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 21>_어렵게 일정을 내주신 데 감사를 전합니다. 관객도 행사 전날부터 진을 치고 기다렸고요. 이경영씨는 현재 촬영 중이라 조금 늦을 것 같고 변요한씨부터 인사와 함께 촬영 중인 작품을 소개해주세요.
변요한_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드라마 <구여친클럽>을 찍고 있어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씨네 21>_즐기고 있는 게 맞나요? 여배우들에게 엄청난 시달림을 당하는 중인데.
변요한_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지금까지 어두운 작품을 많이 했는데 <구여친클럽>은 현장 분위기가 밝아서 좋아요.
<씨네 21>_체감하기에 드라마 현장은 어떤가요.
변요한_매체 자체가 빠른 시스템을 갖고 있으니까요. 거기서 당황하는 건 배우의 잘못인 것 같아요. 당황하게 되는 순간이 와도 당황하지 않은 척해야 돼요. (웃음)
<씨네 21>_그 와중에 <씨네21>을 위해 시간을 내주어서 다시 한번 고맙습니다. <씨네21>과는 어떻게 인연이 시작됐나요.
변요한_<들개>로 인터뷰(<씨네21> 939호)를 하며 처음 <씨네21>과 만났는데요. 그 처음을 잊을 수가 없어요. <들개>를 찍기 전이 제게 많이 힘든 시간이었는데 그때 <들개>를 만난 게 다행이었죠. 작품으로 스트레스를 푼 것 같아요.
이경영_(입장하며) 변요한씨 응원하러 왔습니다! (객석 환호) 변요한씨 팬들이 많을 테니 옷도 어려 보이게 입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변요한을 보며) 우리 족발집에서 만난 게 언제지? 그 뒤로 처음 보죠?
변요한_극장에서 뵙게 돼 영광입니다.
이경영_서로 그리워하는 사이입니다. (웃음)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배우여서 계속 보고 싶고 같이 술 마시고 싶어요.
변요한_워낙 바쁘셔서 요즘 두달 정도 끊긴 것 같아요. 그때마다 좋은 메시지를 들려주셨죠. 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가 돼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사람을 이해하라고요. 제 마음에 항상 그 말씀이 있습니다.
<씨네 21>_두분 참 뜨겁게 서로를 아끼시네요. (웃음) 이경영씨가 지나온 20년을 책임진 배우라면 앞으로의 20년은 변요한씨가 채워나갈 것으로 생각해 두분을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이경영_다작 배우를 좋게 봐주신 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씨네21> 20주년도 축하드립니다. 영화인들에게도 고마운 잡지입니다. 우리 땐 <씨네21> 인터뷰를 했느냐 안 했느냐가 그 배우가 그해에 어떤 의미있는 활약을 했는지에 대한 척도였어요.
변요한_저도 <씨네21>과 인터뷰한 이후에 배우로서 더 용기가 생겼어요.
이경영_요한씨도 저처럼 표지 한번 하시죠.
변요한_<소셜포비아>(<씨네21> 995호)로 이미 했습니다. (일동 웃음)
<씨네 21>_이경영씨는 어떤 작품 촬영 중이시죠?
이경영_유승호씨와 <조선마술사>를 찍고 있습니다. (관객이 유승호 이름에 환호하자) 그래도 요한씨가 훨씬 예쁩니다. (일동 웃음)
<씨네 21>_두분이 만난 드라마 <미생>은 제작 환경, 배우의 발굴, 콘텐츠의 내용 면에서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드라마의 새 역사를 쓴 작품이죠. <미생>에 참여하고 배우로서 느낀 변화가 있다면요.
이경영_최대 수혜자는 역시 한석율이죠. (객석 환호) 한석율을 보면서 요한씨가 다양한 색깔의 액팅을 하는 배우라는 데에 놀랐습니다. 또래 배우 중에서도 발군이죠. 언빌리버블! 저는 주변에서 “최 전무님”으로 불리기 시작했어요. 족발집에서도 값을 깎아줬고요. (웃음)
변요한_이렇게 많은 팬들을 만나는 것도 <미생> 덕분이고요. 무엇보다 좋은 선배들과 한 작품에서 호흡할 수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고 뿌듯해요. 이경영 선배님 따라 바로 그 족발집도 갔고요. (웃음)
<씨네 21>_20주년 기념으로 드리는 질문입니다만 숫자 20이 상징하는 이미지대로 두분의 가장 피어난 순간을 물어보고 싶어요. 처음 데뷔할 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어떤 경험을 거쳤는지 얘기를 들어볼게요.
이경영_1987년에 학비가 필요해서 보조출연자로 연기 데뷔를 했는데요. 그 뒤 임권택 감독님 제안을 받고 <아다다>(1987)에 출연했어요. 그다음 작품까지도 꼭 배우를 하겠다는 마음은 없었어요. <깜동>(1988)이란 작품에 출연했다가 모욕을 당했다고 해야 하나… 아주 기억하기 힘든 영화예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고민하던 차에 당시엔 어느 감독의 연출부였던 곽재용 감독과 박찬욱 감독이 굉장히 용기를 주었어요. 나중에 자기들이랑 작품 같이 하자고도 말해줬어요. 그게 바로 <비오는 날 수채화>(1989)와 <3인조>(1997)였어요.
<씨네 21>_당시 변요한씨 못지않은 미소년이셨잖아요.
이경영_무려 한 설문에서 ‘미대생이 뽑은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였어요. (관객 환호)… 다 지난 일입니다. (웃음)
변요한_워낙 팬이어서 기억하고 있는데 저는 지금도 <할렐루야>(1997)를 잊을 수가 없어요.
이경영_그대만 하겠어? (웃음)
변요한_족발집에서 사담 나눌 때도 느꼈지만 선배님이 그 이상의 외로움을 품고 계신 것이 보이더라고요. 그런 와중에도 눈을 보면 마음이 콩닥콩닥하고. (웃음)
이경영_배우는 다 외롭습니다. 외롭지 않으면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인생을 거푸 살 수 없어요. 변요한씨도 눈이 아주 좋아요. 이 친구가 멀리, 깊게 보는 눈을 가졌구나 싶죠. 제가 눈이 촉촉한 건 그저 각막이 약해서. (일동 웃음)
<씨네 21>_지금부터는 눈이 아름다운 두 배우에게 관객이 궁금해하는 점을 들어보도록 하죠.
관객_많은 작품을 해오셨는데 두분 다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거나 가장 깊이 교감한 캐릭터가 누구였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영_남들은 <남영동1985>(2012)의 이두한이라고 하는데. (웃음) 스스로 생각할 때는 <비오는 날 수채화>의 천호예요. 장난기 많고 친구를 위해 희생하려는 점이 저와 많이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변요한_전 작품 수가 선배님만큼 많지 않아서 아직은 모든 캐릭터에 다 제 모습이 있는 것 같아요.
관객_이경영 배우님은 최근 한국영화에 중요한 조연으로 활약하고 계신데요. 주연을 많이 하다 다시 조연 역할로 돌아가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배역의 비중을 놓고는 어떤 고민을 하시나요.
이경영_별 고민 안 합니다. 단 두 신이 나온다 해도 그 신에 제가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지, 영화 전체를 위해 제 역할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만을 생각합니다. 이참에 변요한씨에게 부탁해두고 싶은 게 있어요. 제게 출연을 부탁해온 친구들이랑 함께 못하겠다고 얘기하면서 술 한잔씩 하다보면 마음이 약해서인지 그게 저의 인연인 건지 출연을 약속하기도 하는데요. 변요한씨는 저처럼 다작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안 해도 되는 작품은 성의 있게 거절할 줄 아는 배우가 되세요.
변요한_아직은 제가 감히 그러겠노라고 대답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오히려 선배님의 존재감에 놀라거든요. 잠깐 나오더라도 이런 게 배우의 힘인가 싶을 정도로 반짝하는 순간을 잡아내시잖아요. 할리우드에서도 배우들은 자주 블록버스터와 저예산영화, 주연, 조연을 왔다갔다 하잖아요. 오히려 전 선배님처럼 좋은 작품이라면 허락하는 한 모두 달려갈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관객_두분은 어떻게 그렇게 빛나는 눈을 유지하실 수 있는 건가요. (웃음)
이경영_영업 비밀인데 저는 시신경이 약하고 각막에 문제가…. (웃음) 사물을 주의 깊게 보려고 해요. 기본적으로 상대의 마음의 정서를 깊게 보려 하는 면이 있거든요. 그리고 바람부는 날 멜로 연기를 하면 절로 눈물이 주룩주룩 나요. (일동 웃음)
<씨네 21>_조만간 멜로 한편 하셔야겠네요. (관객 환호)
이경영_변요한씨와 할까요. (관객 더 큰 환호)
변요한_족발집은 이제 못 갈 것 같네요. (웃음) 저는 호기심이 많아서 사람을 볼 때 빤히 보는 버릇이 있어요. 상대방이 민망해하기도 하고요. 남자들은 그렇게 쳐다보면 화를 내더라고요. (웃음)
이경영_이참에 변요한씨가 상영관 한 바퀴 돌면서 관객이랑 눈을 마주쳐보는 건 어떨까요. (관객 환호)
관객_두분은 어떤 감독이 자신의 숨겨진 역량을 가장 잘 이끌어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경영_특정하긴 어렵고 그냥 최근 경험을 말할게요. <암살>의 보충 촬영을 얼마 전 끝냈는데요. 제게 숨겨져 있던 찌질하고 쌈마이 같은 모습을 최동훈 감독이 잘 끌어내주었어요. 삼류 인생을 사는 인물인데 제게 어떤 경박한 캐릭터를 요구했어요. 처음엔 낯설었는데 어느 순간 내 몸에 딱 맞는 옷처럼 아주 자연스러워지더라고요. 굉장히 다른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오늘 보니 제가 다중인격자 같네요. (웃음)
변요한_저는 대체로 젊은 감독님들과 많이 작업했는데 만난 분들은 다 좋아하고 사랑해요. 사람끼리 하는 일이라 안 좋았던 일도 풀면 잘 해결되고요. 한끗 차이인 것 같아요.
<씨네 21>_아쉽지만 서로에게 격려의 말을 나누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경영_여기 모인 분들께 부탁드리자면 변요한씨가 지금 제 나이가 될 때까지 지켜주고 사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변요한씨가 굉장한 배우가 돼서 여러분의 딸들 앞에 다시 이렇게 나설 수 있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이 지켜주십시오. 저는 그때 세상에 없겠죠? 하지만 영화가 남아 있습니다. 작품으로 남을 테니 괜찮고요. 변요한 배우에게 말해두자면, 늘 배우는 어떤 길을 떠나야 하죠. 그 길이 바른 길일 수도, 울퉁불퉁한 길일 수도 있지만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지 않은 길이 생겨날 수도 있어요. 그 길을 꿋꿋하게 여러분과 함께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변요한_…가슴이 너무 뭉클합니다. (침묵)
이경영_아니, 그런데 얼마 전이 어버이날이었는데 요한씨는 나한테 카네이션도 하나 안 걸어줘? (일동 웃음)
변요한_요즘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요. 이 와중에 선배님이 제게 엄청 힘을 주셨습니다. 저는 안 지칠 거고요. 즐겁게 그 길을 가겠습니다. 이경영 선배님이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오래오래.
<씨네 21>_…두분이 함께 작품을 하시면 저희가 꼭 표지로 모실게요. (관객 환호) 두분께 박수 보내주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