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씨네21>, 친구처럼 오래 곁에 있어주길
2015-06-04
진행 : 주성철
정리 : 이예지
사진 : 최성열
나와 한국영화, 나와 <씨네21>, 김지운-장준환-임필성-류승완 감독 대담
왼쪽부터 류승완, 임필성, 장준환, 김지운.

<씨네 21>_<씨네21>은 20년간 한국영화계의 감독들과 함께 성장해왔습니다. 오늘 이 자리엔‘나와 한국영화, 나와 <씨네21>’이라는 주제로 네분의 감독님을 모셨습니다. 우선 <씨네21>과는어떤 인연들이 있으셨나요.

김지운_저는 <씨네21> 때문에 영화계에 들어오게 됐어요. <씨네21> 시나리오 공모전에 낸 <조용한 가족>(1998)이 당선이 돼서 감독 데뷔를 했죠. 당시에는 하이브리드 장르여서 이상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돌이켜보면 <씨네21>이 감독으로서 밥을 먹게 해준 장본인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인연이 각별한 감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씨네 21>_장준환 감독님은 직접 <씨네21>을 몇권 들고 오셨던데, 어떤 사연이 있는 호인가요.

장준환_제가 나왔던 호를 찾아봤어요. 데뷔작 <지구를 지켜라!>(2003)의 신하균씨가 표지로 나왔던 호인데 지금 보니 참 젊네요. 표지로 이렇게까지 밀어주고 그랬는데 죄송했습니다. (일동 웃음) <씨네21>은 영화 공부할 때부터 있던 잡지니까, 내 영화와 이름이 <씨네21>에 나왔다는 게 마냥 신기했죠.

<씨네 21>_임필성 감독님은 <씨네21> 객원기자 출신이셨죠. 굉장히 열심히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임필성_일년 반 정도 일했어요. 마감은 종종 어겼지만 부지런히 참 많이 썼죠. 받은 원고료로 그 무렵 방황 중이었던 박찬욱 감독에게 술도 많이 샀습니다. 당시 <씨네21> 기자로 있던 김영진 선배가 정식 기자를 하지 않겠냐는 고마운 제안까지 주셔서 고민에 빠진 적도 있었죠. 그래도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왔네요.

<씨네 21>_류승완 감독님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2000)가 표지로 실리며 ‘한국 독립영화의 혁명’이라고까지 소개되었죠.

류승완_이례적으로 많은 페이지를 할애하여 제작기도 보여줬어요. <씨네21>이 굉장히 호의적으로 평해주셔서 감사했죠. 그다음부터는 <씨네21>에서 무슨 부탁이 들어오면 거절을 못했어요. 표지도 두번 했죠. 한번은 류승범과 함께, 한번은 전도연씨와 함께. 그러고 보니 여기 다른 감독들과 달리 나 표지모델한 사람이야. (웃음)

<씨네 21>_김지운 감독님이 예전에 연재하셨던 <씨네21> 칼럼도 떠오릅니다. 글을 참 재밌게 잘 쓰셨는데.

김지운_마감력이라는 게 생기더라고요. 평상시에 아무 생각이나 느낌이 없다가도, 마감할 때만 되면 이상하게 쓸 게 떠오르는 거. 격주로 일년 가까이 했습니다. 쓸 게 없으면 “우리 승완이를 돌려다오” 같은 칼럼도 쓰고. (웃음)

<씨네 21>_그랬던 감독님들이 이제는 한날 한시에 모이기 힘들게 됐죠. 감독님들의 신작 소식도 궁금한데요. 김지운 감독님은 송강호씨와 <밀정>을 하게 되었다고.

김지운_원래 할리우드에서 <카워드>라는 작품을 하려고 했어요. 미스터리 스릴러에 호러를 가미해서 시나리오를 썼는데, 회사를 선택하는 문제로 조율을 하다 자꾸 시간이 흘러가는 거예요. 그러던 차에 <밀정> 시나리오를 봤죠. 김산의 소설 <아리랑>을 감명 깊게 본 후로 언젠가 민족의 기백과 대륙의 남자다운 느낌을 담아낸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밀정>은 조국을 위해 희생한 의열단 이야기입니다. 내년 여름 개봉예정이고요. <밀정>을 하면서 그동안 얘기되던 <인랑> 시나리오를 마치는 것이 목표입니다.

<씨네 21>_당장 올여름은 류승완 감독님의 영화 <베테랑>이 기다리고 있죠.

류승완_아마 7월 말이나 8월 초에 개봉하게 될 것 같아요. 좋은 배우들이 운 좋게 많이 나오게 돼서, 현장에서 배우 보는 게 즐거웠어요.

김지운_이미 여러 동료 감독들 불러서 영화를 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자랑하려고 부른 것 같았어요. (웃음)

임필성_저는 오는 6월에 국립무용단에서 하는 한국 무용 연출을 해요. 물론 안무가는 따로 있습니다. 영화로는 7년 전부터 준비했던 <악의 꽃>이라는 시나리오가 있어요. 아마 내년에 찍지 않을까 싶습니다.

장준환_전 계속 뭘 한다고 하다가 꺾인 게 많아서 실제로 만들고 난 다음 말을 하겠습니다. (웃음)

임필성_배우 류덕환이 찍은 단편 <장준환을 기다리며>(2012)는 제가 제작한 건데요. 영화과 학생들이 <지구를 지켜라!>를 좋아하면서 “장준환은 왜 영화를 더 안 찍을까? 그가 찍는다고 하는 <방구맨>의 내용은 이런 거 아닐까?” 하고 상상하는 내용이에요. 그런데 그다음에 <화이: 괴물을 삼킨 아이>(2013)로 화려하게 복귀하셨죠.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이 큽니다.

관객_감독님들이 데뷔하기까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버텨냈는지 알고 싶습니다.

장준환_저는 다른 감독님들과 달리 시네필 출신이 아닙니다. 그러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됐어요. 막상 영화를 만들어보니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도 나중에 PD를 하든, 광고를 하든 생업을 찾으려고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계속 영화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고 있고…. 뒤늦게 시작했지만 영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버텨낸 거죠.

김지운_살면서 사람들은 여러 갈림길, 기로에 섭니다. 곰곰이 뒤돌아 생각해보면 여러 갈림길에서 한길을 선택했다는 건 내가 가졌던 꿈이 그 선택을 하게끔 한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어떠한 꿈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무슨 선택을 할 수 있냐가 결정되는 거죠. 백남준 선생이 “아티스트가 되지 말고 스페셜리스트가 돼라”는 말을 했는데, 그 스페셜리스트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조용한 가족>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갖고 용기 있게 나아갈 수 있었던 건 그 말의 의미를 곱씹었기에 가능했던 것이고요.

임필성_장편 데뷔작 <남극일기>(2005)를 4년 정도 준비하면서 회사가 세번, PD가 여러 명 바뀌었어요. 지금까지 온 걸 보면, 영화를 만드는 건 지구력과 사랑인 것 같아요. ‘남극에 가서 사람들이 다 죽는 영화를 제일 유명한 배우들과 같이 찍고 말겠어’라고 얘기를 하면 다들 웃어넘겼죠. 결국 지구력으로 그걸 기다리고 만들어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을 수십명, 수백명 설득하고 돈 나올 데를 기다리고. 그 시간들을 버텨내고 그리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류승완_저는 여기 있는 감독님들과 달리 아무도 데뷔를 안 시켜주니까 직접 만들었어요.(웃음) 한번에 찍을 수 없으니까 쪼개 만들어서 하나 만들어 영화제에서 상 받고, 상금 받으면 다음 에피소드 만들고 그런 식이었죠. 그런데 한국에 있는 영화제와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다 떨어졌어요. 난 재능이 없나 보다, 더는 무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박찬욱 감독님도 하는 영화마다 엎어지고 힘드실 때였는데 제게 “재능이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능이 있다고 믿는 그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이 저를 오래 붙잡았죠. 행운은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준비를 어떻게 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거죠.

<씨네 21>_끝으로 20주년을 맞은 <씨네21>에 한 말씀 해주세요.

임필성_무수히 많은 영화잡지들이 존재하던 황금기를 지나 이제 거의 모든 영화잡지 다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그러한 부분에서 <씨네21>이 마지막까지 영화의 전문성이나 시네필적인 부분을 지켜주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씨네21>이 더 오래, 아주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네요.

류승완_<씨네21>은 동지 같고 친구 같은 느낌이 있어요. 좀더 나이가 들어도, 현역의 느낌이 나는 그런 우리의 친구였으면 좋겠습니다.

김지운_앞으로도 잘하실 겁니다. 그리고 감독들이 평론가의 평론에 매기는 별점 코너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일동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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