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구럼비 바위의 노래가 듣고 싶습니다
2014-05-13
글 : 권효 (영화감독)
문정현 신부, 강동균 전 마을회장(왼쪽부터).

발신인 권효 감독 수신인 제주도 강정마을 강동균 전 마을회장님께

2011년 강정 해군기지 건설 반대 투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독립영화 감독들이 제주도 강정마을로 내려갔을 때 강동균 회장님의 모습을 처음 보았습니다. 마을 잔치가 있던 날이었습니다. 주민들과 활동가들이 한바탕 어울리던 그날 회장님은 마이크를 잡으시더니 걸쭉하게 트로트 한 자락을 뽑으셨습니다. 왁자지껄하고 구수하고 멋들어진 잔치. 강정마을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저는 강정에 사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으려 했기에 회장님과는 이야기할 기회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해군기지와 관련된 곳이면 어디서나 회장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강정마을은 기지건설을 놓고 찬성과 반대의 갈등이 극에 달해 주민들간의 사이가 나빠질 대로 나빠진 상황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마을의 회장으로서, 당신 역시 한명의 주민으로서 무척이나 힘든 시기였을 텐데 항상 웃으며 저희들과 활동가들을 대해주셨습니다. 강정에는 많은 평화 활동가들과 예술인들, 종교인들이 머물며 국방부의 일방적인 해군기지 건설을 막아내기 위해 여러 일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강정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왜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지 별로 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이 내려졌는지 보려 하지 않고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면 지어야지 왜 반대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여지없이 빨갱이와 종북 타령이 울려퍼졌습니다. 이러한 여론과 언론의 비난 속에서도 회장님은 “강정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다”라고 습관처럼 말씀하셨습니다.

2014년 4월, 회장님과 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건설을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됐다는 소식을 기사를 통해 접했습니다. 그리고 강정해군기지는 지금도 공사 중입니다. 2011년 12월 <Jam Docu 강정>이 개봉하고 2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알리려고 만들었지만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강정에서는 주민들과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모여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강정의 모습을 알리고 투쟁에 힘을 보태고 싶었던 마음은 그때와 똑같지만 함께할 수 없는 현재 저의 모습을 바라보면 그 어떤 말도 부끄럽게 써질 뿐입니다.

강동균 회장님과 평화 활동가들이 바지선에 올라 공사를 저지하던 위험천만한 모습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건 무모함이 아닌 절실함이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어떤 절실함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다큐멘터리를 배우고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현실의 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노라 다짐했었습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더 노력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강정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기억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구럼비 바위 위에 드러누워 노래를 부르던 강동균 회장님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따뜻한 날이면 바위도 함께 따뜻해져 정말 기분이 좋다던 그 말씀이 요즘 더없이 생각납니다.

다시 한번 강동균 회장님과 마을 주민들 그리고 생명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모인 많은 분들에게 지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강정이 평화마을이 되는 그날을 위해 함께 싸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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