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지구 방위대의 자전거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2015-06-30
글 : 김혜리
한국 아동애니메이션의 하이킥 <바이클론즈>와 레트로봇
이미지 제작 권순현 <바이클론즈> 액션감독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었다. 한국 애니메이션 <또봇>이 <파워레인저>의 오랜 아성인 4살 이상 TV 만화영화 세계에서 새로운 강자로 등극했다는 뉴스도, 급기야 2013년 말 한 대형마트 완구 매출 1위에 올라 공동 제작사 영실업의 주가를 솟구치게 했다는 소식도. 그런데 뒤늦게 우연한 눈길이 머문 <또봇>은 ‘냉담자’의 주말을 통째로 가져가버렸다. “<트랜스포머> 1, 2, 3편을 합친 것보다 재미있어!” 절로 터져나온 환호는, 마이클 베이의 거대 블록버스터에 대한 염증과는 (아마도 거의) 무관한, 순수한 만족감의 발로였다. <또봇>은 똑똑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TV애니메이션에서 본 적 없는 동시대 한국 사회 일상의 꼼꼼한 관찰과 반영은 반색할 만했다. 하다못해 자동차 어느 부품이 로봇의 특정 부위로 변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고지식한 변신 프로세스마저 <트랜스포머>의 묻지마식 둔갑보다 마음을 끌었다. <또봇>은 현재 17기까지 방영됐으며 올해 안에 19기까지 선보인다. 영실업의 선제안으로 <또봇>을 창조했던 레트로봇(대표 이달)은 두 번째 작품 <바이클론즈>를 먼저 자체 기획해 거꾸로 영실업의 투자, 공동제작을 끌어냈다. 7살에서 10살 아동을 주시청자로 설정한 <바이클론즈>는 2014년 8월 SBS에서 첫 방영된 후 지금까지 3기에 걸쳐, <또봇>의 덕목을 성장시키고 재미를 세련화한,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저 멀리 걷어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구를 지키는 5남매의 자전거가, 기자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아니다. 자전거가 업그레이드된 액션 바이크, 액션 바이크가 탑승한 클론과 그들끼리 도킹한 합체 클론, 최종 합체인 인피니티까지 몽땅 들어왔다. 드디어 출동을 명받은 기자는 <바이클론즈> 4기와 12월 개봉할 극장판 <또봇>의 ‘조립’으로 분주한 구로구의 레트로봇 본부를 향해 또봇 더블유(<또봇>의 변신 로봇은 K 자동차 회사의 실제 차종이 모델이다)의 시동을 걸었다.

한국형 생계 밀착 전대물

<또봇>의 열살 동갑내기 주인공 하나, 두리, 세모는 로봇공학자 아버지들의 발명으로 말미암아 또봇 파일럿이 된다. <바이클론즈>의 태오, 래오, 미오, 지오, 피오가 외계 제국에서 온 침략자들을 막아내는 바이클로넛으로 활동하게 된 근본 이유는 부모가 없어서다. 초등학생 둘, 중학생 하나, 고등학생 하나, 그리고 스무살의 맏이로 이뤄진 5남매는 사라진 부모를 대신해 유일한 재산인 가족의 집을 지키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간다. 시즌1이 시작될 무렵 아이들은 이미 보호자 없는 가난과 친숙하다. 누구도 엄마를 그리며 울거나 안방이 있는 집 2층이 왜 지금처럼 뜯겨져나갔는지 회상하지 않는다. 그저 요금 미납으로 끊긴 전기를 대기 위해 자전거 발전기 페달을 교대로 밟고, 고리대금업자의 이자 독촉을 간신히 방어하며 오늘 하루치의 궁상스러움에 대해 투덜거린다. 그러던 어느 날 제일 실리적인 넷째 지오에게 정체 모를 할머니(이순희)가 영혼이 맑아 보인다며 접근해 지구방위주식회사 입사를 권유한다. 초등학생을 고용해주는 데다가 회사 비품인 신형 자전거를 얻는다는 데 솔깃해 바이클로넛(바이클론의 파일럿) 1호가 된 지오의 뒤를 남매들이 차례차례 따른다. 물론 동기는 조금씩 다르다. 막내 피오는 정의감으로, 미오는 슈트 업한 모습이 멋져서, 실질적 주부 역인 둘째 래오는 동생들만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는 걱정에다 세입자로 들어올 할머니가 보탤 부수입에 혹한다. 밤낮 없는 아르바이트로 식구들 얼굴 보기 힘든 맏이 태오는 “동생들과 뭔가를 즐겁게 함께하고 싶어” 우르사 클론의 조종사로 마저 합류한다.

<바이클론즈>의 지구방위회사 업무는 전쟁보다 조기 직업 체험에 가까워 보인다. (어른의 현실은 다르지만)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아이들은 ‘노동’을 통해 재화를 얻고 사회에 기여하며 인격적으로 성장한다. 다만 모든 직업이 그렇듯 정당한 보수가 없다면 보람이고 자아실현이고 열정페이 착취다. 약속한 월급이 자꾸 미뤄지자 지오는 액션 바이크와 클론을 ‘유용해’ 심부름센터 창업을 꾀하기도 한다. 외계에서 온 적수들도 <바이클론즈>를 비현실적 판타지로 바꾸지 못한다. 일단 감찰사 전시용을 위시한 이들은 작정한 정복자라기보다 어쩌다보니 지구에 떨어져 실적을 위해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는 관료와 용병에 불과하다. 우주인들의 최대 난제는, 수십년 전 흠마제국에 정복된 지구 사람들이 그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점이다. 우주제국 전쟁의 역사 등 <바이클론즈>를 조금이라도 스페이스 오페라스럽게 만들어줄 큰 그림은 4기 이후 노출된다. 혹시 성인 시청자만 <바이클론즈>의 현실주의에 반응하는 것일까? 꼭 그렇진 않다. <바이클론즈>를 3기까지 완주한 유민형(10)군은 5남매가 앞으로 어떻게 됐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집 문제가 잘 풀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지구 지키는 것보다 중요하냐고 묻자 지구도 문젠데 집이 없으면 더 큰일 아니냐고 반문했다(시간을 내준 소년은 인터뷰를 주선한 엄마에게 2천원을 요구해 <바이클론즈> 팬다운 셈 바른 태도를 보였다). 물론 어린이 시청자의 관심사는 전투의 화려한 주역이다. 동물 형상을 한 클론(액션 바이크를 타고 파일럿들이 탑승하는 로봇)과 기생사리에 감염된 지구 동물의 돌연변이체인 불가사리에 대한 반응이 좋다.

이달 총감독과 고동우 감독이 <바이클론즈>에 대해 설정한 “현실적이고 ‘궁상스런’ 전대물”의 컨셉은 두 사람이 <순풍산부인과>와 <하이킥> 연작 등 김병욱 감독 시트콤의 열렬한 팬이라는 사실과 관련 있다. 이달, 고동우 감독은 오마주의 뜻을 담아 김병욱 사단이 크레딧에 썼듯이 각자 ‘가다랭이’, ‘가을 고등어’라는 닉네임도 사용하고 있다. 김병욱표 시트콤은 할리우드 수작의 모범을 가깝게 따라잡아서 훌륭한 게 아니라, 동시대 한국에서 살아가는 수용자만이 온전히 만끽할 수 있는 해학과 정서, 통찰이 있어 귀한 텍스트였다. <또봇>과 <바이클론즈>도 동류다. 또봇은 전투에서 부상을 당하면 본부로 돌아와 부항을 뜨고 침을 맞는다. <바이클론즈>의 마트는 장 보는 곳일 뿐 아니라 아이들이 시식 코너에서 군것질을 대신하고 지친 형이 안마 의자에 앉아 쉬는 알뜰한 놀이터다. 서비스받는 입장에 서면 무례해지는 악습, 골목 상권의 파괴, 연예인에게 과한 환상을 투사하는 문화 등 한국 사회의 온갖 면모가 생생히 재현된다. 사발면 뚜껑을 나무젓가락 틈새에 끼워 눌러두는 클로즈업 디테일부터 화법까지 레트로봇 애니메이션은 아담한 인류학이래도 손색이 없다. “예전부터 답답했다. (해외 시장에 팔리지 않으면 채산성이 없어) 글로벌 콘텐츠를 목표로 만들다보니 시나리오 회의부터 한국적 문화의 표현을 억압받는 답답함이 있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나와도 이건 미국 아이들은 모르니까 안 돼 하는 식으로 덜어내다 보면 우리가 원하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영실업이 <또봇>을 제안하며 수출을 염두에 두지 않고 국내 완구시장에서만 팔리면 된다는 입장을 밝혔고 이건 어렵지만 현물투자를 해서라도 반드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이달 감독) 김미혜 작가도 부언한다. “<또봇>은 영어 더빙 버전이 나온 상태인데 떡볶이 같은 경우 외국에서 방영되더라도 명칭과 정체성을 바꾸지 않고 무슨 음식인지 설명하지도 않는 방식을 쓴다. 불친절한 번역이지만 맛있어 보이면 검색하거나 찾아 먹어보겠거니 하고 편하게 생각한다.” 안전주의자들의 믿음과 달리 충실하게 지역적인 것이 글로벌한 스펙트럼에서도 설 자리가 있다. 세부를 몰라도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관객은 일단 몰입한다. 그리고 모르는 문화를 찾아서 학습한다.

‘또덕’들이 자급자족해 확장한 우주

레트로봇의 캐릭터는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온갖 자질이 뒤섞인 인간이다. 인물의 성격은 특정 상황과 관계 안에서 그때그때 다른 면모를 드러난다. 큰 사고를 겪었다거나 입양됐다거나 하는 여느 드라마 같으면 소동을 초래했을 ‘트라우마’가 해당 인물을 규정하지 않는다. 악행을 저지른 인물이 변화해 동지가 되기도 하고 착한 사람도 폐를 끼친다. 10살 소년에게도 쿨한 매력이 있고 할머니라고 마냥 인자하지 않다. <바이클론즈> 3기가 끝날 무렵까지 오씨 남매와 시청자들은 이순희가 아동을 착취하는 어른인지 의지할 만한 보호자인지 반신반의하고 불가사리 전문가 화심에 대해서도 양가감정을 유지한다. 이는 극의 재미를 반감시키기는커녕 풍부하게 만든다. 아동용 작품에서 자칫 감상을 어렵게 하는 ‘노이즈’로 간주될 수 있는 작법이지만, <바이클론즈> 제작진은 크게 모험이라고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비장한 자의식 없이 현명한 연출은 소수자 묘사에서 빛난다. <또봇>이 처음으로 마음을 뺏은 순간은 1화 도입부에서 하굣길의 두 아들을 데리러 온 도운이 전동휠체어를 타고 자연스레 차에서 내리는 장면이었다. <또봇>과 <바이클론즈>는 <드래곤 길들이기>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엑스맨: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가 그랬듯 영구적 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중요 인물로 등장시키면서도 장애를 인물을 규정하는 최대의 속성으로 다루지 않으며 이상한 ‘사태’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저 서로 다른 사람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세계의 정상상태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전한다. 다문화 가정의 친구도, 다른 환경에서 온 생경한 습관을 가진 인물을 그릴 때에도, “친절히 대해야 하지만 끝내는 우리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이해하기에 좀더 시간을 요할 뿐인 이웃으로 대한다. <바이클론즈>의 숨은 슈퍼 파워는, 좋아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도 나온다. 고동우 감독은 “그동안 시간이 흘러 지금 우리 회사엔 <또봇>의 팬, 소위 또덕들이 디자인, 스토리보드팀 곳곳에 침투해 있다. 래오의 경우 처음 뒷머리가 길었는데 반발이 커서 바꿨다. 감독들도 나중에야 스탭들이 만들어 넣은 디테일을 발견할 때가 있다”라며 웃는다. 팬이자 창작자인 이들은 애착하는 캐릭터를 위해 서사와 무관한 사랑스런 제스처를 더하고, 잠깐 스쳐가는 전단지에도 농담을 넣는다. <또봇>의 리모가 찻잔 둘레를 어루만지거나 <바이클론즈>의 태오가 병상에서 이마에 얹은 수건에 “극락왕생을 기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수놓인 걸 발견하며 팬들은 즐겁게 충성심을 다진다.

그러나 TV 방영료가 제작비 10%를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완구 파트너십에 온전히 기대야 하는 제작 조건은 일정한 작품 내적 제약도 의미한다. 신규 로봇 출시 일자와 조율해 시즌마다 새로운 로봇 캐릭터가 등장하고 그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돼야 한다. “더 펼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는데 새로운 또봇이 등장해 그에게 포커스를 맞춰야 할 경우가 있다.”(이달 감독) 완구로서는 빼놓을 수 없는 합체 플롯도 로봇 하나하나의 개성을 펼칠 여지를 좁힌다. 하지만 제약이 창의를 끌어내는 예도 있다. 이달 감독은 처음 <또봇>을 만들 때만 해도 신규 또봇이 시즌마다 등장해야 계속적 투자가 가능하다는 현실을 몰랐다고 한다. 문제는 또봇이 어린이 파일럿과 교감으로 움직이는 특수한 로봇이었다는 점이다(<또봇> 14기에는 세모가 울려고 하자 또봇 제트가 카스테레오를 짐짓 높여주고 창문을 올려주는 장면이 있다). 그리하여 ‘마인드코어’라는 감수성 프로세서가 고안됐다. 로봇이 파괴되고 외형이 바뀌어도 “친구를 갈아치우는” 이야기로 전락하지 않도록 발명된 ‘심장’이다. <바이클론즈>에 이르러 감독들과 김미혜 작가는 다른 해결책을 찾았다. 아예 클론으로부터 퍼스낼리티를 분리해 ‘시삽’이라는 일종의 OS 캐릭터로 독립시켜 1년 주기로 클론이 교체되는 구조로 설정한 것이다. <그녀>의 사만다를 연상시키는 <바이클론즈>의 시삽들은, 또래 놀이친구 같던 또봇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좀더 복잡하게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을 바이클로넛과 나눈다.

여전히 레트로봇은 ‘시스템 강제 종료’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완구로 지지되는 내수용이라는 포지션은 한국적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완구회사의 투자와 장난감 매출 및 캐릭터 사업 지분이 제작비의 100%를 차지하는 조건은 장기적 행보 설계를 쉽지 않게 만든다. 연말 세상에 나오는 극장판 <또봇>이 레트로봇의 연대기에서 중요한 이유다. 취재를 마친 기자는 이달 감독에게 마지막으로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장난감과 연계된 애니메이션이니까 소비자인 어린이가 지구를 지키는 영웅 역을 맡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시장 논리를 떠나 하나의 이야기로서 아이들이 세상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연출자는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이달 감독의 답은 단호하고 쓸쓸했다. “아이들이 세상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몫이지 아이들에게 그런 의무를 지워서는 안 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바이클론즈>나 <또봇>의 아이들이 세상을 지키는 이야기는 제 몫을 하고 있지 못한 어른으로서 느끼는 부끄러움에 대한 고백의 메시지로 기능하기를 바랍니다.”

왜 아이가 영웅이 되어야 하나

그러나 어른들에게도 세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키는 일은 힘겹다. 매일 계속해야 하고 날마다 크고 작은 패배에 상처받으며 놓아버리고 싶어지는 사명이다. <또봇>과 <바이클론즈>는 이 어려움도 안다. 간신히 성공한 날에도 보상은 사랑하는 이들과 둘러앉아 먹는 부대찌개만큼 조촐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이해한다. <바이클론즈>의 라디오자키는 어느 해질녘 독백한다. “우리가 하는 좋은 행동은 처음에는 조금은 위선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우리 안의 영웅들을 조금씩 찾아가는 거 아닐까요?” <또봇>과 <바이클론즈>에서 세계를 구하는 것은 완전한 순수와 지혜, 완전무결한 시스템이 아니다. 위선과 이기심, 결함을 안고도 우리 형제가 잠든 집이, 그 집이 포함된 동네가 망가지지 않도록 기울이는 노력의 반복이다. <바이클론즈> 4기는 오는 9월 중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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