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토머스 핀천풍의 70년대
2015-04-14
글 : 장영엽 (편집장)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조니 그린우드 Jonny Greenwood
<인히어런트 바이스>

사라져버린 그 여인을 찾아라. 토머스 핀천의 탐정소설을 영화화한 <인히어런트 바이스>는 탐정이 주인공인 여느 영화들이 그렇듯 명확한 하나의 목적으로부터 출발하나, 종국에 어떠한 ‘끝’에 다다르게 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건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니까. 약에 취해 비틀거리며 조금씩 사건의 실체에 다가가는 사설탐정 ‘닥’(호아킨 피닉스)의 뒤를 쫓다보면 결국 우리가 목도하게 되는 건 마약과 환각, 개발과 폭력, 섹스와 환락의 그림자가 드리운 70년대 미국의 풍경이다.

<데어 윌 비 블러드>(2007)와 <마스터>(2012) 그리고 <인히어런트 바이스>. 폴 토머스 앤더슨과 이 세편의 작품을 함께하며 그의 음악적 페르소나로 자리잡은 조니 그린우드의 음악은 <인히어런트 바이스>의 파편화된 서사를 아우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여인, 샤스타가 닥을 떠나는 순간에 흐르는 캔의 <Vitamin C>부터 엔딩 크레딧과 맞물리는 척 잭슨의 <애니 데이 나우>까지 여백을 느낄 새 없이 넘실대는 이 영화의 음악들은 주인공 닥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의 전개를 알리는 ‘스테이지’로 기능함과 동시에 애상적인 정서를 더한다. “나는 매일 아침 현장으로 출근하며 조니가 보내준 음악을 반복해서 들었다. 캔과 닐 영 등이 부른 노래였다. 닐 영의 곡 같은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우리가 하려던 일이다. 달콤한 슬픔(sweet sadness)이 담겨 있는 영화 말이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말처럼 조니 그린우드가 선곡하고 작곡한 음악은 모든 것이 엉망진창인 영화 속 현실과 달리 낭만적이고도 애틋한 정서를 담고 있어 더욱 아련하게 다가온다. 마치 언젠가는 깨어나야 할 좋은 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룹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인 조니 그린우드는 지난 몇년간 영화음악가로서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 세편과 더불어 <상실의 시대>(2010)와 <케빈에 대하여>(2011)의 사운드트랙에 참여하며 그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을 위한 작곡에 서서히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고 말한다. 영화음악가로서 그가 잊지 않으려 하는 원칙은 “영화의 시대적 배경에 걸맞은” 음악적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상실의 시대>를 위해 60년대 일본제 나일론 스트링 기타와 당대의 홈레코딩 기기를 사용하고, <케빈에 대하여>를 작업하며 쇠줄로 만든 하프 연주를 선보인 까닭 또한 그러한 그의 원칙에 따른 선택이었다. 비올라부터 밴조까지, 라디오헤드 내에서도 가장 많은 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으로 유명한 조니 그린우드의 방대한 음악적 스펙트럼은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선보일 수 있는 영화 매체에 적합한 장점이다. 함께 작업할 감독에 대한 예리한 안목 또한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고.

이 장면, 이 음악

<인히어런트 바이스> 중 Journey Through the Past

샤스타의 행적을 좇던 닥은 현관문에 꽂혀있는 엽서 한장을 발견한다. 샤스타가 보냈으리라 짐작되는 그 엽서에는 둘의 가장 좋았던 순간이 적혀 있었고, 닥은 잠시나마 그때로 돌아간다. 이때 흐르는 음악이 바로 닐 영의 <Journey Through the Past>다. 약을 구하기 위해 맨발로 빗속을 뛰어다니는 정신 나간 두 남녀가 있다. 그 장소에 정말 마약이 있든 없든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린우드가 선곡한 닐 영의 음악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그들의 화양연화를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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