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배트맨 대 슈퍼맨 꿈의 대결이 성사되다
2016-04-05
글 : 송경원
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의 첫걸음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

아마도 올해가 정점이 아닐까 싶다. 슈퍼히어로영화에 대한 피로의 목소리가 조금씩 들려오는 가운데 히어로발 프랜차이즈 경쟁은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미 고지를 선점한 마블이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를 필두로 페이즈3에 본격 시동을 걸었고, 브라이언 싱어가 되살린 <엑스맨> 시리즈는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소 늦었지만 드디어 DC도 출사표를 던졌다. 정확히는 사활을 건 결정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리는 이번 작품에서 대뜸 간판이랄 수 있는 두 영웅, 슈퍼맨과 배트맨의 대결을 성사시킨 것이다.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의 시작>(이하 <배트맨 대 슈퍼맨>)은 제목 그대로 저스티스 리그를 향한 본격적인 첫걸음을 떼는 영화다. 팬이라면 환호할 수밖에 없는 꿈의 매치로 프랜차이즈의 문을 여는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일 것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수퍼맨 리턴즈>(2006)에 대한 반응이 예상과 달리 저조하자 DC는 한동안 숙고에 들어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는 걸작 반열에 올랐지만 프랜차이즈로 확장하긴 어려운 완벽히 독립된 세계였다. 승승장구하는 마블의 기세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였고, 장고 끝에 잭 스나이더의 <맨 오브 스틸>(2013)이 등장했다. <맨 오브 스틸>은 기존의 슈퍼맨과 확연히 다른 해석, 잭 스나이더 특유의 비주얼적인 만족도에 힘입어 나름 합격점을 받았고 향후 이어질 프로젝트의 기반을 제공했다. <맨 오브 스틸> 2편이라 불러도 무방한 <배트맨 대 슈퍼맨>은 서사적, 정서적, 비주얼적인 측면 모두 <맨 오브 스틸>의 연장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트맨 대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을 만족스럽게 본 이라면 충분히 즐길 만하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꿈의 대결은 어떻게 현실이 되었나

조드 장군과 슈퍼맨(헨리 카빌)의 대결, 이른바 블랙 제로 사건을 기점으로 세계는 변했다. 폐허가 되어버린 메트로폴리스, 압도적인 폭력을 목격한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슈퍼맨은 누구인가, 어떤 존재인가에서 슈퍼맨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로의 전환. 이제껏 태양과도 같은 존재, 절대적인 선의 대변자였던 슈퍼맨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이 영화의 동력이자 출발점이다.

그날 슈퍼맨은 지구를 구했지만 그 과정에서 피해자도 생겼다. 브루스 웨인(벤 애플렉)의 웨인컴퍼니 직원들도 그들 중 하나였다. 신과 같은 힘의 충돌 앞에서 사람들을 미처 구하지 못한 브루스 웨인은 자신에 대한 자책과 무력감, 제어할 수 없는 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슈퍼맨에 대한 적대심을 키운다. 슈퍼맨에게 슈퍼맨 나름 고난의 날이 이어진다. 사람들은 슈퍼맨을 구세주로 바라보는 칭송의 목소리만큼 그에 대한 공포를 공공연히 드러냈고 급기야 슈퍼맨을 상대로 한 청문회까지 요구한다. 그 와중에 고담시의 범죄자들에게 증오의 낙인을 찍는 배트맨의 소식을 접한 슈퍼맨, 그러니까 데일리 플래닛의 클라크 켄트에게도 배트맨에 대한 불신이 싹튼다.

드림 프로젝트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선 몇 가지 난제를 해결해야 했다. 우선 왜 배트맨과 슈퍼맨이 싸워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적절한 답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잭 스나이더 감독과 각본가 크리스 테리오, 데이비드 S. 고이어는 이를 위해 정의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진다. 슈퍼맨의 정의와 배트맨의 정의, 정의를 바라보는 각자의 관점과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의 차이가 두 영웅이 대립하는 근거다. 벤 애플렉의 배트맨은 <다크 나이트>와는 전혀 다르지만 시기상으로는 40대 전후의 배트맨을 그리고 있다. 그는 범죄자들과의 오랜 전쟁으로 심신이 지쳐버린 상태이고, 통제되지 않는 절대적 폭력을 단지 선의와 믿음에 기대어 바라보기엔 세상의 어둠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슈퍼히어로영화는 엄청난 파괴가 일어나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그런 큰 사건이 세계 전체에 상흔을 남겼을 거라 생각했다”는 각본가 데이비드 S. 고이어의 말처럼 이 영화는 상흔에 관한 고뇌로부터 출발한다. 실로 DC다운 어둡고 진지하고 무거운 질문이다.

두 번째 난제는 절대적인 힘의 격차를 어떻게 메울 것인지 하는 문제였다. 제작진은 그 답을 <다크 나이트 리턴즈>에서 찾았다. 슈퍼맨과 배트맨 사이 물리적 대결의 원형을 제공한 이 명작 그래픽노블에서 배트맨은 파워를 올리는 아머슈트를 착용하고 크립토나이트를 이용해 슈퍼맨의 힘을 약화시킨다. <배트맨 대 슈퍼맨>의 전반부가 둘이 왜 싸워야 하는지 설득하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순수하게 두 영웅의 충돌을 엔터테인먼트의 관점에서 재현한다. 물론 이 부분은 비주얼텔링의 스페셜리스트 잭 스나이더의 전공분야다. 한방 한방이 웅장하고 묵직한 액션 시퀀스는 여느 슈퍼히어로영화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훨씬 장중한 스펙터클로 채색되어 있다.

잭 스나이더의 빛과 그림자

<배트맨 대 슈퍼맨>을 시작으로 <저스티스 리그 파트1> <저스티스 리그 파트2>까지, 앞으로 이어질 DC 익스텐디드 유니버스의 뼈대를 세우는 영광은 잭 스나이더에게 돌아갔다. <맨 오브 스틸>에서 이미 증명한 바 있듯 그의 장단은 분명하다. 비주얼리스트로서 잭 스나이더는 의심의 여지없는 대가의 솜씨를 자랑한다. 그래픽노블을 한컷 한컷 그대로 옮겨온 듯한 그의 장면 구성 능력은 순간순간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다. 반면 그래픽노블에 충실한 연출기법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호흡과 연결보다는 개별 장면의 완성도에 좀더 힘을 쏟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연출은 감정선을 최우선으로 한 스토리텔링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비주얼텔링이라 부르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때때로 충실한 재현을 자랑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쉽게 지칠 수밖에 없는 일면도 있다. 무엇보다 아낌없이 쏟아붓는 CG의 향연과 <맨 오브 스틸>에서 선보인 빠르고 화려하다 못해 웅대한 전투 시퀀스는 쾌감과 피로를 동시에 안기는 양날의 검이다. 모든 장면에 스포트라이트를 박아넣다 보니 전체적으로 밋밋해질 수 있다는 점도 위험요소다.

다만 잭 스나이더가 이야기를 방만하게 다룬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다. 만약 <배트맨 대 슈퍼맨>이 산만하게 느껴진다면 프랜차이즈의 문을 여는 작품으로서 숱한 설정과 밑밥을 깔아두어야 하는 태생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마블과 비교하자면 개별 영화들을 통해 충분히 캐릭터를 학습시킨 후 <어벤져스>라는 프로젝트로 한데 모을 수 있었던 마블에 비해 현재 DC는 조금 여유가 없어 보인다. <배트맨 대 슈퍼맨>은 <맨 오브 스틸>의 후속작이자 <저스티스 리그>의 출발이며 새롭게 해석한 벤 애플렉표 <배트맨>의 첫 번째 영화다. 비록 개별 영화로서의 조밀한 구성력은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그건 10편에 가까운 후속작을 그려야 하는 영화로서 책임을 수행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적어도 흐름이 일관성 있게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는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하다.

굳이 한계를 지적하자면 온전한 악역의 부재가 아쉽다. 배트맨과 슈퍼맨의 대립은 정의와 정의의 충돌로 무겁게 진행되지만 깊은 질문에 다다르진 않는다. 어디까지나 렉스 루터라는 비틀린 악역의 이간질로 구축된 게임이기 때문이다. 정서적인 대결은 배트맨 대 슈퍼맨이 아니라 메타휴먼(차후 저스티스 리그가 될 영웅들)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는 렉스 루터 대 히어로들 사이에 이루어진다. 물리적인 대결은 렉스 루터에 의해 만들어진 둠스데이와 배트맨, 슈퍼맨, 원더우먼의 연합으로 성사된다. 하지만 어느 쪽의 악역도 그리 인상적이진 않다. 캐릭터의 행동 동기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나 공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단순 소모품으로 사용되는 괴물 둠스데이야 말할 것도 없다. 다만 이 부분 역시 차후 저스티스 리그를 위한 밑그림이라고 이해해줄 수도 있다.

DC의 반격은 가능할 것인가

<배트맨 대 슈퍼맨>이 전면적인 찬사와 환호로 이어질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하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첫걸음이란 걸 부정하고 싶지도 않다. DC는 현재 빼들 수 있는 패 중 가장 강력한 패를 선보였다. 몇몇 설정상의 무리수(예컨대 매트로폴리스와 고담시티가 이토록 가까운 줄은 몰랐다)에도 불구하고 DC가 강공으로 나선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DC 코믹스 영화화의 개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린랜턴: 반지의 선택>(2011)의 악몽으로 대표되는 헛발질은 DC 유니버스의 구축을 매번 좌절시켰다. 문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슈퍼히어로영화 전반에 대한 피로감이 이제 노골적으로 표현되고 있는 상황이란 점이다. 아직 첫걸음도 떼지 못한 DC로서는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DC가 10편에 이르는 장기 프로젝트를 한꺼번에 구상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블 유니버스가 ‘따로 또 같이’ 전략에 따라 영역을 늘려나갔다면 DC는 저스티스 리그를 중심으로 거대한 그림을 한번에 그려나갈 예정이다. 마블의 방식이 실수를 수습할 여유가 있는 퍼즐이라면 이번에 DC가 시도하는 방식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정교한 설계도다. <수퍼맨 리턴즈> 등 개별 프로젝트에서 성과를 보지 못한 DC가 장고 끝에 날린 초강수라는 말이다. 따라서 개별 작품으로서의 완성도만큼 중요한 것이 전체의 밑그림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깔 것인가의 문제다. 다소 산만하게 판을 벌인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배트맨 대 슈퍼맨>의 안정적인 이륙을 강조하고 싶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이 작품은 앞으로 펼쳐질 DC 유니버스에 대한 기대를 품게 한다. 전체적인 톤의 일관성은 물론이고 DC다운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칭찬할 만한 점이다.

잭 스나이더는 배트맨의 각종 장비, 슈퍼맨의 육중한 액션, 기대 이상의 퀄리티로 부활한 원더우먼의 매력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바를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이제 사건은 벌어졌고 각자의 반응이 이어질 차례다. 아마도 슈퍼맨을 두고 갈린 시민들의 상반된 반응처럼 뜨거움과 차가움이 공존할 것이다. 하지만 다소의 아픔이 있더라도 DC는 자신이 믿는 바를 끝내 관철시킬 거라 믿는다. 마블의 히어로들이 자유분방하고 개인적이며 가볍다면, 상대적으로 DC의 히어로는 무겁고 진지하며 어둡다. 선악의 구분이 분명하고 기본에 충실하며 신중한 일면은 그간 유연한 영화화에 다소 걸림돌이 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DC가 큰 그림을 설계하고 무거운 첫걸음을 뗀 이상 앞으로의 행보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 분명하다. 설사 <배트맨 대 슈퍼맨>이 예상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한다고 해도 쉽사리 행보를 바꾸지 않으리라는 묵직한 기대가 DC라는 이름에는 깔려 있다. 그건 DC가 항상 추구해온 고전적 가치에 대한 신뢰와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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