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칸 스페셜] “신자유주의의 이상은 인간성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 켄 로치 감독 인터뷰
2016-05-30
글 : 김성훈
황금종려상 수상작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 리뷰와 켄 로치 감독
켄 로치 감독.

“우리는 희망의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또 그게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 카메라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쥔, 여든살 노거장의 양손은 당당하고 빛났다. 켄 로치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2006)으로 제59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두 번째 수상이다. 그에게 금색 트로피를 다시 안겨준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인간성 회복이 절실하다고 주장하고, 인간을 인간답지 못한 존재로 전락시킨 경직된 영국 관료주의를 강하게 비판한 작품이다.

대니얼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뒤 혼자 살아가는 목수다. 심장에 이상이 있어 갑작스럽게 일을 쉬게 된 그는 실업 급여를 받기 위해 관공서를 찾는다. 하지만 관공서는 “쉬는 동안 구직 활동을 했다는 증거 서류를, 그것도 온라인에 있는 양식을 다운받아 작성한 뒤 제출해야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스마트폰 대신 전화를 사용하는 그에게 인터넷 사용은 아무래도 무리다. 일처리가 비효율적이고, 행정 편의적인 까닭에 대니얼 블레이크는 매번 만족스러운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를 만난다. 정책의 배려가 절실한 두 사람에게 관료주의의 벽은 높기만 하다.

켄 로치 감독이 영국 관료주의에 일침을 날린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50년 전 연출했던 <캐시, 집에 오다> 역시 비효율적인 복지 정책 때문에 한 가정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낸 바 있다. 5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난 지금, 그가 비슷한 메시지를 다시 던지는 건 약자를 배려해야 하는 국가 정책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전세계에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면서 자본주의가 천박해진 지금, 국가의 손길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임을 감안하면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가 던지는 메시지는 유효하다.

(*이 인터뷰는 황금종려상 수상 뒤 진행된 기자회견과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 기자시사 직후 열린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켄 로치의 대답을 정리한 것입니다.)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두 번째 황금종려상 수상이다.

=그때와 같은 팀이다(<아이, 대니얼 블레이크>의 레베카 오브라이언 프로듀서, 조지 펜턴 음악감독, 퍼거스 클레그 미술감독, 조너선 모리스 편집감독은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도 참여했다.-편집자). 우리는 작은 갱단 같다. (웃음)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를 준비하면서 그들과 다시 일하고 싶었다.

-<지미스 홀>(2014)을 찍고 난 뒤 다음 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왜 다시 만들었나.

=다시 만들어서 죄송하다. (일동 폭소) 레베카(오브라이언 프로듀서)가 계속 일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옆에 앉아 있던 레베카 오브라이언이 “아니지. 그가 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말한 건 대작을 안 만들겠다는 뜻이지 영화를 그만두겠다고 한 말은 아니었다”고 말하자) 언제나 행운이 찾아오길 바란다. 나처럼 나이가 많이 들면 내일 해가 다시 떠오르기를 바란다.

-최근 유럽을 포함한 세계경제 위기가 이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 어떤 계기가 되었나.

=최근의 경제 상황은 개인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며, 누군인지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그걸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니까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작은 현실을 담고 싶었다.

-유럽연합의 신자유주의도 같은 문제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유럽연합도 신자유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이상은 인간성에 상처를 입히고 있다. 소득 불균형은 갈수록 커져가고, 많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이 영화는 그런 많은 현상 중 한 사람의 이야기에 불과하다.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 블레이크의 사연에 공감하고,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고, 연대했으면 좋겠다.

-50년 전에 연출했던 <캐시, 집에 오다>로 에 출연해 홈리스 문제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지 않나. 50년 전에 내놓았던 작품과 비슷한 주제의 영화를 만든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50년이 지나도 경제 문제는 여전히 충격적이다.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문제다. 실업을 포함한 각종 경제 문제는 우리 삶을 지속하는 데 어떤 냉혹함이 있다. 가난도, 실업도 (경제적인) 약자의 잘못이 아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영국의 실업자가 2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곱절이 넘는 400만명 가까이 된다. 그러면서 사회적 약자, 장애인의 자살률은 높아지고 있다. 어떤 직업군에는 자살을 방지하는 지침서가 따로 있을 정도다. 유럽 전역의 많은 사람들에게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게 무척 슬프다. 그래서 충격적이라는 말이다.

-대니얼 블레이크 역의 데이브 존스와 싱글맘 역의 헤일리 스콰이어는 어떻게 캐스팅했나.

=데이브 존스는 코미디언이다. 그가 한 연기를 동영상으로 보고 만나자고 요청했다. 헤일리는 드라마 스쿨에 다니면서 글을 쓰는 친구인데, 그녀의 에이전시를 통해 처음 만났다. 15분 정도 대화를 나누다가 직업을 찾는 싱글맘에 어울릴 것 같아 캐스팅했다.

-영화에는 비전문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특히 대니얼 블레이크와 싱글맘이 함께 무료 급식소에 음식을 받으러 가는 시퀀스나 대니얼 블레이크가 복지 혜택을 받으러 가는 관공서 시퀀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배우가 아니다. 그들로부터 좋은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하하하. 무척 쉽다. 배우들이 그렇듯이 일반인도 풍부한 상상력과 연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촬영 전에 그들이 해야 할 연기를 아주 자세하게 적은 대본을 준다. 비전문배우들은 이야기에 현실감을 불어넣고, 영화는 그들 덕분에 리얼리티를 쌓아갈 수 있다.

-영화의 배경인 영국 뉴캐슬은 어떤 도시인가.

=좋은 도시다. 오랜 역사를 지녔고, 오랫동안 많은 노동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운 도시다. 노동자의 도시 맨체스터처럼 뉴캐슬 역시 휴머니티와 정체성을 가진 도시라 할 수 있다.

-갈수록 영화를 제작하는 게 힘든 환경이다.

=유럽연합이 펀딩을 조성해 재능 있는 감독을 발굴하고, 그들에게 영화를 만들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영국 <가디언> 기자가 손을 번쩍 들며) 영국 정치가 진보하고 있는 것 같나.

=유럽 전역의 시각에서 봤을 때 보편적인 현상이 몇 있다. 제러미 코빈 당수는 영국 노동당에서 최고인 것 같다. 고든 브라운(노동당 출신의 영국 전 총리)과 토니 블레어(역시 노동당 출신의 영국 전 총리)가 비즈니스를 잘 이해하는 사람이었다면, 코빈은 노동자를 잘 이해한다. 문제는 의회의 다른 당들이다. 유럽의 리더들은 사회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현재의 경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정치 구조가 (약자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거다. 코빈과 그의 친구들은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등 유럽의 여러 국가들과 힘을 합쳐 진짜 좌파의 문제의식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유럽 전체가 사람을 먼저 바라보고, 사람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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