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바이클로넛에게 당장 월급 주고 싶지만
2015-06-30
글 : 김혜리
<바이클론즈> 김미혜 작가
<바이클론즈> 김미혜 작가

<또봇> 세계의 초석을 놓은 1, 2기, 그리고 팬들에게 각광받은 5기부터 8기까지를 집필한 김미혜 작가는, <바이클론즈>에 이르러서는 단독 아키텍트의 짐을 졌다. 정확히 말하면 “부모 없이 곤경에 빠진 남매의 궁색한 자전거 전대물”이라는 이달 감독의 전제를 받아들고 은하계 전쟁까지 포함하는 큰 그림을 설계했다. 김 작가의 작업은 한번 마감으로 완결되지 않는다. 시나리오를 넘기면 2회분 단위로 스토리보드팀까지 합류한 ‘끝장 회의’를 거쳐 작가로서 최종 결론을 도출하고 연출 중인 감독의 자문에도 수시로 응한다. 물론 완구회사의 요구에도 유연히 대응해야 한다. 철의 작가다.

-<바이클론즈>에서 바이클로넛의 첫 번째 공은 또봇의 공으로 잘못 보도된다. 두 작품은 같은 우주에 존재하나.

=정확히 타임라인이 연동돼 있진 않다.

-로봇을 좋아하나.

=어린 시절에는 합체하지 않는 거대 로봇에 꽤 열광했다. 개별 로봇의 매력을 실컷 보여주고 콤비 플레이를 펼치다 결정적일 때 한번만 합체해도 좋을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그렇게는 안 되더라. 완구는 전문가들이 나보다 잘 알 테니 어차피 넣어야 한다면 가치를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애니메이션은 1940~60년대에 나온 디즈니의 고전 뮤지컬을 좋아한다.

-트라우마를 극적 장치로 쓰는 것에 경계심이 있는지? 예컨대 레오가 자전거를 기피할 때 미오는 예전 부상 탓인 줄 알지만 알고 보면 실제 이유는 엉뚱하고 사소하다.

=이를테면 “난 입양됐다” 같은 발견은 나한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뿐더러 너무 흔해 재미없어 보인다. 반면 <또봇>의 리모가 “내가 불행해졌으니 남도 불행해야 해”라고 부리는 아집은 조금 중요하다. 사람이 너무 고통스러우면 다다를 수 있는 심리 상태에 관심이 있다. <바이클론즈>의 환장은 막판에 똥까지 먹는다. 아동만화에 똥이 나오면 대개 개그 코드인데, 환장은 지독하게 갈 데까지 가는 캐릭터의 느낌으로 그렸다.

-바이클로넛들에겐 <또봇>에 없는 시삽이 있다. 짝 지워진 바이클로넛과 시삽의 역관계가 다양하다.

=꼭 닮아야 어울리는 게 아니니까. 막내 피오의 ‘어림’은 과묵한 셰이드만이 참아줄 수 있다. 에펙스나 톡시라면 어림없었을 거다. 지오와 로키는 엄청 투닥거리는데 둘 다 강성이다보니 서로 상처받지 않는다.

-말투로 캐릭터를 빚는 감각이 빼어나다. <또봇>은 사투리나 특정 종결형을 ‘시그니처’로 썼는데 <바이클론즈>는 라디오자키, 화심 등을 통해 이를 업그레이드했다.

=화심의 경우, 나는 “맡은 일의 성공을 위해 고용주의 의지도 무시하고 자기 철학을 관철하는 프로”로 설정했는데 이달 감독님은 “개인 성향을 의뢰인의 요구에 앞세우는 것은 아마추어적”이라고 이견을 냈다. 아마 내가 클래식 음악 연주가를 많이 보며 자란 탓이었을 거다. ‘프로’란 단어를 ‘장인’으로 바꿔 설명했더니 교감이 이뤄졌고 그다음부터 화심의 사연을 자유로이 생각할 수 있어 즐거웠다. 내가 일하며 느낀 것들이 화심의 대사에 들어 있다.

-화심이 거느리고 있는 쓰레기 더미 형태의 거대 불가사리 탐(貪)에 대해 설명한다면.

=탐의 별칭은 ‘문명종결수’다. 인류를 멸망시킬 가능성이 있는 개체로 설정하다보니 거창한 이름을 썼다. 탐의 외형을 상상하며 내 탐욕을 돌아보다 나는 인류를 대변 못하겠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는 물건과 장소를 생각했고 쓰레기장이 떠올랐다. 그래서 한 문명의 정체성은 쓰레기에 담겨 있다는 이야기를 작품에 넣었다. 화심이 탐을 키우는 하늘공원도 과거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지구를 지킬 테니 적정임금을 달라”는 지오의 요구에 공감했다. 지오의 주장과 피오의 반박, 이순희의 대응을 어린 시청자들이 어떻게 이해하리라고 봤나.

=초반 기획 당시 월급 문제로 긴 회의를 했다. 아무리 <바이클론즈>의 세계관이 현실적이라 해도 오직 돈 때문에 지구를 지키는 영웅을 어린이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싫다는 의견도 있었고 반대로 ‘월급쟁이 지구 수호대’로 나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당장 월급을 주고 싶지만, 여러 버전의 대안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해본 결과 어느 쪽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캐릭터 호감도가 달라질 게 뻔히 보였다. 결국 극중에서는 아이들이 희생하고, 작품 바깥에서는 이순희 여사가 호감도를 희생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다. 어떤 경우건 우리가 처음에 주인공으로 생활고를 짊어진 아이들을 선택한 이유, 그들의 조력자로 노인을 택한 의도를 잊지 않으면서 해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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