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칸 스페셜]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에 대한 해독제가 되길” - <패터슨> 짐 자무시 감독 인터뷰
2016-05-30
글 : 장영엽 (편집장)
<패터슨>

짐 자무시의 신작 <패터슨>은 아마 올해의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상영된 영화 중에서 가장 고요한 영화일 것이다. 시 쓰는 버스 운전기사의 일주일을 조명하는 이 작품은 매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일상의 변화와 리듬감에 주목한다. 드라마틱한 사건도 반전도 없지만, 그 어떤 경쟁작보다 강력한 여진을 남기는 이 영화는 간결함과 디테일이 지닌 힘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지난 5월17일, 짐 자무시를 만나 <패터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 마치 그의 전작 <커피와 담배> 속 주인공처럼 커피잔을 들고 나타난 짐 자무시는 장황하지 않으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유머로 기자들을 종종 웃게 만들었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이 장소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 흥미로웠다. 패터슨은 뉴욕에서 20분 거리에 있는 도시다. 멕시칸, 모슬렘, 흑인, 아시아인 등 정말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뉴욕과 무척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아무도 이곳에 대해 얘기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 신기했다. 그래서 이 도시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다.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사는 패터슨이 주인공이고, 애덤 드라이버가 버스 운전사(driver)를 연기한다. 이건 우연인가.

=의도적인 설정은 아니었다. 내가 애덤 드라이버를 캐스팅한 건 시나리오를 다 쓴 뒤의 일이니까. <프란시스 하>와 <인사이드 르윈> 속 그의 연기를 인상깊게 보았기에 함께 일했으면 했다. 그저 우연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이라는 개념은 이 영화에서 무척 중요하다. <패터슨>은 한 남자의 되풀이되는 일상을 조명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시’라는 예술 형식과 삶의 반복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나.

=나는 반복을 사랑한다. 더 정확히는 무엇인가 반복되는 가운데서 일어나는 변주에 흥미가 있다. 앤디 워홀의 프린트나 바흐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도 그래서다. <패터슨>을 구상하며 나는 이 영화의 구조를 일상의 메타포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우리가 사는 하루하루는 그 전날의 변주이지 않나.

-이 영화에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저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이유는 뭔가.

=간결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강렬한 드라마나 충돌, 액션이 포함되지 않은 그런 영화 말이다. 여자가 희생되고, 자극적인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에 대한 해독제 같은 작품이 되었으면 했다.

-드라마틱한 이야기에는 전혀 안 끌리나.

=물론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흥미로운 영화도 있지. 하지만 그건 내가 감독으로서 지향하는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다. 애덤 드라이버를 캐스팅했다고 하니 사람들이 나에게 묻더라. <스타워즈> 시리즈를 봤냐고. 안 봤다고 했다. 다스 베이더나 R2D2를 모를 수도 있지, 내가 꼭 그것에 대해 알아야 하나? (웃음) 스스로의 선택으로 그 영화를 보지 않은 것뿐이다. 나는 고요함과 디테일에 끌린다. 영화 속 패터슨이 일상의 사소한 디테일을 관찰하는 사람이듯, 나 역시 마찬가지다.

-패터슨과 그의 아내 로라는 상반되는 기질을 지녔다. 패터슨은 굉장히 규칙적인 사람이고, 늘 꿈을 꾸는 것처럼 보인다. 로라는 다소 즉흥적인 사람이다. 갑자기 집 안 인테리어를 바꾸거나, 기타를 주문하거나. 이 두 사람의 대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나.

=로라는 몸을 잘 쓰는 사람이다. 집의 이곳저곳을 칠하거나 컵케이크를 만드는 등 그녀는 끊임없이 몸을 쓰는 사람이고 그게 로라가 자신의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패터슨은 늘 부유하는 느낌이다. 심지어 그는 자신이 아내에게 무엇을 말했는지조차 종종 잊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삶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고, 그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며, 상대방에게 변화를 요구하지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너무도 다르지만 그 차이를 인정하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패터슨과 로라가 키우는 개, 마빈이 굉장한 연기를 선보인다. 당신은 ‘리 마빈의 아들들’(The Sons of Lee Marvin•미국 배우 리 마빈을 조금이라도 닮아야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이라는 클럽도 만들지 않았나. (웃음) 혹시 마빈이라는 이름은 그로부터 비롯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마빈이라는 개의 원래 이름은 넬리고, 넬리는 암컷인데 수컷을 연기한 것이니 트랜스젠더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웃음) 정식으로 연기 훈련을 받지 않은 개였는데도 연기 훈련을 받은 <브로큰 플라워>의 고양이보다 훨씬 더 연기를 잘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넬리는 영화 촬영 두달 뒤 세상을 떠났다. (기자들 탄식) 암이었다는데 영화를 찍었을 때만 하더라도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를 잃어 우리 모두 슬퍼했다.(넬리는 <패터슨>으로 올해 칸영화제에서 팜 도그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의 가장 극적인 순간에도, 패터슨은 화를 내지 않는다. 영화의 후반부 클라이맥스 장면(스포일러이기에 자세한 내용은 생략)에 대해 더 말해줄 수 있나.

=그 장면이야말로 패터슨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배우 애덤 드라이버의 즉흥성이 반영된 매우 아름다운 장면이다. 그의 섬세한 세계가 무너질 때, 패터슨이 화를 푸는 방법은 그저 그 자신을 세계와 격리시키는 것이다. 이 장면을 편집하며 어린 시절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마음을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상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건 패터슨도 그렇고, 나도 마찬가지다.

-최근 아마존과 넷플릭스 등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업체들이 영화 투자•배급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건 내가 언젠가 불가피하게 직면해야 할 사악한 매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데이비드 린치가 그의 영화를 아이폰으로 보는 사람을 보고 무척 화를 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나 역시 거기에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다. 하지만 우리는 대형 스크린에서 영화를 보는 나이 든 사람들이고, 변화하는 영화산업의 흐름을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우리집 애들이 나보고 짐도 많은데 왜 레코드판이랑 CD, DVD를 다 모으냐고 하더라. 아이팟에 넣으면 간편하다고. 그래서 그게 내가 좋아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준 적이 있다. (웃음) 이 문제로 싸울 생각은 없다. 도구는 도구일 뿐이고, 연필로 일하든 노트북으로 일하든 작업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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