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칸 스페셜] 제69회 칸국제영화제 수상 결과, 논란의 이유를 말한다
2016-05-30
글 : 장영엽 (편집장)
취재지원 : 최현정 (파리 통신원)
<아쿠아리우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수상작

황금종려상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 켄 로치 감독
심사위원 대상 <단지 세상의 끝> 자비에 돌란 감독
감독상 <졸업> 크리스티안 문주 감독 <퍼스널 쇼퍼>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
각본상 <세일즈맨>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
심사위원상 <아메리칸 허니> 안드레아 아놀드 감독
여우주연상 <마 로사> 재클린 호세
남우주연상 <세일즈맨> 샤하브 호세이니
벌컨상 <아가씨> 류성희 미술감독
명예 황금종려상 장 피에르 레오

광란의 파티도, 짓궂은 악동도 없었다. 테러의 위협이 깊은 그늘을 드리운 제69회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는 예년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했다. 하지만 이번 영화제의 가장 충격적인 ‘도발’은 시상식이 열리는 마지막 날에 벌어졌다. 켄 로치의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자비에 돌란이 <단지 세상의 끝>으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순간은 올해 영화제의 가장 드라마틱한 반전으로 기억될 듯하다. 조지 밀러와 여덟 심사위원들의 ‘서프라이즈’ 발표는 누구를 웃고, 누구를 울게 만들었을까. 5월22일 뤼미에르 극장에서 열린 칸영화제 시상식이 남긴 것들을 전한다.

더불어 올해의 칸은 다양한 부문에 진출한 한국영화의 저력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해줬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주요 부문 수상을 놓쳤지만(그렇다 해도 너무 상심할 일은 아니다. 올해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대부분의 좋은 영화들이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비껴갔으니까) 류성희 미술감독이 그해 가장 뛰어난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 아티스트에게 수여되는 벌컨상을 받았다. 비경쟁부문에 초청된 나홍진 감독의 <곡성>과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된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 또한 외신의 주목을 받았다. <씨네21>과 해외 평론가들이 참여한 ‘올해의 베스트5&워스트1’에서 그 반응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지면에는 <씨네21>이 지지하는 올해의 경쟁부문 감독들과의 만남도 함께 마련되어 있다. 이 리스트에는 칸이 오랫동안 주목해왔던 베테랑 감독과 아직 국제무대에서 낯선 신예감독의 이름이 뒤섞여 있으나 이들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통해 새로운 시도와 모험을 계속해오고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과의 대화가 올해의 칸을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더욱 풍성한 논의의 장으로 기능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인터뷰를 지면에 옮긴다.

제69회 칸영화제의 시상식이 예정되어 있던 5월22일 저녁, 뤼미에르 극장의 레드카펫에서는 그린데이의 <부서진 꿈들의 대로>(Boulevard of Broken Dreams)가 울려퍼졌다. 시상식 중계를 기다리며 레드카펫 풍경을 지켜보던 기자들은 이 기막힌 선곡에 대해 재빠르게 반응했다. “아마 이건 우리가 지켜보게 될 시상식에 대한 최고의 예언이 아닌가 싶다”는 한 스페인 기자의 우스갯소리를 SNS에서 읽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그린데이의 노래가 암시한 예언은 현실이 됐다. 올해 경쟁부문의 영화를 관람한 수많은 이들이 예견했던 꿈들은 산산조각이 났다. 그중에는 올해 영화제의 가장 강력한 황금종려상 후보작으로 거론되던 마렌 아데의 <토니 어드만>도 있었다. 자신이 지지했던 영화가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받는 극적인 순간을 기대했던 전세계 수많은 기자와 평론가들은 씁쓸한 마음을 안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됐다. 조지 밀러가 이끄는 아홉명의 심사위원단이 발표한 수상자 명단이 현지에서 평단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이들의 목록과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제69회 칸영화제는 평단과 심사위원이 지지하는 영화의 온도차가 가장 극심하게 컸던 한해로 기억될 듯하다.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은 대체 왜?

잘 알려진 대로 올해의 황금종려상은 영국의 노장 감독 켄 로치에게 돌아갔다. 2년 전의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다시금 촬영현장으로 복귀한 그는 신작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영국 사회의 불합리한 관료주의를 간결하고 힘 있는 어조로 비판한다. 하지만 켄 로치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예측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거의 없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켄 로치의 영화가 좋지 않아서가 아니라, 올해 경쟁부문의 영화들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만족스러운 라인업이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과 모험 정신,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개성으로 무장한 수많은 경쟁부문의 영화 가운데서 전작과 크게 다르지 않은 형식과 정서를 유지한 켄 로치의 영화는 비교적 평범해 보였고, 영화제 초반부 상영을 마친 뒤 빠르게 잊혀졌다. “켄 로치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다. 그런데 영화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지 않는 영화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이게 바로 켄 로치 영화의, 특히 <아이, 대니얼 블레이크>가 가지는 모순이다. 그는 극단적인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인물에 대한 감정 조절, 캐릭터의 이원론적 분할, 복고적인 TV영화의 템포, 편안한 스토리텔링으로 무장한 아주 보수적인 영화의 형식을 통해 주창한다”는 프랑스 매체 <레쟁록>의 비판에 귀기울여볼 만하다.

그러나 켄 로치의 황금종려상 수상보다 더욱 놀라운 결과는 자비에 돌란의 <단지 세상의 끝>이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다는 데 있었다. 영화제 후반부에 공개된 이 작품은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네온 데몬>, 숀 펜의 <라스트 페이스>와 더불어 평단의 야유와 혹평을 가장 많이 받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올해 영화제의 심사 기준에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해외 언론의 상당수가 자비에 돌란의 심사위원 대상 수상을 지적하고 있다. <버라이어티>의 평론가 오언 글라이버먼은 “칸을 벗어나면 이 영화는 전세계 영화학교에서나 상영될 것이다. 왜 이렇게 찍으면 안 되는지에 대한 전형적인 사례로 언급되기 위해”라는 평을 남겼고, 프랑스 매체 <슬레이트>는 돌란이 수상하던 순간을 “올해의 시상식에서 가장 분노했던” 대목으로 기록했다.

칸과 평단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캐나다 감독 자비에 돌란이 순식간에 기자와 평론가들을 적으로 만든 데에는, 전작에 비해 아쉬운 영화의 만듦새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올해의 영화제에서 보여줬던 그의 태도도 큰 기여를 했다. 돌란은 <가디언>과 가진 인터뷰에서 “<크리드>에 별 다섯개를 주고 <분노의 질주>에 별 네개 반을 주는 사람들이 내 영화 속 마리옹 코티야르가 지루하다고 말하면, 그거야말로 정말 세상의 끝이라고 할 수 있겠다”라며 언론을 깎아내렸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미국 매체 <플레이스트>의 비판적인 리뷰를 읽고는 “이것은 저널리즘이 아니다. 이것은 가십이다”라고 말했고, 이에 <LA 타임스>의 평론가 저스틴 창이 “이것은 영화가 아니다. 이것은 나르시시즘이다”라고 응수하는 일화도 있었다. 테러에 대한 공포와 보안상의 문제로 예년에 비해 차분한 분위기로 치러진 올해의 영화제에서 자비에 돌란은 가장 눈에 띄는 악동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심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는지, 심사위원 대상의 수상자로 호명된 뒤 무대에 올라 흐느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사람들이 내 영화를 잘못 이해했다는 걸 알았다. 내가 정말로 열심히 작업했던 것들. 내 영화의 모든 등장인물, 그들의 사랑, 고통, 복합성, 누군가 이걸 멍청하고 대단치 않은 것으로 치부해버릴 때, 그리고 내 작업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때의 충격과 놀라움이 있었던 거다. 하지만 (기자 시사 이후의) 프리미어에서 이 영화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당신이 평론가를 위해 영화를 만들지 대중을 위해 영화를 만들지 모르겠을 때, 우리 모두는 대중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시상식 무대에서 흘렸던 눈물의 의미에 대해 자비에 돌란은 수상자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덧붙였다.

<단지 세상의 끝>은 죽음을 앞둔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가 12년 만에 가족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의 어머니(나탈리 바예)와 여동생 수잔(레아 세이두)은 루이의 귀환을 반기지만, 형 앙투안(뱅상 카셀)은 가족과 거의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한 동생의 존재가 달갑지 않다. 게다가 익숙지 않은 사람 앞에서 쉽게 낯을 가리는 성격의 형수 카트린(마리옹 코티야르)은 루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자주 당황한다. 이 영화는 자비에 돌란의 세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이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돌란의 개성이자 아쉬운 점으로 지적되어왔던 ‘치기’가 이번 영화에서는 너무 과하다. 지나치게 비장한 음악과 대사는 차갑게 가라앉은 이 영화의 무드를 해치는 결정적인 요소다. 게다가 질적으로 상향평준화된 올해의 경쟁부문 상영작을 관객이 이미 절반 이상 관람한 시점에서 공개된 <단지 세상의 끝>이기에, 흔한 실수마저 더 또렷하게 보였을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엘르>

여성감독들의 존재감은 왜 수상 결과에 반영되지 못했나

<퍼스널 쇼퍼>의 올리비에 아사야스와 <졸업>의 크리스티안 문주가 공동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다는 점, <아메리칸 허니>의 안드레아 아놀드가 심사위원상을 가져갔다는 점에서는 대체로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가장 권위 있는 두개의 상을 수상한 로치와 돌란의 영화보다 형식적으로, 서사적으로, 시각적으로 좀더 먼 곳으로 나아간 듯 보이는 이들 세편의 영화가 더 큰 상을 받았다면 훨씬 흥미로운 시상식이 되었을 거라는 점은 많은 매체에서 지적하는 바다. 특히 <토니 어드만>의 마렌 아데와 더불어 올해의 경쟁부문에서 여성감독의 저력을 보여줬던 안드레아 아놀드가 그녀의 전작 <레드 로드>와 <피쉬 탱크>에 이어 다시 한번 심사위원상에 머물렀다는 점은 올해 시상식의 또 다른 아쉬움으로 남는다. <버라이어티>는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신인 여배우 사샤 레인, 라일리 커의 “정제되지 않은 힘”과 “청춘물에 대한 영화 만들기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린” <아메리칸 허니>의 의의에 대해 언급하며 “올해의 경쟁부문에서 볼 수 있었던 여성들의 엄청난 존재감은 단지 경쟁부문에 초청된 여성감독들의 수(3명)에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했다.

제69회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들이 세계영화계에 전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아직 충분히 탐구되지 못한 여성성과 여성 캐릭터의 무한한 가능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정체성이 불분명한 <슬랙 베이>의 소녀이자 소년, 빌리(라프)부터 여성들의 강력한 연대를 보여주는 <아가씨>의 숙희(김태리)와 히데코(김민희), 독특한 리듬감의 유머를 선보이는 <토니 어드만>의 이네스(산드라 휠러), 남자 형제의 유령으로 짐작되는 초자연적 존재로부터 공포와 호기심을 동시에 느끼는 <퍼스널 쇼퍼>의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 등 다양한 개성과 복합적인 정체성으로 무장한 범상치 않은 여성 캐릭터들이 이처럼 영화의 전면에 공격적으로 나선 경우를 그동안 칸에서 보지 못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족적을 올해의 경쟁부문에 남긴 이는 <아쿠아리우스>(클레베르 멘도사 필류)의 소니아 브라가와 <엘르>(폴 버호벤)의 이자벨 위페르라고 할 만하다.

먼저 브라질 여배우 소니아 브라가가 연기하는 <아쿠아리우스>의 여주인공 클라라는 ‘아쿠아리우스’라 불리는 오래된 아파트에서 가정부와 단둘이 살아가는 미망인이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건축업자가 찾아와 좋은 조건으로 보상을 해줄 테니 아파트를 포기해달라고 말한다. 그 자리에 고급 콘도를 짓겠다는 것이다. 아파트의 모든 입주민들이 떠난 상황에서도 클라라는 끝까지 자신의 추억이 깃든 아파트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건축회사의 은근한 협박이 시작된다.

소니아 브라가의 존재는 <아쿠아리우스>의 가장 훌륭한 질료다. 거의 매 장면에 등장하며 영화 속을 자유롭게 활보하는 그녀는 영화의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데 일조하고, 60대 여성 캐릭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해 보인다. 80년대 브라질영화계의 섹스 심벌이었던 소니아 브라가의 강력한 무기는 타고난 기품과 당당함, 그리고 관능적인 면모다. 이 영화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젊은 시절 유방암으로 가슴 절제수술을 받은 클라라가 살덩이만 남은 자신의 한쪽 가슴을 스스럼없이 노출하는 순간이다. 그녀는 아들뻘의 젊은 남자와 사랑을 나눌 때에도 가슴을 더듬다가 당황한 남자의 손에 다른 쪽 가슴을 쥐어주는 여자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스스로를 잃지 않는 강인한 여인의 초상은 많은 이들이 소니아 브라가를 올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하게 만들었다.

<엘르>의 이자벨 위페르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다. 폴 버호벤의 뮤즈로 돌아온 그녀의 연기는 근작을 통틀어 최고 수준이자 <피아니스트>에서의 존재감에 비할 수 있을 정도다. <엘르>는 충격적인 오프닝 신으로 영화의 포문을 연다. 이자벨 위페르가 연기하는 미셸은 오프닝 크레딧이 채 오르기도 전에 복면을 쓴 괴한에게 강간당하고, 괴한은 유유히 미셸의 집을 떠난다. 중요한 건 그다음 장면이다. 미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강간당할 때 입었던 옷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깨진 접시를 치운다. 그리고 목욕을 하며 다리 사이에서 흐르는 피가 섞인 거품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 어떤 이들은 영화적으로 가장 민감한 소재 중 하나인 성폭행을 이처럼 거침없이 다루는 <엘르>의 방식에 두려움과 혼란을 느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부끄러움은 뭔가를 못하도록 할 만큼 강렬한 감정이 아니”라는 미셸의 말처럼, 그녀에게 더욱 시급한 과제는 타인이 그녀에게 가한 폭력에 수치스러움을 느끼며 침잠하기보다는 매 순간 산재하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히 임하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남자들에게 ‘욕망의 모호한 대상’이 되는 미셸은 그들 각자에게 서로 다른 방식의 수치심과 모욕을 선사함으로써 가해자와 피해자의 권력 관계를 비튼다. <엘르>를 보는 내내 이토록 모험적이고 아슬아슬한 캐릭터를 이자벨 위페르 말고 또 누가 해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카이에 뒤 시네마> 역시 “이처럼 변태성을 탐험하는 작업을 하려면, 기쁨과 창의성을 가지고 (감독과) 저 멀리까지 함께 갈 수 있는 배우가 필요하다. 세상에서 이런 악보에 장단을 맞출 수 있는 배우는 단 한 사람밖에 없다”는 말로 이자벨 위페르의 연기를 극찬했다.

<아쿠아리우스>의 클라라와 <엘르>의 미셸이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남성 중심적인 21세기 시네마에서 제대로 탐구되지 않았던 여성의 욕망과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고민하는 영화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건 마렌 아데의 <토니 어드만>과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등 몇몇 경쟁부문 영화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사례일 것이다. 올해 칸영화제 시상식의 가장 큰 패착은, 이러한 변화의 조짐을 헤아리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버라이어티>의 평론가 가이 로지의 말처럼, “조지 밀러의 심사위원단은 특히 남성주인공들의 시선과 관점에 의해 지배당하는 영화”에 손을 들어줬다는 점에 동의한다. 감독상을 수상한 크리스티안 문주의 <졸업>과 각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세일즈맨>을 그 예로 들 수 있을 거다. 공교롭게도 이 두 영화의 남자주인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존재(<졸업>에서는 딸, <세일즈맨>에서는 아내다)가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는 두려움과 공포심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졸업>과 <세일즈맨>의 주인공들은 또 다른 차원의 윤리적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작품의 만듦새로만 보자면 이 두 작품의 수상은 납득 가능하다. 문주의 영화는 내러티브를 정교하게 구축해나가며 조국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미래를 찾으려 하는, 또는 혈연과 지연,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 문제의 돌파구를 찾으려 하는 21세기 루마니아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파르하디의 영화는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의 빈틈을 짜맞춰나가는 재미가 있으며 단 하나의 잣대로 규정할 수 없는 삶과 도덕성의 아이러니를 차분한 시선으로 조명하고 있다. 하지만 <필름 드 퀼트>의 말처럼 이 작품들은 “심각한 주제와 위엄을 중요시하는 작가영화의 오래된 비전”을 보여주는 영화임과 동시에 <LA 타임스>가 지적했듯 “강압적인 사회 환경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의 타락을 관찰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는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서 더이상 새로울 게 없는 장점이다. 게다가 이 두 영화에서 사회적으로 안정된 중년 인물들이 직면하게 되는 사적인 근심은 올해 경쟁부문의 가장 중요한 트렌드였던 다양한 목소리에 귀기울이려는 노력을 종종 소홀히 하게 만들었다.

새로움은 없었다

결국 예년과 마찬가지로 칸영화제는 진중한 작가주의에 주목하고 지난해 <디판>의 경우처럼 전세계적으로(특히 유럽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경제(<아이, 대니얼 블레이크>), 사회(<졸업>), 윤리적 이슈(<세일즈맨>)에 귀기울인 영화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 가운데 위트 있는 코미디영화(<토니 어드만>과 <슬랙 베이>), 잔잔하지만 훌륭한 리듬감을 가지고 있는 독립영화(<패터슨>),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주목한 영화(<엘르>와 <아가씨> <아쿠아리우스> 등)는 설 곳을 잃었다. “정치와 윤리를 덧입은 영화가 아니라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을 인정하는 자리는 없는 걸까? 조금 덜 명백하더라도, 더 미묘한 화음을 가지고 있는 영화들 말이다. 예를 들면 (심사위원장) 조지 밀러의 작품처럼.” <LA 타임스>의 평론가 저스틴 창은 이렇게 말했다. 확실히 올해의 심사위원들은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처럼 새로운 감흥을 안겨주는 영화를 발굴하는 데 실패했다. 그런 영화를 발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했던 한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장 낮은 평점을 받은 영화의 시사회장보다 시상식이 중계되던 프레스룸에서의 야유 소리가 더 컸던 올해 칸영화제의 풍경은 이 권위 있는 영화 축제에도 변화의 물결이 절실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수년간 반복적으로 초대받는 작가 감독들에 대한 피로도, 새로운 형식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영화에 대한 목마름은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풍성한 영화 축제가 끝난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았다. 이러한 아쉬움과 갈증은 돌아오는 제70회 칸영화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 대답은 내년 영화제의 캐스팅보트를 거머쥘 심사위원들의 판단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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