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어떻게 영화산업이 우리들의 목록을 제한하고 있는가? - <에센셜 시네마>
2016-10-10
글 :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사진 : 백종헌
<에센셜 시네마> 조너선 로젠봄 지음 / 이두희, 안건형 옮김 / 이모션북스 펴냄

“나쁜 영화를 보기엔 우리 삶이 너무 짧다.” 영화 사이트 뮤비(Mubi)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내건 자극적인 슬로건이다. 이 사이트가 제공하려는 영화들은 이른바 좋은 영화들, 말하자면 ‘에센셜 시네마’들이다. 일종의 정전(canon)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그 목록은 어떻게 결정될 수 있을까? 이미 우리는 다양한 비평가들의 목록들을 봤었다. 제임스 아제, 마니 파베르,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앤드루 새리스, 로저 에버트, 조너선 로젠봄, 하스미 시게히코 등 유수의 비평가들의 목록들이 인터넷을 돌아다닌다. 영국영화협회(BFI), 미국영화협회(AFI), 프랑스 잡지 <카이에 뒤 시네마>, 영국 잡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필름 코멘트> 등의 영화기관, 잡지가 선정한 조금 더 공식적인 목록들도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꼽은 100편의 한국영화, 부산국제영화제가 꼽은 100편의 아시아영화들도 있다. 이는 최고의 영화들을 말하는 것인가, 혹은 비평가들의 고약한 취미나 개성을 드러내기 위한 전략의 목록들인가? 혹은 예산을 배정받지 못해 창고에 필름들을 쌓아놓은 아카이브가 고육지책으로 국가예산을 뽑아내 우선적으로 복원, 소장하려는 목록들인가? 사실 목록들이 흥미로운 것은 아니다. 어떻게 작품들이 선별될 수 있는지, 배제와 통합의 원리가 무엇인지, 가치 평가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가 도리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영화의 모범시민 폴 슈레이더는 이미 답을 내놓은 바 있다. 이른바 영화 정전을 위한 흥미로운 7가지 표준들. 아름다움, 기묘함, 형식과 주제의 단일성, 전통, 반복 가능성, 관객의 참여, 모럴리티 등이 그러하다. 평론가 에이드리언 마틴이 제시한 정전은 보다 전략적이다. 첫째, <스타워즈> 정전(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스타워즈>를 좋아하지 않는다), 혹은 박스오피스 정전이 있다. 상업적으로 성공하고도 명예까지 차지하고픈 블록버스터 목록들이다. 둘째, <시민 케인> 정전. 1950년대와 60년대, 국제 영화제에서 발견된 목록들에 이어 아트하우스의 단골 상영작이 된 영화들이다. 누벨바그 시절, 비평가들이 구축한 오래된 정전이다. 마틴은 이 목록에 이의를 제기하는데, 글로벌 시네마에서 이 정전이 지나치게 남성, 유럽-미국 편향적이며 미학적, 세대, 지리적 배분에서 심각한 편식이 나타나고 있다. 다큐멘터리, 단편, 여성영화, 실험영화들 또한 결핍된 목록들이다. 셋째, 그가 주창하는 키아로스타미 정전이 있다. 두 번째와 세번째의 정전에서 결핍되고 누락된 영화들을 보완한 새로운 정전이다.

마틴의 자극적인 분류법에 더해 가장 흥미로운 정전화의 실천이 시도된 것이 이제 소개하려는 미국 평론가 조너선 로젠봄의 <에센셜 시네마>라는 책이다. 2002년에 출간된 이 책은 특별히 ‘영화 정전의 필요성’을 주창한다. 그는 영화의 정전이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학생들이 읽는 영화 교과서(아마도 데이비드 보드웰의 책들), 혹은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에 기재된 목록들, 혹은 박스오피스 성적을 올린 영화들만 남게 될 것이라 분노한다. 정전화에 대한 그의 저작이- 비록 이미 <시카고 리더>라는 신문에 쓰였던 글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21세기 초두에 나온 것은 특별한 시대적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21세기 들어서 잡지, 케이블 텔레비전, 인터넷, 기관들을 통해 너도 나도 리스트를 발표하며 정전화 작업을 공식화했다. 로젠봄은 이런 목록들 가운데 특히 AFI가 1999년에 발표한 ‘100편의 미국영화’를 공격했다. 고결한 영화 취향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그랬다면 나는 그의 글 한구절도 읽을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대신 그의 질문은 이러하다. “어떻게 할리우드와 미디어가 우리가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제한시키고 있는가?” AFI의 리스트는 오스카상을 수상한 작품들, 유명 배우와 고예산의 영화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할리우드 영화산업을 도모하기 위한 고도의 홍보전략에서 나온 것이다. 로젠봄은 이러한 리스트가 할리우드 배급 채널의 지배와 단지 할리우드 작품들을 홍보하는 데 열중한 잡지들, 그런 작품들을 소개하는 데 동원된 비평가들의 합작이라 여긴다. 산업의 손에 넘겨진 목록을 넘어서기 위해 로젠봄은 대안적인 미국영화 100편의 리스트를 공개했다. 언더그라운드, 아방가르드, 독립영화들이 포함된 ‘대안적인 100편의 미국영화들’이다. <에센셜 시네마>는 로젠봄의 이런 실천에서 나온 영화의 정전을 확장하기 위한 정전의 전략(정치학)을 보여주는 역작이다.

<에센셜 시네마>의 흥미로운 자극은 이른바 정전의 선별전략, 말하자면 정전화에 필수적인 비평적 기준을 갱신하는 노력에 있다. 각 장의 글들이 비록 다른 목적으로 쓰였던 글이지만 이 느슨한 연결에서 로젠봄이 제시하는 몇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엿볼 수 있다. 일단, 그가 제시한 영화 목록의 방대함이다. 100편이 아닌 1천편의 에센셜 시네마다. 하루에 세편씩 본다면 꼬박 1년이 걸릴 목록이다. 서양의 작품만은 아닌(그는 영화가 문학에 비해 언어적 차이가 덜 지배적인 예술 매체라 여긴다), 아시아, 아프리카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영화들, 미학적 고려만은 아닌(예술작품에 대한 선호란 결국 소비지상주의의 다른 버전이기에) 통상적으로 대중적 영화라 부르는 영화들을 포함한 목록이며, 적은 편수라고 말해야겠지만, 다른 목록들과 비교해보자면 여성감독들의 작품이 많이 수록된 편이다(물론, 아녜스 바르다 영화가 고작 세편이며, 샹탈 애커만 영화는 5편에 불과하다). 정전화로 고려될 영화의 유형을 확장한 목록들이기도 하다. 가령, 비디오 작품들, 텔레비전용 영화, 애니메이션, 단편, 실험영화들의 목록을 포함한다. 물론 대부분의 비평가들이 그러하듯 사심 가득한 목록들도 있다. 이 책의 중요성은 로젠봄의 글이 단지 할리우드의 문화 지배를 다루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있다. 나는 이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에서 우리나라 현실의 모습을 더 생생하게 읽고 있다.

<경멸>.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조지프 맹케위츠, 프리츠 랑과 고다르의 연관 관계.

헬로우 시네필리아

<무비 무테이션즈>(Movie Mutations: The Changing face of World Cinephilia) 조너선 로젠봄 외 지음 / BFI 펴냄

<에센셜 시네마>와 함께, 실은 먼저 읽어야 할 책이 전세계(사실은 개인적인 네트워크인) 비평가들의 서신 교환으로 작성된 <무비 무테이션즈>이다(국내 미출간). 조너선 로젠봄이 1997년에 발의해 시작한 비평가들의 서신 교환- 원래는 프랑스 저널 <트래픽>에서 시작했다- 내용들이 수록되어 있다. 로젠봄의 호기심을 자극한 것은, 그가 만난 상이한 국적의 시네필 비평가들이- 대략 1960년대생들이다- 지역적 문화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취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로젠봄과 멜버른의 에이드리언 마틴, 뉴욕의 켄트 존스, 빈의 알렉스 호르워스, 파리의 니콜 브레네들이 나눈 서신 교환들은 그들 각자의 영화 문화의 경험, 취향들을 전시한다. 이들은 시네필 돌연변이들(Mutants)로 수전 손택, 데이비드 톰슨, 데이비드 덴비 등이 즐겨 말한 ‘영화의 죽음’에 대항해 새로운 시네필리아의 시대, 혹은 세대를 제창한다. 작가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세계영화의 지도가 변경 중에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유럽 중심적이지 않다. 게으른 비평가들만이 제대로 지금 그 변화를 지켜보지 않고 있을 뿐이다. <에센셜 시네마>의 목록들이 어떤 지역적, 글로벌한 조건의 변이에서 나온 것인지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은 필수다. 동세대 비평가들의 논의뿐만 아니라 레이몽 벨루, 그리고 하스미 시게히코와 나눈 하워드 혹스, 마스무라 야스조에 관한 대화가 실은 더 흥미롭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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