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두버네이 감독의 <셀마>(2014)는 마틴 루터 킹이 흑인 투표권 차별 금지를 위해 셀마에서부터 몽고메리까지 행진한 내용을 밀착하여 담아낸 전기영화다. 유명 감독도 스타 배우도 없는 저예산영화였던 <셀마>는 미국 미주리주 퍼거슨 사태로 불붙은 인권 시위와 맞물려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로튼토마토 지수 99%를 기록하며 개봉 3주차 만에 북미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고, 2015년 오스카 주제가상을 수상하기도 한 이 영화의 호소력은 무엇일까. 허지웅 평론가는 “사실 별로 재미있을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드라마틱한 서사나 오락적인 쾌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런 것과는 다른 의미의 즐거움을 가진 영화가 아닐까 싶다”며 GV의 포문을 열었다. “<셀마>는 마틴 루터 킹을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영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점은 마틴 루터 킹의 신격화로부터의 거리 두기를 시도했다는 것. 그리고 종교적 지도자라기보다는 정치적 지도자로서의 그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자극적인 극화보다는 실존했던 한 인물의 사실적 표현에 초점을 맞춘 전기영화이니만큼, 허지웅 평론가는 마틴 루터 킹을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마틴 루터 킹은 미국 인권운동의 신화 같은 존재다. 버스 좌석 투쟁으로 인권운동에 뛰어든 그는 워싱턴 대행진으로 케네디 대통령으로 하여금 인권법을 발의하게 하였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그는 이번에는 투표권 보장을 위해 영화 <셀마>에 해당하는 행진을 기획한다. 영화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허지웅 평론가는 <셀마>에서 두 가지 논점을 짚어낸다. “이런 운동에서 중요한 건 ‘승리의 경험’이다. 존슨 대통령이 법안을 발의하는 장면을 보며 소름이 돋았다. 저런 게 승리지, 라는 생각을 했다. 운동의 역사가 늘 희생의 역사, 실패의 역사, 폭력의 역사, 당한 역사로만 기억되는 것이 가슴 아프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그래왔다. 승리의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다시 이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경험이 없다 보니 전략이 잘못되는 경우도 많다.” 이에 한 관객이 허지웅 평론가에게 “평론가님은 어떠한 승리를 원하냐”고 묻자, 그는 “인생에서 작은 승리를 하는 경험들이 소중한 것이다. 예를 들면 월급을 받았는데 초과수당 2만원이 계산이 안 되어 있다. 이것을 얘기를 하면 나는 드센 사람이 되고, 귀찮은 일이 된다. 그럼에도 가서 따지고 2만원의 승리를 하고 오는 것이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허지웅 평론가는 인권운동에서 견제해야 할 지점에 대해서도 강조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품성론의 함정에 빠져들기 쉽다. 영화에서 마틴 루터 킹이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갖는 것을 모호하게 표현하지 않나. 그런 부분을 다뤄서 오히려 좋았다. 위인들의 삶은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결과물로 논하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자기가 만들고 싶은 비전과 어젠다를 제시하는 지도자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다. 그 대신 ‘이 사람은 30년 동안 검소하게 같은 구두를 신고 있습니다’ 같은 캠페인들이 앞서는 것은 병적인 상황이다.”
“오스카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고 훌륭한 평을 받은 것에 비해 영화가 조금 아쉬웠다”는 한 관객의 의견에 허지웅 평론가는 인권영화가 지닐 수 있는 함정에 대해서도 논했다. “사실 흑인 인권운동을 다룬 모든 영화들은 영화적 재미가 부족하다. 왜일까. 아직도 흑인 청소년들은 아무 이유 없이 경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감독들이 이러한 소재를 다룰 때 영화적인 비전을 가지고 만들기보다는 소재의 무거움에 짓눌리게 된다.”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러한 면까지 주장하기에는 미안하기도 하다. 다만 이런 영화들이 할리우드에서 조금 더 좋은 평점을 받고, 좋은 수사로 치장되어 나오는 경위는 그러한 죄책감과 무관하지 않다. 영화 안팎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허지웅 평론가의 GV는 그가 평론가이자 ‘논객’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끔 해주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