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패자는 없다
2016-04-05
글 : 시드 (영화감독)
DC vs 마블 혹은 마블 vs DC, 라이벌 이상의 공생 관계

메시 대 호날두. 애플 대 삼성. 아이언맨 대 캡틴 아메리카. 배트맨 대 슈퍼맨. DC 대 마블. 사람들은 왜 라이벌에 집착을 할까. 왜 모든 것이 경쟁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본능적으로 모든 것을 대결 구도로 만드는 것 같다. 그렇게 해야만 적어도 어느 한편에는 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느 편에 속하고 누구를 함께 응원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DC와 마블이 경쟁상대라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대결이라기보다 이 두 회사는 결과적으로 각자 자기만의 특별한 브랜드와 정체성을 갖출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공생적인 관계를 이루어온 것이다.

현대 슈퍼히어로의 탄생

1938년 4월18일, 형사물(Detective) 코믹스의 액션 코믹스 브랜드를 통해 슈퍼맨 첫회가 출간되며 만화책 황금시기(1930년 말~1950년 초)가 시작되었다. 이것이 우리 현대 슈퍼히어로의 탄생이다. 그전의 만화책들은 깡패 서부 포르노 SF와 형사물이었다. DC 코믹스의 DC가 디텍티브 코믹스(‘D’etective ‘C’omics)에서 비롯된 약자인 것을 모두 알 것이다. 슈퍼맨의 대성공 이후로 모든 산업이 새로운 슈퍼히어로를 만들어냈다. 슈퍼맨 이후 1939년 5월 디텍티브 코믹스 27회의 어둠 속에서 배트맨이 나타났다. 1939년 타임리(Timely) 출판사(이 출판사는 1961년 공식적으로 마블 코믹스가 된다)는 불과 물에 관련된 슈퍼히어로 휴먼 토치와 네이머를 마블 코믹스 1화에 등장시켰다. 1941년 잭 커비와 조 사이먼은 캡틴 아메리카를 창조했다. 그 당시에 DC는 훌륭한 그림과 탄탄한 스토리 중심이었고, 반면에 타임리 출판사는 훨씬 실험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지녔었다.

코믹스는 초기에 대공황을 탈출할 수 있는 근원이었다. 그리고 1941년 미국이 세계 2차대전에 참전하며 코믹스는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캡틴 아메리카는 히틀러를 때렸고 슈퍼맨은 스탈린, 히틀러와 싸웠다. 그러나 몇년의 대공황과 전쟁을 겪은 후 현실의 전쟁 영웅들이 귀향할 때 미국은 더이상 슈퍼히어로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들은 안정을 만끽하며 휴식을 취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50년대 들어 텔레비전의 인기와 코믹스의 도덕성을 공격하는 미국 상원으로 인해 슈퍼히어로와 코믹스의 인기는 시들어갔다. 종교계와 교육계 집단은 코믹스를 보이콧하고 심지어 코믹스를 모아서 태우기도 했다. 그러나 슈퍼맨은 텔레비전 쇼 덕분에 이 위기를 버티고 인기를 오래 유지했다. 어려움을 겪고 있던 마블은 서부, 괴물, 호러, 코미디, 도덕적 이야기 따위에 의지했다. 1961년 저스티스 리그의 성공이 없었으면 어벤져스와 판타스틱 포도 없었다. 저스티스 리그의 초기 멤버들은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 마샨 맨헌터, 아쿠아맨, 그린랜턴, 플래시로, 당시 마블 회장 마틴 굿맨은 DC 출판사와 골프를 치면서 출판사의 저스티스 리그 성공에 대한 자랑을 들어야 했다. 이후 마틴 굿맨은 작가 스탠 리에게 가서 마블도 슈퍼히어로팀을 만들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어벤져스와 판타스틱 포가 탄생했다. 60년대에는 달에 먼저 도달하기 위한 경쟁이 있었고,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되었고, 시민 평등권 운동이 중요해졌고, 초기 코믹스 팬들은 청소년과 성인이 되었다.

DC 슈퍼히어로들은 독자들에게 좋은 아이들이 되라고 말하는 도덕적인 어른의 이미지였다. 반면 마블의 슈퍼히어로들은 독자들의 걱정과 그들의 세계를 대변하는 존재가 되어갔다. DC는 훨씬 신화적이고 판타지적이었던 반면에 마블의 히어로들은 자신들의 힘과 능력에 대해 회의하면서 이에 맞서는 모습을 그렸다. 미국 코믹스 세계관의 배경이 되는 도시를 보면 이 판타지와 현실의 차이를 볼 수 있다. DC 세계관의 배경은 메트로폴리스나 고담시처럼 가상의 도시인 한편 마블 세계의 배경은 뉴욕 ,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등 실제 도시이다.

케네디 암살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마블의 스탠리와 잭 커비는 그들의 코믹스 세계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선전용 슈퍼히어로 캡틴 아메리카를 얼음에서 녹여버리고 부활시켰다. 캡틴은 그 당시 60년대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대통령이 암살당한 세상이 얼마나 부당하고 적응할 수 없는 상황인지 보여주기 위해 부활한 것이다. 평등권 운동이 이슈가 되자 마블은 첫 흑인 슈퍼히어로 블랙 팬서와 루크 케이지를 탄생시켰다. 마블은 더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이 먹어가는 독자들은 새로운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을 지지하게 되었다. 자신감 넘쳤던 기존의 히어로와 달리 스파이더맨은 슈퍼히어로 인생 외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피터 파커는 여자 문제, 학교 문제, 친구 문제를 안고 아픈 이모와 삼촌과 같이 사는 평범한 10대 소년이었다. 스탠 리가 스파이더맨을 어떻게 탄생시켰는지에 대한 인터뷰에서 피터 파커에 대해 “그는 어리둥절하고, 자신없고, 서툴고, 어색한 너드(nerd)여야 됐다. 그는 10대의 나 같은 루저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스파이더맨은 슈퍼맨 이후 가장 인기 많은 히어로가 되었다.

마블은 그 당시 우주 과학 발전을 비추는 판타스틱 포를 탄생시켰고, 헐크는 미군들에게 쫓기는, 감마 방사능의 영향을 받은 과학자였으며 핵폭탄, 냉전시대, 반베트남전쟁 감정을 보여준 캐릭터였다. 마블이 실험을 하고 있었을 때 DC는 유명한 슈퍼맨, 원더우먼, 그린랜턴의 인기와 배트맨 TV쇼와 굿즈들을 통해 상업적 성공을 즐겼다.

히어로들의 변화

1970년대에는 비조직 범죄, 마약 문제,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 등이 있었다. 슈퍼히어로들은 불쾌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었고 그전에 있던 이상주의는 사라졌다. 조금 유치했던,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던 DC에서 깊이 있는 스토리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DC의 그린 애로우와 마블의 스파이더맨은 마약 문제를 건드렸다. 슈퍼히어로들은 더 폭력적이고 치열한 문제들에 맞닥뜨렸다. 코믹스의 세계관에서 더 많은 죽음들이 발생했다. 스파이더맨의 여자친구인 그웬 스테이시는 목이 부러져 죽었고 정의를 위해서 살인을 하는 퍼니셔는 데어데블의 악당이 되어버렸다. 울버린은 영웅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고 슈퍼맨과는 상당히 차이나는 도덕성을 지녔다. 토니 스타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슈퍼맨의 숙적인 렉스 루터는 전에는 미친 과학자로 나왔지만 이제는 악한 기업체 간부와 정치인으로 재해석되었다. 흑인, 동양인, 동성애자, 왕따 같은 소수자에게, 다수와는 다른 돌연변이인 엑스맨은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헐크와 원더우먼이 등장하는 TV쇼들은 여전히 큰 성공을 누렸다. 그 시절 슈퍼맨 영화들은 현재의 슈퍼히어로영화들의 길을 터주었다. 히어로를 다루는 TV쇼나 영화가 만화책들처럼 진지한 줄거리를 가지기엔 시간이 더 걸렸다.

1980년대 레이건 시대의 애국심에 대한 환멸로 등장한 두개의 DC 스토리는 시장에 혁신을 일으켰다. 프랭크 밀러의 <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앨런 무어의 <왓치맨>이 바로 그것이다. <다크 나이트 리턴즈>는 늙고, 망가지고, 지친, 은퇴한 배트맨의 모습을 보여준다. 배트맨의 재해석에 충격을 먹은 팬들은 밀러가 배트맨을 파시스트로 만들어버렸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밀러는 “배트맨이 파시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정치 공부를 더 해야 한다. 배트맨은 오히려 자유의지론자다. 파시스트들은 남에게 어떻게 살아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배트맨은 단지 범죄자들을 보고 멈추라고 할 뿐이다”라고 말했다.<왓치맨>에서는 슈퍼히어로들이 보통 인간보다도 더 결점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국가들이 핵무기를 갖고 있는 시기, 슈퍼히어로의 필요성에 대해 지적한다. 두 이야기는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것이 정신적으로 어떤 영향을 주고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준다. 마스크를 쓰고 세계를 구원한다고 다짐한 사람이 결코 정신적으로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슈퍼히어로의 도덕성과 목적을 의심하는 계기가 된다.

어두운 컨셉을 따라 워너브러더스의 자회사가 된 DC는 강렬하고 고딕적인 느낌으로 표현된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들을 개봉한다. 90년대 들어 부도 위기에 처한 마블은 전도유망한 엑스맨과 판타스틱 포의 저작권을 이십세기 폭스에 넘기고 스파이더맨을 소니에 넘긴다. 팀 버튼의 배트맨 영화와 달리 마블 영화들은(엑스맨, 스파이더맨 등) 만화책 내용과 멀지 않고 부담없는 액션영화로 성공할 수 있었다.

90년대 중반 조엘 슈마허의 배트맨 영화들은 지나치게 만화 같았고(유치했고) 작품적으로도 혹평을 받았다. 그 당시까지는 인기가 많았던 배트맨의 굉장히 어두운 시기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예전에는 마블이 현실적인 스토리를 겪는 슈퍼히어로를 만들었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의 <다크 나이트> 3부작으로 이후 DC와 마블의 현실과 판타지의 역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스파이더맨 영화들이 단순한 선악 대결을 보여주고 있는 시기에 놀란이 해석한 배트맨은 9•11 테러 이후의 세계에 적절한, 어둡고 도덕적으로 애매한 인물로 재발견되었다. 배트맨의 선제적 행동의 철학은 부시 정부의 중동 지역 외교정책을 반영했다. 놀란은 “우리의 두려움에 대해서 솔직해지자면, 9•11 테러 이후 미국 대도시를 배경으로 액션영화를 찍으면서 테러에 대한 신념과 직면하게 되었다. 영화감독으로서는 관객이 거리를 두고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를 만드는 데 책임을 느끼면서도 엔터테이너로서는 나 자신의 두려움에 대해 솔직해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맨 오브 스틸>도 이런 현실적인 컨셉을 장착하면서 슈퍼맨의 원초적인 이상주의는 많이 없어졌다.

진지 vs 유머

DC는 심각한 (솔직히 너무 심각한)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반면 마블은 작품마다 이스터에그, 쿠키영상 그리고 유머를 동원해 팬들의 다음 편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을 사고 있다. 이제야 마블의 이러한 성공 전략을 깨달은 DC는 마블의 공식을 써서 이번 배트맨과 슈퍼맨 영화로 자기들의 시네마틱 세계를 시작하고자 한다. 필자의 생각에 마블의 장점은 이 치밀한 계획력에 있으며 DC의 매력은 악당에 있는 것 같다. 저스티스 리그를 파괴하려고 조커와 렉스 루터와 다크사이드가 힘을 합치고 서로 배신하는 모습이 영화에 담기면 정말 흥미로울 것이다. 지금 두 영화의 세계관을 보면 마블의 타노스와 토르, DC의 슈퍼맨의 크립톤을 통해서 우주와 연관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나타났다시피 우주 스토리들은 지구와 연관 없이 편하게 우주에서 스토리를 시작하고 마무리하지만 DC 코믹스의 우주와 관련된 이야기들은 언젠간 그 클라이맥스를 지구에서 진행할 것이다. DC가 과연 마블을 따라 우주에서의 전쟁을 보여줄지 궁금하다.

출판 매체에선 초기에 DC가 기준을 세웠고 그 뒤에 진보적인 마블이 그 기준을 재정비했다. 이어서 80년대에 DC는 어두운 <다크 나이트 리턴즈> 만화 등을 통해서 그 기준을 또 개조하도록 강요받으며 코믹스를 잊고 있던 독자들을 탈환하였다. 여기서 데자뷔 현상이 드러난다. 영화와 TV매체에서도 슈퍼맨과 배트맨을 통해 DC는 초기 기준이 된 걸 즐겼다. 그러나 20세기 말, 21세기 초 마블이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나타나서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고, 이제 DC는 80년대처럼 어둡고 현실적인 그들만의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대답하고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DC와 마블은 경쟁을 통해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슈퍼히어로 대결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저스티스 리그의 시작>과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가 두달 간격으로 개봉되는 걸 봐도 놀랍지 않다. 블루 스웨이드의 팝송 <Hooked on a Feeling>이 나오는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예고편의 성공에, DC는 <수어사이드 스쿼드> 예고편에 흐르는 퀸의 <Bohemian Rhapsody>로 대응했다.

프랭크 밀러와 그랜트 모리슨 같은 대단한 작가들도 회사를 가리지 않고 이 두 회사를 위해서 굉장히 기막힌 스토리를 썼다. 그리고 배트맨과 울버린이 한 캐릭터로 재해석되는 DC/마블 크로스오버 스토리라인도 가끔식 등장한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이들 두 회사가 대결 상대라기보다는 공생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은 경쟁자라기보다는 서로 의지하는 형제 같은 존재다. 형제도 친근하고 공감할 수 있는 형제가 있고, 롤모델이나 우상 같은 형제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가끔식 이들이 역할을 바꾸기도 한다. 두 회사는 이렇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우리는 즐기면 된다.

글 시드(Syd) 인디영화 감독, 영화비즈니스전문아카데미 로카 ‘슈퍼히어로의 모든 것’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