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매 장면이 한폭의 회화처럼
2015-06-04
글 : 송경원
사진 : 최성열
<도원경> GV- 김영진 영화평론가
왼쪽부터 김영진, 송경원.

<도원경>은 2014년 베스트영화를 꼽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올라온 영화 중 하나다. 2001년 데뷔작 <자유>로 주목받은 리산드로 알론소는 7번째 영화인 <도원경>을 통해 기대의 신예에서 한 차원 도약했다. 워낙 소문이 무성했던 명작이라 당연히 국내 수입이 될 줄 알았지만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이후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영화는 응당 극장에서 만날 필요가 있다는 일념 하에 <씨네21>이 발벗고 나섰고 수입사가 없어 직접 멕시코 제작사에서 수급한 끝에 두 차례 귀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GV를 맡은 김영진 평론가도 “극장에서 만나야 하는 영화다. 많은 분들이 오셔서 관람하는 걸 보니 동시적 연대감이 느껴져 힘이 난다”며 <씨네21>의 기획과 노고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상영 후, “혹여 관람에 누가 될까 말로 설명하기 조심스러운 영화”라는 평으로 시작된 김영진 평론가의 해설은 겸양과는 반대로 영화의 핵심으로 바로 이어졌다. 김영진 평론가는 “전혀 사전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봐도 존 포드의 <수색자>(1956)를 레퍼런스 삼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며 “영화평론가 켄트 존스가 ‘알랭 레네가 만든 <수색자>’라는 재치 있는 요약을 했다. 여느 영화와 달리 서사를 추동하는 장치 없이 관객이 목격하는 건 황야를 방황하는 비고 모르텐슨의 육체뿐이다. 그런데 그게 아름답다”고 말했다. 인과관계로 묶인 서사구조에 익숙해져 있기에 일견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이같은 비선형적인 접근방식을 통해 사고의 지평을 넓혀줄 영화라는 것이다.

이어 존 포드에 대한 하스미 시게이코의 평을 언급하며 <도원경>의 영화적 태도가 어떤 지점에서 <수색자>를 연상시키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덧붙였다. “존 포드는 기본적으로 화가다. 산업 아래 있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건 없이 비주얼 스토리텔링만으로 접근 가능한 영화를 찍고 싶어 했다. 존 포드 영화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을 중요하게 찍는다는 점인데, <도원경>에도 이러한 존엄의 순간이 곳곳에 서려 있다. 비고 모르텐슨에게 느껴지는 위엄과 존엄의 아우라는 어떤 논리적 설명보다 영화를 아름답게 한다.” <도원경>이 선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강렬한 인상은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리산드로 알론소는 <자유>, <죽은 사람들>(2006), <판타즈마>(2006) 등 전작에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고 공간의 리얼리즘에 집중해왔다. 다만 형식적인 진지함에 비해 다소 미진하고 거친 구석이 있었는데 <도원경>에서는 그 부분이 메워진 느낌이다.

<도원경>에서 촬영감독을 맡은 티모 살미넨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화면은 높은 밀도의 풍경으로 관객을 매혹한다. 이에 대해 김영진 평론가는 “형태적으로 아름답다. 1.33:1의 화면비는 매 장면을 한폭의 회화처럼 변모시킨다. 빛과 색으로 압도하는, 끝내주는 회화를 눈앞에 둔 느낌”이라며 시적인 무드로 가득 찬 영화에 대한 인상을 요약했다. 객석에서 비고 모르텐슨이 어떻게 아르헨티나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는지 묻자 “정확한 정보는 없지만 추정할 수는 있다. 아르헨티나의 신성 알론소에 대해서는 비고 모르텐슨도 익히 알고 있었을 것이고 칸국제영화제 등에서 접촉하지 않았을까. 많은 영화인들의 교류가 그렇게 이루어진다”며 경험에 근거한 신빙성 있는 견해를 내놓았다. 19세기말 아르헨티나 남단의 파타고니아를 배경으로 한 역사적 맥락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선 “19세기 식민지 풍경에 대한 상징이 곳곳에 있지만 굳이 컨텍스트를 몰라도 상관없다. 원주민의 존재는 차라리 일종의 맥거핀처럼 보인다”고 답했다. 활발한 문답이 오가는 가운데 시간이 흘러 밤 11시가 훌쩍 지난 늦은 시간이 되었지만 한명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눈을 반짝이는 관객의 표정을 바라보며 어쩌면 이곳이 영화라는 이름의 ‘도원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할 수 없는 답을 찾기 위해 뱅뱅 돌다 끝내 서로간의 유대를 확인하는 시간. 설사 길을 헤맬지라도 기꺼이 다시 걸어들어가고 싶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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