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섬세한 마음 1000%
2016-04-06
글 : 윤혜지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A-1픽처스

한 문장으로도 충분하다. 설레게 하거나 울게 만드는 데는. A-1픽처스(에이원픽처스)의 작품들은 다 그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2011), <4월은 너의 거짓말>(2014),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2015) 등 제목에서부터 특유의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A-1픽처스 애니메이션의 특징은 깨지기 쉬운 소년, 소녀의 유리 같은 마음을 아련하고 서정적인 작화로 연출해낸다는 것이다.

A-1픽처스는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인 애니플렉스에 속해 있으며 감독, 작가, 애니메이터를 전속으로 두지 않고 대체로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여러 회사와 협업하는 시스템을 고수한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은 자연히 소니뮤직에서 사운드트랙 음반을 만들고, 모회사인 소니에서 게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노래하는 왕자님 진심 LOVE 1000%> 시리즈나 <토가이누의 피>(2010)처럼 타사의 게임을 원작으로 애니메이션 제작만 하는 경우도 있다. 전속 제작진이 없기에 일관된 작풍이 없지만 대체로 제작진의 성향이나 작품 분위기에 따라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화를 하기 때문에 ‘제2의 쿄애니’라는 별칭도 있었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 <아이돌 마스터>(2011), <4월은 너의 거짓말>,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나만이 없는 거리>(2016)가 특히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다만 최근 몇년 사이엔 졸속으로 만들어진 작품도 꽤 된다. 애니메이션 <토가이누의 피>가 대표적 사례다. 원작은 신인 작가 후치이 가부라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완성도 높은 여성향 BL(Boys Love)게임이었다. 하지만 최대한 다양한 연령대가 시청 가능해야 하는 TV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데 있어선 청소년 관람불가의 성적 표현, 음울하기 그지없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액션 연출상의 강도 높은 폭력성이 문제가 됐다. 당연히 수위 표현에 제한이 많았고 부족한 인력과 제작비 탓에 작화와 스토리 훼손이 심각했다. 하지만 대개는 함정 없이 두루 수준이 높은 편으로, 지난해 일본에서 공개된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3월30일 국내에도 개봉한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감독, 작가, 캐릭터 디자이너가 그대로 다시 뭉쳐 화제를 모았고 성우계의 라이징 스타 미나세 이노리가 주인공 목소리 연기를 맡아 귀여움을 더했다. 오리지널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서는 미야자키 하야오, 오토모 가쓰히로, 호소다 마모루에 이어 네 번째로 극장 수익 10억엔을 돌파했을 정도로 크게 흥행한 바 있고 올해 열린 제39회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 애니메이션 작품상 수상작이니 더욱 기대해볼 만하겠다.

흑역사의 시간, 2010년

2010년은 A-1픽처스로선 여러모로 힘든 시기였다. A-1 망작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흑집사 2기>와 <토가이누의 피> 이전, 비운의 오리지널 시리즈까지 모두 같은 해에 나온 것. <TV도쿄>와 애니플렉스의 협력 프로젝트인 ‘아니메노치카라’(アニメノチカラ)다. ‘애니메이션의 힘을 끌어올린다’는 의미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에 강한 A-1픽처스답게 작화, 음악 등의 기본적인 퀄리티는 훌륭했지만 판매량이 너무나 저조해 세 번째 작품을 끝으로 시리즈를 매듭지었다. 첫 작품 <하늘의 소리>(2010)는 군대를 배경으로 한 미소녀 소동극으로 비현실적인 군 생활 묘사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두 번째 작품 <섬광의 나이트레이드>(2010)는 일제 침략 당시 중국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는 초능력자 요원들을 그렸다. 냉정하고 진지한 사관을 유지한 의외의 수작이었으나 세 작품 중 가장 낮은 판매 성적을 냈다. 마지막 작품 <세기말 오컬트 학원>(2010)은 미래에서 온 남자와 학원을 없애버리고 싶어 하는 소녀가 원내에서 발생한 기이한 현상을 해결해나간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울한 2010년이 지나고 2011년 상반기, A-1픽처스는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로 기사회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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