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칸 스페셜] “우리는 애도하고 위로받을 장소를 상실하고 있다” -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인터뷰
2016-05-30
글 : 김혜리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의 2014년작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서 가장 매혹적인 사건은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불가사의한 ‘실종’이었다. 줄리엣 비노쉬와 산길을 걷던 그녀는 먼저 언덕을 넘어온 카메라가 기다려도 프레임 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특수효과도 컷도 없이 사라져버린 이 인물에 대해 극중 누구도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이 공동(空洞)은 설명되지 않음으로써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전체를 다른 차원으로 태연히 열어젖힌다. 감독의 신작 <퍼스널 쇼퍼>에서 크리스틴 스튜어트는 반대로 이승에 남은 인물 모린을 연기한다. 죽은 쌍둥이 오빠가 망자의 세계로부터 타전할 신호를 기다리는 그녀의 직업은, 유명 모델을 대리해 옷과 장신구를 사들이는 퍼스널 쇼퍼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매니저 역에 이어 다시 어시스턴트 역인 셈이다. 모린은 종종 스타의 옷을 걸치고 거울을 바라보고 타국의 남자 친구와는 페이스타임으로 대화한다. 요컨대 그녀는 보이는 세계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마침내 신호가 온다. 익명의 문자 메시지가 모린을 휘두르고 엑토플라즈마가 나타난다. 말하자면 <퍼스널 쇼퍼>는 유령영화다. 전기물 <카를로스>, SF스릴러 <데몬 러버>, 코스튬 드라마 <감정의 운명> 등 다채로운 장르를 섭렵한 아사야스인 만큼 기절초풍할 일은 아니지만 어느 때보다 큰 리스크를 감수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의 발렌틴(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산책 중 홀연히 사라져 다시 이야기 속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퍼스널 쇼퍼>를 보고 나니 발렌틴을 유령으로 생각한 적이 있는지 궁금하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퍼스널 쇼퍼>를 만들게 한 영감의 일부가 들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판타지의 저류가 있었다면, <퍼스널 쇼퍼>는 그런 요소를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시도였다. 전작에는 초자연과의 접점만 있었고, 이번에는 초자연적 가능성을 구체화한 요소를 넣었다.

-혹시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 Up)에서도 영감을 받았는지? 비슷한 점이 보인다.

=물론이다. <퍼스널 쇼퍼>의 시나리오를 다 썼을 무렵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안토니오니 회고전이 열렸다. 10대 이후 본 적 없던 <욕망>을 다시 보고 소스라쳤다. 맙소사, 내가 방금 쓴 이야기잖아! (웃음) <욕망>의 사진가도 모린처럼 패션 산업 주변에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아웃사이더다. 그리고 살인을 목격한 사건이 마치 기상알람처럼 그의 삶에 리얼리티를 끌어들인다.

-<퍼스널 쇼퍼>가 그린 패션 세계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 비롯됐나.

=최근 나는 시대극 <카를로스>와 <5월 이후>를 만들었다.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도 현대물이지만 일종의 비눗방울 안에 들어 있는 이야기다. 이번에는 동시대 캐릭터가 동시대 파리에서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내게 현대 세계는, 팽창하는 물질주의와 그것을 해독(解毒)하려는 정신성 사이의 긴장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패션 산업은 현대를 재현하는 데에 유용하다. 거기에는 소외와 매혹이 함께 있고 엘레강스와 미를 포함하되 해악의 일부이기도 하다.

-유령과 모바일 라이프를 동시에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단지 내가 경험한 현대의 삶을 재현하려고 했다. 삶은 리얼한 물질세계와 우리가 상상으로 살아가는 추상세계로 이뤄져 있다. 후자는 유령의 세계이고 우리 모두는 유령을 갖고 있다. 스마트폰을 비롯한 현대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이 두 세계를 연결한다. <퍼스널 쇼퍼>는 끊임없이 다양한 레벨의 리얼리티를 마주하는 우리의 현실을 말하는 영화다.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여러 리얼리티들을 분명히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퍼스널 쇼퍼>는 영혼의 존재를 믿고 우리가 그들과 교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런 입장을 취했나.

=애도라는 추상적 개념에 형상을 부여하고 싶었다. 누군가를 상실하고 애도할 때 우리는 커뮤니케이션을 멈추지 않는다. 죽은 자를 생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대화를 계속한다. 상실한 사람의 목소리는 우리 안에 머문다. 그러나 이것은 대부분 내적인 과정이라 보이지 않는다. <퍼스널 쇼퍼>는 장르 요소를 곳곳에 흩뿌려 거기에 이미지를 부여하고 다른 세계와 포털의 존재를 암시한다. 그럼으로써 관객에게 모린의 희망과 공포를 공유하게 만들고 싶었다.

-매우 현실적인 연기 스타일을 가진 배우인 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영매인 모린 역에 캐스팅한 이유가 뭔가.

=정확히 그 점이 이유다. 크리스틴은 현실주의적이고 실감나는 단단한 배우다. <퍼스널 쇼퍼>의 모린도 계속 관념에 질문을 던지고 영매로서 자기 능력을 회의하는 인물이다. 몽상가형 인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믿게 될 때 리얼리티가 크게 느껴진다.

-당신은 아시아영화 전문가로도 알려져 있다. 혹시 <퍼스널 쇼퍼>를 만들면서 다시 돌아가서 본 아시아 귀신영화가 있나.

=특정 작품은 없지만, 죽음을 바라보는 동양적 시선에 영향을 받았다. 아시아에서는 죽은 자의 세계와 산 자의 세계가 연결돼 있다고 믿지만 서구에서는 그 끈이 단절되는 경향이 있다.

-죽은 자들과의 연계가 우리에게 왜 필요하다고 보는가.

=역사적으로 대다수 문화에는 죽음을 취급하는 영역이 있다. 종교라고도 불리고 신비주의라고도 불린다. 뭐라 부르건 그것은 필요할 때 찾아가 물질계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키고 자아보다 거대한 무엇과의 연결을 느낄 수 있는 장소다. 오늘날 사람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물질주의적인 무신론의 세계에서 산다.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모르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인간의 근본적 필요 중 하나인 애도하고 위로받을 장소를 우리가 상실하고 있다는 점이다.

-<퍼스널 쇼퍼>의 중반부는 문자 메시지가 서사와 액션을 이끌어간다. 영화를 평평하게 만들 수 있는, 연출자로서 위험한 선택 아닌가.

=위험하다. 하지만 리스크를 무릅쓰는 것이야말로 영화를 만드는 재미이고 흥분이다. 그게 없다면 지루해진다.

-혹시 문자 메시지로 이야기를 끌어감으로써 무의미하게 스쳐가는 코멘트들에 대한 우리의 강박적 집착을 지적하고자 했나.

=비판적 의도는 아니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문자 메시지라는 포맷에 사로잡혀왔다. 오늘날 이메일은 산문이고 문자 메시지는 시와 같다. 아주 적은 수의 단어를 써야 하기 때문에 절제해서 말을 고르고 단어와 구두점의 의미를 새롭게 자각하게 만든다. 우리는 거기 중독되고 최면에 걸려 있다. 심지어 문자를 기다릴 때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은 텅 빈 스크린에 홀려 있다. 이 위력을 영화로 옮겨내는 것이 나의 과제였다. 하지만 다시는 안 하련다. 너무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영화제 며칠 전까지 극중 문자 메시지의 타이밍, 포맷, 프레임 수 조정을 거듭해서 스탭들을 미치게 만들었다.

-<퍼스널 쇼퍼>를 시작으로 호러 장르를 더 연구할 계획인가. (웃음)

=앞으로 더 많은 호러를 만들려고, 라고 할 리가 없잖나. (박장대소) 이 장르에 야심이 전혀 없다. 하지만 만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