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안남시에 살고 싶은 아수리언들의 잡담
2016-12-05
글 : 김성훈
사진 : 오계옥

1. 박성배의 위태로운 넥타이_ 6번 관람, 2. 안남시 여성회관_ 5번 관람, 3. 안평여고 2학년 7반 8번 님이럴_ 7번 관람

-<아수라>를 반복 관람한 이유가 무엇인가.

=박성배의 위태로운 넥타이(이하 넥타이)_ 두 가지 이유만 꼽는다면 하나는 카체이스 신. 그 신만으로 가치는 충분하다. 또 하나는 영화의 마지막, 박성배(황정민)의 머리에 총알을 박는 장면은 몇번을 봐도 통쾌하다.

=안남시 여성회관(이하 여성회관)_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도 안 되어 매료됐다. 카메라가 영화의 주요 공간인 안남시를 훑고 지나가며 전경을 보여주지 않나. 철거촌, 구시가지, 주택가가 공존한 공간 말이다. 영화가 그런 공간을 설정하고, 안남시라는 세계 안에서 사람들이 싸운다는 설정이 매력적이었다. 남성 캐릭터를 욕하는 것도 너무 마음에 들었다.

=안평여고 2학년 7반 8번 님이럴(이하 님이럴)_ 맞다.

여성회관_ 영화를 보면 여성 캐릭터들은 대체로 멀쩡하다. 남성들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다. 인간으로서 결점도 흠도 많다. 모지리 같은 남자들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는 곳이 한국 사회다. 영화를 보고 한국 남자들을 욕하려고 만든 건가 궁금했다. 감독님 인터뷰를 찾아보니 그런 의도가 있다고 하셨다. 김성수 감독님을 ‘영화의 신’이라고 외치게 됐다.

님이럴_ <아수라>의 오락적, 폭력적 요소가 대중을 불편하게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영화 속 폭력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되게 좋아한다. 아수리언들은 <아수라>에 선택당한 사람들이다. (웃음)

-여성 캐릭터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 영화인데도 많은 여성들이 <아수라>를 좋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넥타이_ 여성 캐릭터의 비중이 작다는 이유로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여성관객도 많다. <아수라>에서 제정신인 사람은 여성들밖에 없다. 영화의 후반부, 차승미(윤지혜)가 “지검에 지원 요청할까요?”라고 묻는 장면에서 지원 요청을 했더라면 모두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웃음) <아수라>가 다른 영화에 비해 여성 캐릭터를 비중 있게 다루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그린 건 아니지만 여성 관객으로서 그런 지점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여성회관_ 남성이 중심인 누아르영화에서 “병든 마누라 두고 떡을 쳐?”(김차인(곽도원) 검사가 한도경(정우성)을 협박하는 장면) 같은 대사가 비중 있게 쓰이는 건 드물 것이다. 마누라가 아픈데 바람이나 피우고 있냐는 거지. (웃음)이 영화에서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성관계 동영상이 두번 등장한다. 안평여고 3학년 6반 학생과 성관계를 가진 이민섭을 협박하기 위해 작대기(김원해)는 이민섭과 여고생의 성관계 동영상을 사용한다. 김차인은 한도경을 협박하기 위해 한도경과 신 간호사의 성관계 동영상을 꺼낸다. 아이러니하게도 남성을 벌주기 위해 성관계 동영상을 이용하는데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여성들이다. 한도경은 아내 윤희 앞에서 무릎을 꿇지만, 그 동영상의 존재로 인해 신 간호사는 언제 병원에서 그만둘지 모르게 되고, 윤희는 점점 죽어간다. 윤희가 아픈 게 잘못이 아니라 한도경이 잘못한 거잖아. 단체 관람 행사(이하 단관)가 끝난 뒤 열린 뒤풀이에서 김성수 감독님이 “박성배와 김차인은 벌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죽여야 했다”고 얘기한 바 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윤희가 아픈 건 한도경에게 벌을 주기 위한 장치일 수 있겠다 싶었다. 감독님만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님이럴_ <아수라>를 ‘알탕 영화’(남초 한국영화를 비하하는 말)라고 부른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카메라의 시선이나 태도가 여성을 불편하게 담아냈던 <신세계>나 <내부자들> 같은 기존의 누아르영화와 달리 <아수라>는 남자든 여자든 총알 두발로 깔끔하게 죽인다. 그걸 보고 감독님은 정말 ‘순수폭력’을 하고 싶으신 분인가 보다 싶었다. (웃음)

여성회관_ 여성 대접이 아닌 인간 대접을 해준다.

넥타이_ 동물이나 아이 같은 약한 존재를 학대하는 장면이 없어서 좋았다. 이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다 맞아도 싼 인간들이다. (웃음)

-많은 아수리언들은 <아수라>가 재평가받아야 할 작품이라고 얘기하고 있는데.

넥타이_ 기존의 한국형 누아르에 질려 있었던 사람들에게 충분히 먹힐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한국형 누아르영화는 어떤 영화인가.

여성회관_ 사나이들이 우르르 등장해 서로 의리를 지키고, 남성 헤게모니를 구축하다가 ‘사실은 내가 나쁜 놈이 아닌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다’는 식의 자기변명을 하는 영화. <아수라> 또한 그런 영화일 거라고 생각하고 안 보신 분들이 은근히 많다.

넥타이_ <아수라>의 주인공 한도경은 병든 마누라 두고 떡을 칠 만큼 감정이입 할 여지가 없는 나쁜 놈이다. 순수 폭력을 즐기면 되는 영화다.

여성회관_ <아수라> 속 등장인물 모두 싫어한다. (웃음) 쿠엔틴 타란티노 영화의 특징 중 하나가 수다이지 않나. 대사에 의미와 캐릭터를 부여하는 보통의 한국형 누아르와 달리 <아수라> 속 인물들이 내뱉는 말은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은 사유하지 않는 인간들이다. 그게 대중에게 외면받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기술적으로 강한 인상을 받은 건 카체이스 신이었다. 지금껏 한국영화에서 이만한 완성도를 갖춘 카체이스 신은 본 적이 없다. 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 이 영화를 반대하거나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카체이스 신만 놓고 보면 한획을 그은 게 분명하다.

님이럴_ 아수리언 대부분 이런 얘기를 하곤 한다. ‘<아수라>가 재미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못 만들었다고 얘기하면 안 된다’고.

-캐릭터에 감정이입해 캐릭터과 관련된 굿즈를 만들거나 구매하는 보통의 팬심과 달리 아수리언들은 안남시라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 즐기는 것 같다. 안남시민연대, 안남문화재단, 안남시 여성회관 등 트위터 계정 이름도 안남시와 관련되어 있는데.

여성회관_ 아수리언들은 안남시에 살고 싶어 한다. 캐릭터에 감정을 이입하면 안 된다. 윤리적으로 용납이 안 되는 사람들이라.

넥타이_ 이입하는 순간 온전히 영화를 즐길 수 없다.

여성회관_ <아수라> <비밀은 없다> <아가씨>를 좋아하는 관객의 공통된 성향 중 하나가 공간에 매료된다는 점이다. 안남시는 분당도, 광명도, 고양도, 성남도 아닌 신도시 개발에 뒤처진 경기도의 어느 지역이다. 경기도 북쪽 도시도 아니다. 그쪽은 전선이 주는 긴장감이 있기 때문에 산동네는 전부 군사지역이니까. <비밀은 없다>의 배경인 대산시는 대구 같은 동네다. 전라도를 배척하고. 지역 갈등이 아닌 호남 차별이다. <아가씨>는 전근대와 근대가 공존한 식민지 시대의 조선과 소수의 지배층인 부르주아 저택이 주요 공간이다. 이처럼 시공간이 주는 상황에 설득되고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어쨌거나 안남시라는 공간은 현실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순실이 개연성을 만들어줬다. (일동 폭소)

님이럴_ 지금 개봉하면 2800만 관객을 동원할 수 있다. (웃음)

-아수리언으로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나.

(모두 함께)_ 박성배, 단관에 나와. (일동 폭소)

님이럴_ 안남영화제를 개최하고 싶다. 농담이냐고? 진심이다. 최고 폭력상, 최고 앰뷸런스상, 최고 식빵상 같은 상을 만들어 수상할 거다. 남우주연상은 단연 한도경.

-다른 배우도 많은데.

님이럴_ 정우성씨가 청룡영화상에서 상을 못 받아 설움에 잠겨 있을 것 같아서. (웃음) 안남영화제를 우리만의 축제로 만들고 싶다.

여성회관_ 나중에 박성배 시장을 모셔서 명대사 “무슨 동네요? 부자동네!! 안들립니다. 무슨 동네요? 부자동네에!!!!!”(박성배가 안남 메트로폴리탄 사업 설명회에서 외친 말)를 함께 외치고 싶다.

넥타이_ 지난 11월20일 단관에 참석한 한재덕 대표님이 내년 <아수라> 개봉일인 9월28일에 배우들을 모두 모아서 개봉 1주년 행사를 하자고 말씀하신 걸 기억하고 있다. (일동 박수) 단관 행사가 끝난 뒤 참가자 명단을 폐기하려고 했으나 내년에 다시 초대해야 하는 까닭에 결국 폐기하지 않았다.

여성회관_ 교회 여름 성경학교에서 성경 공부하는 것처럼 아수리언들과 함께 안남 겨울 성경학교에 가서 <아수라>를 공부하고 싶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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