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비평, 어떻게 할 것인가 - <비평 철학>
2016-10-10
글 : 최은영 (영화평론가)
사진 : 백종헌
<비평 철학> 노엘 캐럴 지음 / 이해완 옮김 / 북코리아 펴냄

90년대 중·후반, 한국에서 영화 비평이 영화 감상에 있어서 큰 비중을 차지한 시절이 있었다. 이전보다 훨씬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오고, 한국영화의 질적 향상이 비약적으로 이뤄지던 그 시기, ‘문화’라는 화두가 사회 전면에 대두되던 그 시기에, 쏟아져 나오는 새로운 영화들에 대한 일종의 설명, 혹은 가이드가 필요했고 영화 비평은 그 어느 때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20여년이 흐른 현재, 누구나 SNS를 통해 영화에 대해 말하고 쓰는 이 시대에는 영화 비평에 대한 무용론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예전에는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만 통용되어왔던 정보는 넘쳐나고, 공적인 지면이 아니라도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1인 미디어가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평의 영역, 혹은 그 효용은 과연 어디에서 그 존재 근거를 찾을 수 있을까. 노엘 캐럴의 저서 <비평 철학>은 정보의 홍수, 비평의 홍수 속에서 역설적으로 예술 비평의 중요성을 견지하며, 나아가서는 그 역할에 대해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다.

저명한 영미권 미학자이자 영화 비평가인 노엘 캐럴의 <비평 철학>은 개별 영화 비평이나 영화 비평 담론을 다루는 책이 아니라 분석철학을 바탕으로 ‘비평’이라는 예술에 대한 진술을 연구 대상으로 삼는 책이다. ‘비평 철학’이라는 다소 거창하게 보일 수 있는 제목 때문에 책 내용이 대단히 어렵고 현학적일 것이라 지레 염려하는 독자들을 위해서 덧붙이자면, 이 책은 기존의 수많은 비평 담론에 대한 설명을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여타 다른 영화 비평 이론서들과 달리, 보다 규범적인 측면, 즉 ‘방법론’과 ‘기준’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기에 비교적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전체적인 논지를 살펴보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비평가들이 현실에서 부딪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매우 실용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비평에서 작품의 질을 평가하는 행위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오늘날과 같이 감상자의 주관적 평가가 대세를 이루는 상황에서 과연 객관적인 비평과 그 가치가 옹호될 수 있을 것인가. 더욱 본질적으로는 과연 ‘객관적인 비평’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캐럴은 미술과 무용, 연극, 영화, 문학 등 다양한 비평의 예를 들며 주관적 미적 경험이 일종의 규칙들로 수렴되며 간주관적으로(intersubjectively) 검증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펼친다. 만약 모든 미적 경험이 지극히 주관적이며 그 자체로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 현실의 비평 행위들, 비평적 관행과 비평의 대상들이 오늘날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무엇이 있는가라고 그는 되묻는다.

이 책의 제목인 ‘비평 철학’의 원제는 ‘On Critisism’으로, 비평의 철학적 의미를 논의한다기보다는 비평이라는 행위가 지녀야 할 기본적 태도와 방법론에 대해 대단히 명징한 방식으로 논지를 전개해나가고 있다. 노엘 캐럴이 다수의 영화 비평과 영화에 관한 저서를 남겼지만, 이 책은 영화 비평에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영화 비평을 포함한 예술 비평이 갖추어야 할 근본적인 요소들을 밝혀내는 데 집중한다. 제대로 된 의미에서의 비평이 갖춰야 할 기준, 비평이라는 활동을 이해하고 그것에 질서를 부여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을 개발하는 것이 그가 이 책에서 제시한 목적이며, 이를 위해, 그는 비평가란 ‘예술 작품을 합리적인 이유에 근거하여 평가하는 사람’이라는 정의를 내린다. 이 책 전체를 통틀어 가장 방점을 찍고 있는 비평의 중요한 역할로 그는 ‘평가’라는 행위를 옹호한다. 이 책의 1장에서 그는 비평이 본질적으로 이유에 근거한 평가라는 가설을 세우면서 실제로 1970년대 이후 예술 비평이 평가보다는 분석에 방점을 찍고 있는, 다시 말해 분석은 하되 평가를 내리는 것에 대해 다소 기피하거나 그 중요성을 등한시하는 다수의 비평가들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며 여타 다른 예술 담론과 비평을 구분짓는 핵심적인 요소로서 ‘평가’가 필수불가결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물론, 이 평가라는 행위에는 이를 뒷받침하는 합리적 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며, 이를 위해 그는 나머지 장을 할애하여 평가를 위시해 예술 비평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대략 여섯 가지(기술, 맥락화, 분류, 해명, 해석, 분석)로 나누어 기술 하고 있다.

예술가의 의도와 그 성취에 대해 평가하고 이를 감상자의 경험보다 우위에 둔다는, 일견 단순해 보일 수 있는 캐럴의 주장이 실제로 현재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비평의 대상과 영역을 아우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예술가의 의도를 이해하고 그 성취를 평가하며, 역사적 맥락과 다각적인 범주화를 통해 작품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다는 캐럴의 비평에 대한 철학은 너무나 상식적인 주장이라 여겨질 수 있다. 그가 예술 작품간의 위계를 설정하고 순위를 매기는 작업에 대해 부정적이면서도 평가라는 작업을 통해 불가피하게 생겨나는 위계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보수적인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들이 수십년간 얼마나 많은 이론적 도전에 직면해왔는지에 대한 캐럴의 꼼꼼한 기술은, 오히려 상식적인 비평의 관행이 그 토대로 갖추어야 할 엄밀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해준다. 학문적 성취와는 별개로, 비평이란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비평가들에게 <비평 철학>은 비평의 역할에 대해 다소 비관적인 오늘날의 상황에서 비평이 갖추어야 할 기본을 상기시키는 책이다. 예술 작품이 지닌 가치를 발견하고, 그에 대한 ‘근거 있는’ 평가를 내리는 것은 비평가들이 지닌 본연의 임무이며, 학자가 아닌 비평가들에게 주어진 일종의 가이드로서의 역할은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를 연결해주는 비평가들이 만끽할 수 있는 최선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우드의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을 즐겼다 하더라도 그것은 명백한 실패작. 감독의 ‘의도’가 빠져 있기 때문.

이론과 비평은 어떻게 만나나

<비평 이론의 모든 것> 로이스 타이슨 지음 / 윤동구 옮김 / 앨피 펴냄

<비평 철학>에서 노엘 캐럴은 비평가가 지녀야 할 자질로 자신이 속한 문화 안에서 이루어지는 담론에 대한 특별한 배경지식과 보편적인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비평 철학>이 간단한 예들을 제외하면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그가 내세우는 방법론들은 개별 작품 비평에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로이스 타이슨의 저서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은 비평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혹은 비평 이론들이 어떤 방식으로 개별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하나의 훌륭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정신분석 비평부터 탈식민주의 비평까지 11개의 이론을 적용해 분석하는 <비평 이론의 모든 것>은 이제까지 영향을 미친 주요 비평이론에 대한 일별에 더해 이론과 실제 비평이 어떤 방식으로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문학작품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이미 두번에 걸쳐 영화화된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다각도의 비평은 영화 비평의 방법론에 있어서도 적용될 수 있는 중요하고도 실용적인 지점들을 포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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