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인간이 되고 싶은 악마의 속삭임
2015-04-14
글 : 김현수
<채피>의 디 안트워드 Die Antwoord
<채피>

닐 블롬캠프 감독의 <채피>에서 인간의 감성과 지성을 갖게 되는 인공지능 로봇 채피는 길거리 갱단 닌자(왓킨 투도르 존스)와 욜란디(욜란디 비서)에게서 일종의 ‘인간수업’을 받는다. 그래봐야 총기사용법, 표창던지기, 무섭게 욕하기, 건달처럼 걷기 따위를 배우는 것이지만, 채피는 그 안에서 인간의 조건을 깨달아간다. <채피>는 로봇 액션 대신 채피의 인간적 고뇌와 인간수업 과정을 보여주는 데 치중하면서 영화 전체의 정서적 여운을 다잡는 역할로 강렬한 영화음악을 내세운다. 공교롭게도 영화에 출연한 닌자와 욜란디가 속해 활동하는 힙합그룹 디 안트워드(Die Antwoord)의 곡이 영화 전반에 두루 쓰였다. 닌자와 욜란디라는 이름은 이들의 실제 활동 예명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해 활동 중인 디 안트워드는 현재 남아공 젊은이들의 의식 문화를 일컫는 제프(Jef) 문화를 앞장서서 표방하는 등 음악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룹이다. ‘제프’는 가난해도 얼마든지 섹시하고 팬시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하는 일종의 세대 선언이라 할 수 있는데, 닐 블롬캠프 감독은 이 영화를 구상하면서 ‘디 안트워드가 만약 채피의 부모라면 어떻게 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이들에게 출연과 음악을 맡겼다.

디 안트워드는 장르적으로는 얼터너티브 힙합을 추구한다. 얼핏 들으면 보컬이자 래퍼인 욜란디는 아기 울음소리 같은 연약한 목소리로 힘들게 노래하는 것 같지만 그녀가 평균 2~3분 정도의 노래를 한곡 부르는 동안 쏟아내는 거친 욕설 수위는 어마어마하다. 이들의 무대 의상이나 안무도 상당히 퇴폐적이며 성적 수위에 관한 묘사도 꽤 높아서 문제가 되곤 한다. 그래서 악마를 숭상하는 음악 아니냐는 오해도 받는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배경으로 하는 <채피>의 프로덕션 디자인이 전체적으로 시대를 종잡을 수 없고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미래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이유는 무국적인 디 안트워드의 음악적 색깔 덕분이기도 하다.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계통과 구분 없이 마구잡이로 뒤섞여 들어가 있으면서 겉으론 온갖 위악적인 모습을 띠고 있지만 채피가 인간 본연의 모습을 궁금해하듯, 결국 이들이 만들고 부르는 노래는 장르적 외피 너머 어떤 삶의 태도와 양식을 추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장면, 이 음악

<채피>의 Cookie Thumper

닌자는 채피를 속여 현금수송 트럭을 강탈할 계획을 세운다. 그때 마치 노동요처럼 흘러나오는 노래가 디 안트워드의 <Cookie Thumper>라는 곡이다. 크게 한탕 하려는 닌자와 어떻게든 인간이 되고 싶은 채피의 동상이몽이 느껴지는 장면에 남녀간의 야한 장난을 묘사하는 곡이 섞이니 묘하게 쓸쓸해진다. 돈과 섹스야말로 인간의 진실이라고 채피에게 가르쳐주는 장면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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