 수 없습니다. 당신을 만나러 간 여행 중에 절감했습니다. 배우지 못하고, 가난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것인지를요. 여전히 저는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못한 채 얼굴 모르는 당신을 쫓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광주에만, 한국에만 머물렀던 것이 아닐지 모릅니다. 지난 몇년 동안 제가 국경을 넘어 떠돌고 다닌 까닭입니다. 며칠 뒤면 당신의 기일, 아니 생일입니다. 당신이 태어난 지 수십년이 지났지만 당신에 관한 이야기는 더이상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에 관한 이야기 중 익히 알려진 것들만 반복될 뿐입니다. 당신을 기념하는 이는 많지만 당신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가능할 당신과의 기념사진을 상상하면서 막걸리 한잔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