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멜랑콜리의 50가지 그림자
2015-04-14
글 : 이주현
<그녀>의 아케이드 파이어 Arcade Fire
<그녀>

스파이크 존즈는 <존 말코비치 되기>(1999)로 데뷔하기 전부터 소닉 유스, 비스티 보이스, 위저, 다프트 펑크, 벡, 비욕 등 쟁쟁한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를 수도 없이 찍었다. 즉 귀가 예민한 감독이란 얘기다. 아케이드 파이어가 스파이크 존즈의 레이더망에 포섭된 것도 그러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부인 윈 버틀러와 레진 샤사뉴를 주축으로 한 록밴드 아케이드 파이어는 거물 탄생의 예감을 짙게 풍긴 데뷔 앨범 ≪Funeral≫을 포함해 ≪Neon Bible≫ ≪The Suburbs≫ ≪Reflektor≫까지 총 4장의 정규 앨범을 내놓으며 록신의 총아가 되었다.

<그녀> 이전, 스파이크 존즈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The Suburbs≫에 영감을 받아 단편영화를 찍는다. 28분짜리 단편의 제목은 <신스 프롬 더 서버브스>(Scenes from the Suburbs, 2010). 스파이크 존즈와 아케이드 파이어의 멤버 윌 버틀러, 윈 버틀러가 함께 쓴 시나리오는 도시 외곽에 사는 10대 소년, 소녀들의 삶이 폭력(정확히는 전쟁)으로 무너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상징으로 가득한 아케이드 파이어의 가사는 스파이크 존즈에 의해 손에 잡힐 듯한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이들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스파이크 존즈는 <그녀>의 영화음악을 아케이드 파이어에게 맡긴다. <그녀>의 오리지널 스코어는 아케이드 파이어의 윌 버틀러와 한때 아케이드 파이어의 멤버였던 오언 팔렛이 작곡했고, 모든 연주는 아케이드 파이어가 맡았다. 과학용어 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단어를 제목으로 한 <Supersymmetry>(초대칭)는 이들이 시나리오에 영감을 받아 1시간 만에 데모 작업을 끝낸 곡인데, 밴드의 색깔이 가장 짙게 밴 스코어다.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와 인공지능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의 SF 러브스토리인 <그녀>에서 음악은 인물들의 외로운 내면, 벅찬 마음, 공허한 관계를 표현하는 도구로 적극 활용된다. O.S.T 전체를 관통하는 분위기는 멜랑콜리. 흔들리고 부유하는 감정을 정확히 채집하는 과정이 쉬웠을 리 없다. 윌 버틀러는 말했다. “그건, 두 캐릭터의 머릿속 깊숙이 들어가려는 스파이크 존즈의 머릿속에 들어가기 위한 우리의 두뇌 연습이었다.” 이를테면 “‘슬프고 멜랑콜리한’ 것과 ‘결심의 끝에 동반되는 멜랑콜리’의 차이”를 표현해야 하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스파이크 존즈가 했던 ‘너무 슬프다’ 혹은 ‘너무 차갑다’는 말을 정말로 이해하는 데 거의 1년이 걸렸다.” 불안하지만 아름답고, 슬프지만 따뜻한 <그녀>의 음악은 예민한 감독과 섬세한 뮤지션의 합작품이다. <그녀>의 O.S.T는 제8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음악상 후보에, 스파이크 존즈와 캐런 오가 함께 만든 <The Moon Song>은 주제가상 후보에 올랐다(당시 음악상은 <그래비티>에, 주제가상은 <겨울왕국>의 <Let It Go>에 돌아갔다).

이 장면, 이 음악

<그녀> O.S.T 중 Photograph

육체를 가지지 못한 인공지능 사만다는 테오도르와의 추억을 사진이 아닌 음악으로 남긴다. 사만다는 얘기한다. “피아노곡을 쓰고 있어. 우리 같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대신 이 곡을 사진 삼으려고.” 그때 흘러나오는 피아노곡 <Photograph>는 두 사람의 만남을 파노라마처럼 펼쳐 보여주는 마법을 발휘한다. 이들의 ‘사진’은 많은 것을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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